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도 살기 버겁게 느껴지는 오늘날에도 함께 힘을 모아 '우리'라는 기치아래에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를 위해 이익이 돌아가는 '생협(생활협동조합)이 있다.
생협이 미래에 대한 대안이 되고 있는 요즘, 80년대 대학생들의 생활적 고민에 대한 접근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연세대 생활협동조합’과 함께하고 있는 김민우부장을 21세기대학뉴스에서 만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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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생협(연세대생활협동조합)의 시작은
연세대생협의 시작은 80년대초반, 사회적인 부분에 많은 영향을 받아서 시작하게 됐다. 80년대초반은 지금 젊은 친구들은 알 수 없지만 흔히 말해 '29만원밖에 없다'는 전두환, 노태우정권 시절이었다.
사회적·정치적으로도 그렇지만 당시 대학생들은 생활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흔히 80년 교육개혁이라고 불리는 7.30조치 등 여러가지 부분이 신군부에서 단행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 과정에서 예전보다 대학생이 30% 많아졌는데 급격하게 늘어난 학생들을 학교가 다 책임질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예를 들면 2500명이었던 학생들이 4300명정도로 늘어난 거다. 또 기초질서를 지킨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생활비수단으로 활용했던 과외를 국가가 강제로 금지시키면서 학생들이 생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게 됐다. 이 시절 다들 너무 힘드니까 선후배간에 밥을 사주거나 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되는 시기였다.
80년부터 81년 5월까지 학생시위가 있을 수 없는 폭압적 형태의 탄압이 진행됐다. 지금은 농담으로 ‘연대는 생맥주를 마신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맥주가 아닌 막걸리한잔도 얻어먹을 수 없을 정도로 얼어붙은 시기였다. 농담한마디를 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를 풀기 위해 5월부터 시위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학생회가 아닌 국가에서 지정한 학생회형태의 학도호국단이 있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학생회가 아닌 학교가 임명하는 감찰기관같은 형태다. 그래서 그것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이 많이 있었다.
82년이 되면서 학도호국단제도를 깨자는 논의가 되면서 83년에는 인원수대로 대의원을 뽑아 투표하도록 하고 학도호국단을 간선으로 유지하게 됐다.
"일상운동, 일상투쟁이라는 이름을 붙여 활동하기 시작"
이후 논의됐던 것이 학생들이 정치적·사회적으로 문제점을 이해하고 기층민중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살고 대학안에서 생활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일상운동, 일상투쟁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여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생활공간안에서 학생들과 교류하고 학생들의 고민들을 풀어내자는 논의들이 진행됐다. 그러면서 학교안에 들어와 있는 위탁업체나 운영매장들을 조사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에게 이익이 환원되기보다는 개인적인 부분으로 이익이 돌아간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지 않고 ‘학교의 새로운 방법으로 학생들의 아르바이트기회를 제공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한 것이 ‘학생직영사업’이었다.
학생식당입찰을 공개적으로 실시하면서 시작했고, 기초자금마련을 위해 학생복지기금 1억을 내는 사람에게 학생식당을 짓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입찰을 했다. 연세대의 규모와 내용이 있다보니 식당입찰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 복지기금을 통해 당시 학교전역에 있던 자동판매기업체에 1700만원을 주고 17대의 자동판매기와 하얀샘매점을 인수하면서 운영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르바이트생을 뽑고 당시 복지과를 통해서 추천받던 것을 학생들 자체적으로 어려운 학생을 추천해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고 운영을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전문경영인을 채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직원 4명과 아르바이트생 15명으로 처음 시작했다.
당시 등록금이 63만원정도였는데 하루장사를 하면 100만원씩 벌었기 때문에 우리사이에서는 ‘이러다가 학교를 사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 이후 운영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지
차곡차곡 돈을 모아 오랜 시절을 저렴한 가격으로 운영했다. 당시 자판기커피가 130원이었는데 1대당 3000잔씩 판매가 됐어요. 학교에 오면 커피한잔씩은 하던 시절이니 많은 학생들이 이용했고 직영을 하면서 100원으로 가격을 내렸다. 싸니까 많이 먹고 훨씬 효율이 높았다.
그러면서 학생복지관리위원회를 통해 활동을 꾸준히 진행했다. 86년도에는 학원안정법 등 당시 학생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됐는데 그러면서 연세대생협이 많은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것은 학생들을 통해 나온 돈이고 이 돈은 학생들을 위해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철저하고 깨끗하게 관리를 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금더 사회에 대해 먼저 안다고 그 돈을 마음대로 쓰는 것은 안된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관리를 하지 못한 대학들도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 연세대생협이 잘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투명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했기 때문"
연대생협이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투명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했던 부분이 가장 큰 것 같다. 이것은 아주 처음 시작할 때부터의 원칙이었다. 아무리 대의가 옳아도 이 돈을 사용하면 안된다는 원칙, 학원안정법이 통과되고 나서도 안기부, 교육부, 학교감사 등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 학생과 학교가 함께하게 된 배경과 그 이후 생활협동조합으로의 성장과정은 어떤지
이후 88년도부터 학교, 학생 공동직영이라는 개념으로 사업이 변경됐고 학교도 이 활동에 함께 하게 됐다. 위원장으로 들어와 운영을 함께 논의하게 되면서 함께 커오기 시작했다. 89년부터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주는 장학금이 당시 30만원이었는데 우리는 25만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이후 교수나 행정의 내용으로 선발해 지급되던 장학금이 학생스스로가 추천하고 선발할 수 있는 전통을 만들게 됐다.
