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하다 사장에게 성폭행당해 ... 급기야 자살
충남 서산에서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작은 피자가게의 사장이 아르바이트여학생을 강제로 협박하여 성폭행을 했다. 23세의 그 여대생은 결국 자신 아버지의 차에 연탄불을 피워 자살했고, 사장은 강간죄 혹은 강간치사죄로 처벌을 받을 예정이다.
이 여대생의 사연은 매우 충격적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학생은 피자가게 주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나체사진을 공개 하겠다는 협박을 계속해서 받아오며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피해를 당해왔다. 결국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 가득 담긴 유서와 함께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가해자는 줄곧 그 사실을 부인하며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경찰은 피해여성을 압박했다는 증거가 담겨있을 휴대폰 메시지기록을 복원중이다.
유족들은 딸의 장례가 끝난 후에야 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고 서산시장과 국무총리까지 이 사태를 언급하고 나선만큼 지역사회도 크게 술렁이고 있다.
이 사건이 안타까운 것은 고용자와 피고용자라는 관계 때문이다. 가해자가 사장이고 피해자가 그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사실에 많은 네티즌들이 분노했고,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까지 함께 나서게 되었다.
우리사회에서 사장과 아르바이트생, 즉 고용자와 노동자는 철저하게 강자와 약자인 힘의 관계에 있다. 더욱이 지금과 같이 고액의 등록금, 심각한 실업난의 상황은 한국사회에서 원래부터 약자였던 단기 아르바이트생을 더 처참한 약자로 내몬다. 고액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급기야 성폭행까지 당했다. 갖은 협박속에서 다시 또 다시 피해를 당하면서도 여학생은 사장에게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죽음으로 저항했을 뿐이었다. 유서를 통해 그 여학생의 한이 얼마나 컸는지, 당시 얼마나 고통이 컸는지 그대로 알 수 있다.
몇년전 연예인 장자연씨의 자살사건이 한국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녀는 스폰서, 성상납의 내용이 적힌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대생과 마찬가지로 억울하게 성관계를 강요당했던 것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을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라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한국사회의 상위1%에 속하는 권력층이 당시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상황이라 그런지 몰라도 피자가게 사장과는 다른 처벌을 받았다. 아니, 처벌받지 않았다. 차이점은 있다.
이런 차이에도 이 두사건은 더 많은 힘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추악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동일하다. 이런 일들이 주위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이유는 지금 우리의 시스템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것에는 야박하기 그지없는 반면 권력층 혹은 상대적 강자가 유리하도록 하는 사회 시스템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약자의 권리가 보호되는 사회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며 무엇보다 인식의 변화부터 필요하다.
여대생이 자살한 안타까운 사건은 두 가지 문제가 크게 보인다. 하나는 여성에 대한 천박한 인식과 성추행, 성폭력에 대한 지나친 관용이다. 이 문제는 하루빨리 뿌리 뽑아야 한다.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강화, CCTV설치 등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의식의 변화는 사회제도에 기인한다. 하지만 이런 제도를 만들어야 할 사회지도층의 인식들은 아직 갈길이 먼 우리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후보시절 이명박대통령의 ‘덜 예쁜 마사지걸이 서비스가 좋다’는 말이나 한나라당 대표시절 안상수의원의 ‘자연산 발언’, 여기자를 추행하고 ‘음식점 주인인줄 알았다’는 한나라당국회의원의 얼토당토않은 이야기, 춘향전은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는 이야기’라던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말에는 지금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어느 수준인가를 잘 나타나있다.
심지어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도 멀쩡히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에서 의원직을 이어나가고 있다.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며 동지애를 발휘하는 전국회의장의 저급한 의식이 남아있는 한 이런 망언들이 우리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우선 이런 정치인들, 지도층인사부터 다시는 공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피고용인, 즉 노동자를 보호하는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단기지만 아르바이트생도 노동자다. 요즘은 300만 대학생중 대다수가 아르바이트의 경험이 있으며 방학마다 일을 찾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등학생, 주부 등 단기노동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생은 약자중에 약자다. 일을 시작할 때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하면 이상한 학생으로 취급되기 쉽고, 최저임금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등학생의 경우는 ‘수습’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장기간 일해도 최저임금의 80% 정도만 지급한다.
얼마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아르바이트 실태조사가 발표된 적이 있다.
많은 여고생들이 사업주가 성관계를 해주면 아르바이트비를 올려주고 특별대우를 해주겠다고 제안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을 했다. 아르바이트는 법의 사각지대와도 같다.
피해를 당하면 ‘더러워서’ 그만둬야 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신고해도, 사장에게 대들어도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 노동현장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는 제도적, 교육적 장치마련이 시급하다.
23살. 가장 아름다울 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대생.
빚내서 교육한다는 ‘에듀푸어’ 인구가 305만명을 돌파한 지금, 1000만원 등록금시대인 지금.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꽃 같은 여대생의 죽음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여성문제, 노동자의 권리 등 다양하다. 빨리 이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겹치는 모습이 있다. 1년전 등록금마련을 위해 냉각창고에서 일하다 출구에서 몇 발자국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이다.
‘운이 없어서’ 이 대학생들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지 이런 일은 ‘알바생’ 누구나에게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으며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다. 등록금.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 날 나와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크기.
연간 1000만원의 등록금과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생의 안전과 권리, 여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뿌리 깊게 연관되어 있다. 결국 각각의 문제가 개선되고 유기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만이 근본적 해결책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을 반성하고 사회가 책임을 지려는 것. 그것이 안타까운 죽음에 진심의 애도를 표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김형준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