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박근혜는 국정농단으로 구속됐다가 특사로 풀려난 뒤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등장했다.
박근혜는 지지자들에게 <돌아보면 지난 5년의 시간은 저에게 무척 견디기 힘든 그런 시간이었다>며 <제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이루지 못한 많은 꿈이 있다>고 망언했다. 국정농단에 대한 언급이나 뉘우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날 분노한 한 40대남성은 박근혜를 향해 소주병을 던졌다. 소주병은 박근혜의 2m정도 앞에 떨어졌으며 경호원들은 빠르게 박근혜앞을 막아섰다.
남성은 경찰에 체포된 후 언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을 인혁당사건의 피해자라고 밝혔다.
그는 <박근혜가 <사법살인>에 대해 사과하지 않아서 화가 났다>며 <집에서 마시던 소주병을 들고 나왔다>고 성토했다.
또 <박근혜는 인민혁명당 관련 재판이 2개라느니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도 하지 않았다>며 <여기에 살려고 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경찰은 이 남성을 인혁당사건의 유족으로 파악했다.
인혁당사건은 국내외 인권단체로부터 <사법살인>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 정치적 판결이다.
1974년 박정희권력당시 중앙정보부는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가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며 관련자 23명을 구속했다. 당시 도예종씨 등 8명은 1975년 4월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대법원 사형확정판결이 난지 18시간만에 사형당했다.
2002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사건을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이라 발표했다. 이후 인혁당사건이 고문 등에 의해 조작됐다는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결과에 따라 2002년 12월 법원에 인혁당사건유족들은 재심청구를 냈으며, 2007년 서울 중앙지법은 사건관련자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