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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은 현상과 본질에 대한 이야기다.
관상가들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읽는다.
그래서 어떤 두세력이 격렬히 대립하고 있을 때 관상과 같이 시대와 상관없는 요소들에도 예민할 수밖에 없다. 마치 조선시대 문종말기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대립속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대립이 격화되던 시대처럼.
 
아버지가 역모를 꾀해 출사가 막힌 양반출신으로, 먹고살기 위해 관상을 보기 시작한 내경(송강호)은 처음에 소박한 꿈으로 시작했다. 할아버지를 닮아 꼿꼿한 선비정신으로 살지만 다리를 절어 안쓰러운 자신의 아들 진형(이종석)과 말 많고 다혈질인 처남 팽헌(조정석)과 배부르게 먹고 살기 위해 관상으로 한몫을 잡겠다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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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꿈이 시대와 얽혔을 때, 그리고 생사를 넘나들며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때, 소시민의 꿈을 지닌 내경이 시대정신과 만나는 순간 역모의 관상이자 권력을 위해 사람이 무자비하게 학살할 수양(이정재)이 아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김종서(백윤식)의 편을 든 순간. 관상이란 결국 세계관과 사상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결국 김종서를 비롯한 충신들을 다 죽임을 당하고 수양이 왕이 됐고 이는 마치 수양이 왕이 될 관상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경은 말미에 바닷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파도만 보았고, 바다는 보지 못했다고. 다만 당신들(수양대군편)이 우리보다 더 높은 파도였을 뿐이라고. 높은 파도는 다시 낮아지는 때가 온다고.’
 
파도라는 현상만 보았을 뿐, 바다라는 시대와 본질을 보지 못했음을 관상가인 내경의 입에서 나왔을 때 결국 시대와 역사는 관계에 의해 변화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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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적으로 봤을 때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수양의 무자비함이다.
이 영화에서의 수양은 양반이나 왕족이면 상상할 법한 위엄이나 너그러운듯한 모습 및 지혜로움 등 긍정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다.
다만 권력을 향해 무자비하게 살육하고 수양의 책사인 한명회는 뱀같은 인간으로 묘사될 뿐이다.
이 점이 인상깊었던 점은 권력만을 탐하는 자의 속성이 인물을 통해 정확하게 투영됐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권력을 장악한 수양이 두 눈이 멀고 다리를 저는 진형을 죽이는 장면에서 무자비함의 정점을 찍는다.
이와는 반대로 진형의 삼촌인 팽헌이 자신의 목젖을 자르려다 목소리를 잃는 장면이 수양과 대조돼 인상깊었다.
내경은 팽헌의 목젖이 툭 튀어나온 것을 관상학적으로 지적하면서 말조심하라고 했지만 결국 팽헌의 세치혀로 인해 거사는 실패하고 진형은 죽임을 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팽헌은 자신의 목젖을 자르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대사로만 처리된 짧은 장면을 통해 팽헌의 처절한 자기반성이 느껴졌다.
팽헌은 나쁜 인물이 아니라 어리석은 인물이다.
그리고 단순히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라면 목젖을 자르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하는 편이 더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철저히 자신에게서 찾고 그 원인을 철저히 제거하려고 애쓰는 모습.
이 모습에서 팽헌의 처절한 자기반성이 느껴졌다.
아울러 마음이 아픈 건, 이러한 자기반성은 착한 사람들만 한다는 점이다.
수양이나 한명회처럼 무자비한 악인에게는 자기반성 따위없다.
 
관상가이지만 관상으로 역사를 바꾸려고 했고, 결국에는 관상보다 자신의 뜻을 선택하는 내경, 힘없고 다리는 절지만 자신의 뜻하는 바를 이루려 마지막까지 꺾이지 않는 진형, 권력을 탐하는 무자비한 수양과 착하고 어리석은 팽헌의 대립되는 마지막 모습까지 영화 <관상>은 흥미롭게 읽을 만한 장면이 많은 영화이다.
 
사족으로 이 영화를 같이 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한명회를 보니까 꼭 삼☆의 이★희 닮았네. 자기권력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하는 것까지 똑같아. 이★희도 노조만 만들려고 하면 깨부수고 도청, 미행하느라 바쁘잖아’
 
권력만 탐하는 자의 속성은 시대를 초월한다.
 
양고은(시사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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