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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의기열사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김의기열사는 우리학교 무역학과76학번입니다. 1980년에 5월30일에 돌아가셨고요. 80년을 생각하면 5.18이 가장 먼저 생각나죠. 의기형은 5.18을 알리다가 돌아가셨어요.
광주의 참상을 직접 목도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작성했어요. 그 글은 원래 사람들에게 5.18의 참상을 알리고 다같이 일어나서 부당한 사회에 맞서자라는 내용이 주에요. 그런데 그 글을 작성만 하고 실제로 뿌리지는 못했어요. 김의기열사는 그 글을 어느 한 교회분께 드리고 광주에 진실을 알리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돌아가셨거든요.
5월30일 글을 작성하고 그날저녁 기독교회관6층에서 떨어져 군용장갑차위로 떨어졌어요. 김의기열사는 그 자리에서 순국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자살이나,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 추모문화제준비단을 하면서
우리만 알고 작게 추모하는 것이 굉장히 아깝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현대사교과서에서는 이한열열사도 제대로 실려 있지 않잖아요. 김의기열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돼 있지 않아요. 광주에 대한 내용자체가 분량이 굉장히 적긴 하지만 그런 세태가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김의기열사를 좀더 세상에 알리고 우리 서강인들사이에서도 알리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어요.
- 올해의 ‘의기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대동제기간인 30일에 추모문화제 '함께하는 의기제'로 진행”
올해는 ‘함께하는 의기제’로 준비하고 있어요. 많은 재학생들과 함께하기 위해 총학생회와 협조하고 있어요. 또 중운위(중앙운영위원회)를 통해 대동제기간중간에 의기제를 할 수 있도록 발의했고, 대동제중간인 30일에 추모문화제가 진행될 수 있게 됐어요. 그밖에 단과대운영위원회도 방문하는 등 참여를 독려하고 있어요.
추모문화제에 안치환씨가 오셔서 의기제를 빛내줄 예정입니다. 저는 1학년때 축제보다는 의기제가 기억에 남았어요. 그때 좋은 기억이 있어서 안치환씨를 초청하게 됐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재학생분들이 의기제에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준비단구성과 지금까지의 활동은?
준비단은 3월중순부터 모이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4명이 모여 시작했는데 점차 늘어 4월정도에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10명이 구성됐어요. 준비단중 휴학생이 저 한명이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제가 투표를 통해 준비단장을 맡게 됐어요.
원래 김의기열사 추모문화제준비단의 가장 큰 프로그램은 5.18전후로 광주참배를 가는 것과 추모제본판을 준비하는 겁니다. 작년에는 그 두가지만 진행을 했지만 올해는 그뿐 아니라 봄농활도 가고 사진전도 진행하는 등의 활동도 하고 있어요.
"경영대농활대는 '의기농활대’"
추모제준비단의 첫행사는 봄농활이었어요. 농활이 의기제준비단에게는 의미가 있는데, 의기형이 서강대농활에서 빠질 수 없는 분이거든요. 농활에서의 주체활동을 처음으로 도입한 분이 의기형이고, 농활마을대장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경영대농활대는 지금도 ‘의기농활대’로 불려요.
원래 대학사회에서 농활하면 봉사라고 생각했던 인식을 ‘농활은 봉사가 아니라 농민과의 연대가 가장 중요하고, 주체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가는 곳이다’라고 인식자체를 변화시킨 분이 의기형이죠. 그래서 그뜻을 기리고 1, 2학년 때 했던 농활을 다시한번 되새기고자 봄농활을 다녀왔어요.
이후에는 문화제가 진행될 예정이고, 문화제를 위해 티켓판매를 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어요. 분향소도 설치하고 5.18광주민중항쟁사진전도 하고 있습니다.
- 준비단활동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어려운 점이 준비단자체가 다들 고학년이다보니 아무래도 현실적이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무게중심을 의기제에만 둘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 거죠.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시기이기도 하고 해서 의기제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취업준비도 하면서 동시에 이것저것 해야하다보니 스트레스를 덤으로 받기도 하거든요. 올해 이후 평가를 통해 준비단의 시스템적인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볼 생각입니다.
