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9일 연세대정문 앞, 시위 도중 연세대학생들에게 날아든 경찰의 최루탄에 의해 당시 경영학과 2학년이던 이한열열사가 목숨을 잃었다.
당시 친구가 뒤에서 부축했지만 축 늘어진 채 피를 흘리던 그의 모습이 한 외신기자의 사진을 통해 알려지면서 87년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한열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숨진 지 26년이 된 지금, SNS를 통해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글들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표창원 전경찰대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1987년 6월항쟁 당시 전 경찰대학생으로, 동기생들과 함께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며 당시의 고민으로 글을 시작했다.
이어 ‘‘시민항쟁’상황에서 경찰대학생의 존재의의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친구들과 조를 나눠 교수, 신부, 기자 등 ‘현자’들을 찾아 조언을 구했다’며 ‘한결같이 ‘시민의 편에 서겠다는 마음 굳게 다지며 미래를 위해 제자리를 지켜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표전교수는 ‘10년여 경찰관생활을 하며, 그리고 사직후 경찰대교수생활을 하며, ‘1987년 6월의 약속’을 지키겠다 마음속에 새기며 살았다’며 그러나 ‘여전히 용산참사와 대우자동차사태와 쌍용, 한진 등이 발생하는 것을 보며 무력자의 회한과 상처가 덧났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특히 국정원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사건발생 6개월, 다시 6월이 왔다’며 ‘정부는 그때처럼 거짓과 술수로 넘어가려한다. 1987년처럼 무식한 폭력을 사용하지 않음에, 그대신 ‘법’이라는 도구를 교묘히 사용함에 감사해야할까요, 울어야할까요’라고 개탄했다.
또 ‘지금도 여전히 시민들만, 힘없고 먹고살기바쁜 시민들만 분노하며 감정을 추수르지 못해 거리로 나선다’며 ‘그 힘없는 소수의 모습에 너무 미안하고 감사하고, 슬프다’고 전했다.
고상만 전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6월9일, 87년 이한열열사가 최루탄에 피격된 날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던져 희생된 분들이 이리 많은데 일베충 따위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안타까운 세상이다’라고 전하며 ‘고 이한열열사의 값진 희생에 다시 한번 생각한다’며 이날의 의미를 되새겼다.
소설가 서해성교수는 ‘정의야 너만 너무 늙었구나’라는 시를 통해 ‘정오가 뜨겁다/ 이한열이 직격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던 대낮처럼/ 오늘은 태양도 죄가 있다/ 정의가 비루할수록 햇살은 눈부시고 새벽은 밝다/ 백양로 포플러사이로 이한열도/ 6월도 그대로인데/ 정의야/ 너만 너무 늙었구나/ 오늘/ 격발되지 않은 모든 정의는 비겁해서 뜨겁다’고 전했다.
한편 당시의 역사를 증언하는 자료인 이한열열사의 마지막 옷가지, 운동화 등 유품보존이 비용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한열열사가 당시 입고 있던 학교이름(YONSEI)이 새겨진 파란색 티셔츠와 런닝셔츠는 선명했던 혈흔이 색이 바란 채 얼룩져있고, 한짝만 남은 운동화밑바닥은 절반이상이 부스러졌다.
연세대가 지난해 이한열열사사망25주기를 맞아 전시회를 열면서 사료의 전문보존처리를 약속했지만 항온․항습시설이 없으면 추가손상을 막기 어렵다.
연세대박물관 이원규학예사는 “땀과 피, 최루가스, 응급약품등으로 이미 손상된 옷이기 때문에 원형을 복원하긴 어렵다”며 “더이상의 변형을 막으려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 보존환경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에 9일 기념사업회는 항온·항습시설을 갖추기 위한 기금모금을 7월부터 진행할 계획이며, 다양한 경로로 기금모금을 고민중이라고 밝혔다.
유하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