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이지만 폭탄 한번 터지지 않고, 일본군과의 통쾌한 전투도 나오지 않는다. 시종일관 담담하게 서사를 풀어가지만 이야기는 절박하고도 치열하다. 화려한 음향효과도, 절묘한 촬영기법도, 심지어 색마저 사라진 영화에는 배우 박정민의 말마따나 오롯이 진심만이 담겨있었다. 그것이 윤동주시인의 시와 닮은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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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마을과 식구들을 비추며 시작한 이야기는 초반에는 가볍고, 조금 종작없다. 그러나 막바지를 향해가면서 극의 흐름에는 무게가 실린다. 그렇게 영화는 중반즈음에서 1막과 2막으로 나뉘는 것 같다. 임시정부의 자금을 모으다 체포된 송몽규(박정민분)가 윤동주(강하늘분)에게 조선어교육이 금지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좋은 시절 다갔다>고 한탄할 때가 그 즈음인가 싶다. 그 말을 기폭제로 극은 점점 단단하고 뚜렷해진다. 


이 영화에서 실제 인물에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진 윤동주라는 인물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는 <부끄러움>이다. 정지용이라는 인물의 입을 빌어 나온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는 대사는 영화전체를 관통한다. 윤동주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직전에 쓴 시 <참회록>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의 부끄러움에는,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시대에 이름을 바꾸고 유학을 가는 것에 대한 청년 윤동주의 고뇌가 담겨있다. 또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에게는 주권을 잃은 나라에서 시를 쓰며 살기를 꿈꾸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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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인 송몽규는 윤동주와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성향과 기질이 다른 인물이다. 송몽규는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던진 투사였다. 그렇기에 그의 최후의 감정은 부끄러움이기보단 독립운동을 더 잘 해내지 못한 아쉬움이고, 일본제국에 대한 끝없는 분노였다. 거기에 부끄러움이 끼어들 공간이 있었을까. 


어쩌면 윤동주를 설명할 마지막 키워드는 송몽규일지도 모른다. 그는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복잡해지는 인물이었다. 송몽규는 윤동주에게 어딜 가든 같이 가자고 부탁했지만 정작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하려는 뜻을 숨긴다. 나중에는 거사에 동참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윤동주를 따돌리며, 그를 끝내 독립운동에 끼워주지 않는다. 그것은 송몽규가 윤동주의 역할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시를 쓰는 것은 문학속으로 숨는 것이라 비난하기도 했지만, 결국 윤동주의 시가 시대를 밝히는 빛이, 민족을 울리는 마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 아닐까. <나는 독립 운동을 할 테니, 너는 계속 시를 쓰라>며 당부를 하던 그는 윤동주의 시를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견고하게 엮인 두 주인공 이외에도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점은 두 주인공의 주변에 머물렀던 사람들이었다. 송몽규에게 처음으로 독립운동의 길을 알려준 선생님이나, 문성근배우가 연기한 정지용시인, 릿쿄대학의 다카마쓰교수, 심지어 감옥에서 윤동주와 송몽규를 심문했던 일본인순사까지, 감독은 그들의 입을 빌어 정말 중요한 메시지들을 전한다. 사실상 그들은 그 시대의 여러 사상과 이념의 대변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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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을 눈앞에 둔 1945년 2월에 윤동주가, 3월에 송몽규가 후쿠오카감옥에서 세상을 떠난다. 이준익감독은 <흑백사진으로만 봐오던 윤동주시인과 송몽규열사 스물여덟 청춘의 시절을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낸 이분들의 영혼을 흑백의 화면에 정중시 모시고 싶었다>고 한다. <시인이 되길 원했던 제가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했던 윤동주, <너는 시를 써라 총은 내가 들께>라던 송몽규의 말은 지금의 청춘들에게도 물음을 던진다.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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