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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생을 설계당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주인공 알렉산더를 감싸 안아주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알렉산더의 도전적인 발언이 사건의 시발점이 돼 알렉산더를 더 끔찍한 방향으로 데려간다. 인생설계자가 알렉산더를 설득하기 위해 <아무런 상관없는 곳에 화풀이를 했다>고, <아이가 있는 집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을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만한 평범한 사람이다. 알렉산더는 인생설계자의 말을 듣고도 마음이 복잡해 아들에게 화풀이를 하고만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인생설계자들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알렉산더의 이와같은 감정은 구도를 통해서 잘 전달됐다. 감독은 구도를 잡을 때 영상의 중심에 인물을 두어 그에게 무게감을 부여하고 그의 결연한 의지가 느끼게끔 했다. 


영화는 좌우대칭이나 인물중심의 구도 말고도 수미상관의 구조도 갖고 있다. 수미상관으로 말과 행동은 비슷하지만 뭔가 달라진 알렉산더를 보여준다. 산길을 뛰는 알렉산더의 모습은 영화초반부에는 체력단련을 위함이지만 후반부에는 인생설계자로부터의 도망을 위함이다. 또 아내와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모습은 시간이 지나고나면 공허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생을 설계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해도 인생이 달라진다거나 더 고달파지진 않는다. 오히려 전과 같은 인생이 계속된다는 점이 무섭다. 인류는 지금까지 자유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왔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자유를 원하는 만큼 자유를 통제하려는 <힘>이 더 교묘하게 움직인다. 강압적인 방법이 아니가 달콤한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그 달콤함에 빠져있을 때 자연스럽게 싸우고자 하는 생각이 옅어진다. 


알렉산더가 했던 보기엔 같은 행동은 의도가 분명히 달랐다. 어떠한 행동을 할때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이 시대에 자유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의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감독으로부터 <왜 주인공을 죽이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주인공에게 가장 끔찍한 결말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굴복하는 게 더 끔찍한 결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독은 이어서 <이 영화는 오스트리아의 현실을 표현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그 답변이 놀라웠던 이유는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질문자에게나 나에게나 하나의 선택지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요즘 우리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이 나오는데 우리가 재미를 위해 인간성, 현실성을 포기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생가이드>는 인간성, 현실성이 눈에 띄는 영화로서 오스트리아 뿐만 아니라 전세계 민중의 삶을 조명했다.


<인생가이드>는 좌우대칭만으로 색감이 화려하지 않음에도 아름다운 영상미가 느껴졌다. 또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등의 무서운 장면 없이 적절한 음향효과를 사용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적당한 긴장감을 느꼈고 상영시간이 지날수록 기대감이 증폭됐다. 정성들여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대 영화영상동아리 <화담>회원

21세기대학뉴스 객원기자 조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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