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김복동할머니의 증언이 있었다.
김복동할머니는 일본군이 "군복공장에 보낸다며 처녀들을 강제모집했고, '시집갈 때는 언제든 보내줄 수 있다'며 처녀들을 싹 쓸어갔다"고 말했다.
당시 15세였던 김할머니는 "'공장가는데 죽기야 하겠는가'라며 끌려간 곳이 '일본군 남자들을 상대하는 곳'이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처음에는 남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겁이 나서 말을 안 들으니까 맞기도 많이 맞았다"며 "말을 안 들으면 매가 돌아오니까 모든 것을 단념하고 따라 다녔다"고 밝혔다.
또 "광동에서 시작해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자바, 방콕 등 8년의 세월을 피눈물나게 끌려 다녔다"고 증언하고 "일요일은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상대로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계속해서 "자기들 필요할 때 써놓고 전쟁에서 패하자 우리들만 남겨놓고 도망갔고, 미군이 상륙해 미군수용소로 끌려갔는데 미군들이 조사를 해보니까 일본여자인지 알았는데 조선여성들이어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할머니는 고향에 돌아온 후 "어떻게 고향에 돌아와서 남자들 상대하는 그런데 갔다왔다고 말했겠는가"라며 '일본에서 공장에 다니다가 왔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어머니가 자신으로 인한 죄책감때문에 홧병으로 죽은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해방이 됐다고 해도 아직까지 우리는 해방이 안됐다"며 "젊을 때는 남편이 없다보니 하늘 아래는 엄마라고 부를 자식하나 없이 살고, 늙고 몸에 병이 드니 혼자 살 수 없어서 정대협의 구호를 받아서 거기서 남은 노인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일본정부가 잘못을 뉘우치고 법적으로 배상을 해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하니 너무나도 답답하고 안타깝다"며 심정을 전했다.
덧붙여 "아직도 배상을 못받고 이렇게 있지만 각국에 다녀보니까 나같이 안타깝게 버림받고 있는 여성들이 너무나 많다"며 '나비기금'을 모아 비슷한 처지의 전세계여성들에게 후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각국 정부들이 서로가 화합해서 일본정부를 압박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하고, "다시는 우리와 같은 일이 안 생기도록 여러분들께서도 힘을 모아서 하루 빨리 문제가 해결되도록 협력해주면 고맙겠다"고 당부했다.
김할머니의 증언이 끝나고 파리1대학철학교수 졍 살렘의 발언이 이어졌다.
살렘교수는 먼저 김할머니의 증언에 대해 "이렇게 가슴 아픈 증언은 처음"이라며 "정대협에서 이번에 프랑스를 찾은 이유중 하나가 프랑스당국과 정부가 움직이길 바라는 것 같은데 나도 열심히 돕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문제를 대할 때 유의해야 할 3가지를 제시했는데 첫번째는 역사를 부정하려는 시도이고, 두번째는 서양에서 많이 나타나는 동정여론이라며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끝나는 마음을 경계했으며, 세번째로 무고한 일본민중들에 대한 인종차별이나 분열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중요하게 범죄의 원흉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이 과거역사를 부정하고 수정하려는 것을 비판하며 아베총리가 들어서고 '위안부는 직업적인 매춘부였다', '위안부숫자가 2만명밖에 안된다' 등의 도발적인 발언들이 이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한편 그는 이런 투쟁을 할 때 "동정적, 감상적인 접근은 유의해야 한다"고 다시 강조하고, 피해자를 동정하는 것은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도덕적 보상심리를 느끼는 것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알제리민족해방투쟁당시 프랑스인으로서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도 살았던, 최근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버지 앙리 알레그를 언급하며 "아버지는 피해자도 영웅도 아니고 한사람의 활동가였다고 생각한다"며 김복동할머니도 "당시에는 피해자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나와서 활동하는 운동라가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후 살렘교수와 김할머니의 대담에서 살렘교수가 "유엔에서도 결의를 채택하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자 김할머니는 미국의 책임에 대해서도 지적하며 "그당시 미국이 해결만 잘 지어주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나이가 들도록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담이 끝난 후 살렘교수의 초청으로 참가했다고 밝힌 한청중은 프랑스 올렁드대통령이 몇주전에 일본을 방문해 프랑스정부가 일본과 군사협력을 맺으려 하는 것, 일본이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에 들어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보고 프랑스가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또다른 청중은 '위안부수용소에서 임신을 한 경우는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질문했는데 이에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대표는 "아기를 가져도 일본군인들을 상대하는 일을 피할 수가 없었다"며 1938년 당시 임신한 일본군'위안부'사진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줬다.
다이옥신피해희생자를위한베트남협회(VAVA)유럽대표 구옌 닥 누마이는 자신이 서울에서 2011년 6월 수요시위참가때 들은 이야기라며 "임신사실이 알려지면 낙태하는 곳에 보내지거나 그 여성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자신의 할머니가 비슷한 일을 겪은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밝힌 중국인여성은 "중국에도 피해자들이 많다"며 “김복동할머니가 어려운 시간들을 겪고 밝은 곳으로 나와서 우리앞에서 말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끝으로 김복동할머니는 "우리들이 지금 살 날이 얼마 안남았다"며 "살아생전 한을 풀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도록 여러분들께서 힘을 모아서 노력해주면 고맙겠다"고 당부했다.
정대협, 코리아국제포럼 등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프랑스 여성·인권단체 활동가 및 재불동포, 소르본대재학생 등 30여명이 참여했다.
임진영기자
*기사제휴 : 21세기민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