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공선옥 지음
노래는 다시 시작됐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선옥작가를 매우 좋아한다. 어느 책에선가 공지영작가가 공선옥작가의 ‘명랑한 밤길’을 읽고 -이사람은 이길 수 없겠다-라고 생각했다는데 나는 이때 공선옥작가를 처음 알았다.
그 후 ‘영란’, ‘꽃같은 시절’을 읽으며 공선옥작가는 내 마음속에 작은 집을 지었다. 공선옥작가는 작품을 통해 시대와 여성의 삶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작가이다. 무엇보다 시의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서정적으로 글을 풀어가는 솜씨가 예술이다.
이런 이유로 홍익문고에서 신작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를 발견한 순간, 나도 모르게 ‘어머 이건 사야해’라고 말하며 명랑하게 집어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그날밤부터 내마음은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굶주려 있는 ‘산사람’에게 밥을 줬다는 이유로 딸앞에서 죽은 아버지, 그로 인해 실성한 딸, 그리고 그 딸이 낳은 열다섯 정애. 굶어죽을 것 같은 짐승에게도 먹이를 주는 게 당연한 그 시절에 산사람에게 밥을 준 사람이 죽임을 당한 그 순간, 착하고 순한 사람들에게 닥칠 비극은 예정됐다.
예정된 비극은 상상 이상의 고통스러운 상황들로 이어진다.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들어온 ‘외지사람들’과 마을의 남성들은 정애와 그녀의 친구 묘자를 거듭 덮치고 집의 재산을 빼앗는다.
그 모든 것을 빼앗긴 정애는 도시로 쫓겨나고 묘자는 엄마를 찾아 도시로 이동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정애와 묘자의 집에 제대로 된 어른이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들이라는 점에서 7,80년대 가족해체와 도시이동의 폭력성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온갖 지옥같은 수모를 겪은 정애가 결국 정신줄을 놓게 된 사건, 묘자의 남편인 박용재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나와서 역시 정신줄을 놓게 된 사건, 용순의 남편이 자랑스러운 공수부대 통신병이었다가 제대한 후 달려오는 기차에 자기 팔을 내준 후 정신병원에 가게 된 사건,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섞인 채 죽은 놈만 있고 죽인 놈은 없던 그 사건.
공선옥작가는 5.18광주민주화항쟁에서 살아남은 민중의 삶을 소설속에 재현한다.
실성한 정애는 고향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성경과 불경을 읊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만만하면서도 두려운 존재가 되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런데 사라지는 과정이 자연 곳곳에 스며들듯 서서히 사라져, 그 어디에도 없으면서 또한 어디에나 있는 존재처럼 사라진다.
그후 정애가 노인이 된 묘자 앞에 나타난다. 누더기옷에 산발을 하고 맨발인 모습으로. 용산참사가 일어나던 시절에.
공선옥작가의 전작 ‘꽃같은 시절’은 재개발로 쫓겨난 영희와 철수가 농촌으로 이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농촌에 돌공장이 들어와 애써 갖꾼 깻잎, 상추를 못먹게 된 할머니들이 데모가 아닌 ‘디모’를 하는 내용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그렸다.
재개발과 돌공장, MB식토건개발에 맞선 투쟁을 가벼운필치로 쓴 공선옥작가는 이번 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에서는 피로 점을 찍듯, 고통스럽고 힘든 문체로 이야기를 읊조리고 있다.
무엇이 작가를 이렇게 절망스럽게 하는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의 폭력성과 그 세월을 살아간 민중들의 비극성을 되살리고 있다. 특히 주인공 정애를 가장 여리고 만만하지만 고통속에서도 노래하는 가장 두려운 존재로 그림으로써 민중의 힘 또한 되살리고 있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이 민중의 힘으로 꺾이던 그때, 정애의 몸이 산산히 부서져 세상곳곳으로 퍼졌으나 용산참사가 발생하고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정애는 누더기옷에 맨발로 노래를 부르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민중의 웅심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진 그 노래가, 고통과 슬픔의 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양고은(시사톡)
*기고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