"90년대까지는 '의기제’자체가 가장 큰 대동제 프로그램 ... 2000년대이후 무관심해진 상황”
안타까운 부분은 원래 90년대까지는 대동제와 함께 진행됐고, ‘의기제’자체가 가장 큰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었지만 IMF이후 2000년대 들어온 후에는 준비단자체의 구성이 어려워지면서 점차 작아졌어요. 그러다보니 동문위주의 행사가 되고 의기형에 대해 무관심해진 상황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목표를 ‘함께하는 의기제’, ‘사람중심의 의기제’로 정한 부분도 있어요. 추모문화제를 통해 의기형의 숭고한 정신과 뜻을 그것을 모르는 재학생들과 함께 공유해야한다는 것이 추모문화제가 33년동안 이어올 수 있었던 중요한 목적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올해는 그 취지에 맞게 동문분들과 더불어 재학생분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활동들을 위주로 하고 있어요.
- ‘김의기열사의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재학생분들이 알아야하는 그리고 공유해야하는 의기형의 정신이라고 말한다면 사실 저도 잘 몰라요. 이건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저 역시 그 시대를 겪어본 사람도 아니고 대한민국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대학교에 와서 역사교양을 들으면서 들은 것, 농활에서 교양을 들은 것 등이 전부인 상황에서 의기형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그것에 대해 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서강학우들, 적어도 적어도 '의기형’에 대해 알고 졸업했으면” ...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다만 우리 서강학우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적어도 졸업하기전에는 ‘의기형’에 대해서 알고 졸업하면 좋겠다는 거에요. 우리학교선배로 정의로운 활동을 하고 돌아가신 열사잖아요. 적어도 그런 의기형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졸업해야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얼마전에 <무한도전>을 통해 나왔는데 유명한 말이잖아요. 저는 이 말을 굉장히 좋아해요.
우리나라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5.18에 대해서 ‘폭동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국가가 5.18광주항쟁에 참가한 분들과 유가족들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고 있잖아요. 이건 국가에서 ‘이것은 우리가 잘못했다’고 인정한 일인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5.18광주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광주하면 빨갱이라고 하고, 광주를 민주화운동이라고 하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부분들은 저뿐만 아니라 준비단을 하는 모두가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광주에 대해 부정한다는 것, 민중을 살상한 부분에 대해 그것을 부정할 뿐 아니라 또 그것을 '폭동'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역사를 잊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런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서강학우들은 없다고 믿지만 좀더 그런 실상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 추모문화제를 준비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끼나요?
재학생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져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농활가서도 ‘추모문화제 꼭 갈게요’, ‘고생하십니다’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이번에 꽉찬 버스2대로 광주에 간다. 학생들이 너무 현실에 치여서 살고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광주도 이번에는 작년에 비해 2배나 인원이 늘어서 꽉찬 버스2대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걸 보면서 아직 서강의 학생사회도 죽지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학생들이 너무 현실에 치여서 살고만 있는 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또 추모문화제를 도와주겠다는 분들도 많은데,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도와주겠다고 연락하는 분들도 많아요. 단장이 되다보니 재원마련같은 현실적인 부분도 괄시할 수 없었는데 동기들이 십시일반 지원금을 모아 후원금을 마련해주기도 했어요.
이럴 때 가슴이 따뜻해지고 뿌듯해요. 이걸 혼자 준비하는 게 아니라 서강학우들과 동문여러분, 그리고 학교와 함께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하죠.
- 21세기대학뉴스를 보는 대학생들 그리고 서강학우분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세요.
"기억해야 될 것은 잊지 않고 살아갔으면” ... "현실적이 되간다는 말은 생각의 폭이 작아진다는 것”
각박한 세상이죠. 요새 취업도 힘들고, 꿈을 가진 사람보다 꿈이 없는 사람이 많잖아요. 열심히는 사는데 앞으로 뭐가 될지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고 그래서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그런 각박한 세상인데 우리가 너무 현실적으로만 살면서 세상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지내지 말고 자기주변, 주변을 넘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으면 해요. 또 기억해야 될 것은 잊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도 각박하게 살아가던 사람중 한명이었어요. 군제대하고 더 각박하게 의무감에 살았던 것도 같아요. 현실적이 되간다는 말은 생각의 폭이 작아진다는 말과 동일하다고 봐요. 그게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여러가지 활동들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여러활동들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그때 의기제추모문화제 단원모집을 알게 돼서 이 의미있는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됐어요. 공부는 예전보다는 잘 못하고 있지만 저는 요새 즐거워요.
"의미있는 일 하고 있어 하루하루가 즐겁다”
살아있음을 느껴요.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서요. 지금은 굉장히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챙길 것도 많지만 친구들하고 의미있는 일을 함께하고 혼자하는 일이 아니라 준비단 친구들, 서강학우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있으니까 힘듦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즐겁게 준비하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유하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