또 자판기, 매점이 늘어나면서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다가 식당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후 3개의 관리위원회가 만들어졌어요. 연대생협에서 직영하는 곳은 전부 ‘샘’이라는 글자를 붙이는데 하얀샘, 슬기샘, 하늘샘 관리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통합운영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를 알게 됐다. 그래서 91년도 알뜰샘을 직영하는 과정에서 그런 논의가 진행됐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94년 12월16일 연세대생활협동조합으로 출범했다. 올해가 생협직영사업 30년, 내년이 생협으로 사업한 지 20년이 된다. 지금도 해결해야할 부분도 많지만 조합원들과 학내구성원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학내여러기구와 기관, 매장들을 만드는 등 노력을 통해 현재는 신촌·원주·국제 캠퍼스에 학내복지편의시설을 전부관리하는 매장으로 커졌다.
- 생활협동조합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중요한 것은 조합원을 위해 복무하는 것, 관리를 투명하게 하는 것, 살아남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협동조합이 조합원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것이다. 끌고가는 힘이 어디있느냐의 문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에게 그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만들어내야 성공할 수 있다. 조합원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원하는 것을 풀어주는 것이 가장 초기단계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는 원하는 것을 서로 같이 풀어나가는 것이다. 서강대의 ‘니가 나의 자랑이듯 나는 너의 자랑’ 이라는 문구나 ‘한사람의 백걸음이 아닌 백사람의 한걸음’ 같은 함께 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가 누구를 가르쳐주거나 요구해서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풀어내는 경험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즐겁고 수익도 학생들을 위해 환원해 낼 수 있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두번째는 관리를 투명하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도 이것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게 얼마나 올바르게 쓰이고 제대로 쓰이느냐에 대한 생각이 있다. 늘 모든 것들을 구성원들과 조합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받는가 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세번째는 살아남는 것이다.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든 역량을 투입해서 살아남기 위한 경제구조를 만드는 거다. 대학생협은 교육적 기능이 더 크긴 하지만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다. 전문화되지 못하는 부분을 통해 그 조직이 망하게 되면 그 조직이 없는데서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잘못된 경험을 가진 곳에서 새로 조직을 다시 만드는 것이 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
그러면서도 성장과 생존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한다. 그러다보면 가끔 경제적 개념에 묶일 때가 있는데 과거의 좋은 경험들이 있기에 두려움 없이 구성원들을 믿고 나갈 수 있는 거다.
과거 교보문고입점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여러 논의과정에서 우리가 한번 더 잘해 보자고 이야기가 됐다. 우리학교에 직영서점인 슬기샘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는가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식당에 대한 다양한 요구들이 있었다. 물론 다른 부분도 중요하지만 가격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맛과 질을 유지한 상황에서 생협에서 학생들을 위한 가격보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이 공유됐다. 함께 슬기롭게 문제를 풀어 2억원정도를 투입해 한끼에 300원씩 지원을 하는 등 논의를 통해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한사람이 급히가는 것보다 함께 가는 경험을 통해 연세대 나름대로 단단해지는 기회들이 존재했던 거다.
조직을 키우고 복지를 나눈고 이 두가지를 병행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고민을 많이 한다.
- 대학내생협을 만들려는 대학들에게 조언한다면
지금은 대단히 폭발적으로 협동조합이야기가 나오고 미래의 대안으로도 협동조합을 이야기하지만 기업마인드가 있는 기존 정치인들에게는 협동조합이 좋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열린 공간에서 생존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협동조합을 운영할 수 있는가'하는 고민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무조건 만들었다가 잘 되지 않기 쉽다.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각단위에서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른 대학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가 있다면 우선은 정확하게 협동조합은 무엇인지 배우는 게 필요하고, 함께 공부하고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모순과 조합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
제일 처음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해결해야 할 모순과 조합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다른 학교의 사례만 보고 시작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가장 필요하고 학생들에게 이슈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봐야 한다. 가장 문제가 첨예한 것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고려대세종캠퍼스에 김영곤교수님이 계신데 강의실에서 협동조합을 진행한다. 한학기동안 이익과 절약을 시간때마다 보고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세종에서 기회가 된다면 충분히 협동조합을 잘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문제를 푸는 방법을 고민하다보면 경험이 쌓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그 대학만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하나씩 모순된 것들을 해결하고 해결된 경험을 통해 다음을 준비하는 거다. 실핏줄과 핏줄이 엉겨질 수 있는 내용을 만드는 거다. 협동조합만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을 통해 일을 하면 되는 거니까. 작은 시도부터 하면 좋을 것 같다. 실패하더라도 해봐야하지만 하기전에 공부하고 가장 큰 모순과 문제점을 찾아서 자기들에게 맞는 협동조합을 만들려는 노력들이 모아진다면 내년 내후년 점차적으로 범위가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 대학생들, 21세기대학뉴스를 보는 이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다면
"한번쯤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는 것도 삶을 풍성하게 한다"
나는 대학시절에 내가 일을 해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놓고 30년을 그걸 통해 살고 있어요. 꼭 되어진 곳, 누군가가 이야기를 했을 때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곳에 가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한번쯤 자신이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거나 공부해보는 일들도 있으면 그게 조금더 전체적인 삶을 더 풍성하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하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