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어머니>
기록영화 / 개봉일 2012.04.05 / 101분 / 감독_태준식
어머니는 멀리서 찾아온 일본교수들에게 ‘그날’의 일을 설명한다. 아주 여러번 말해왔듯이 차분하게, 그러나 때때로 숨을 몰아쉬면서 말을 멈춘다. “우르르 우르르 하면서 뱃속에서 막 끓는 소리가 나. ‘엄마, 왜 내 말에 대답 안 해?’ 다그쳐 묻는데 그 소리 듣느라 내가 대답을 못해. 그러니까 막 소리를 쳐. 큰 소리로 대답하래. 옆에 있던 의사가 칼로 여기(목)를 죽 그어주니 우그르르했던 거품이 쏟아지면서 그제야 소리가 안 나. 그래서 내가 막 크게 대답했어. 그런다고. 너 하라는대로 한다고. 그랬더니 후하고 큰 숨을 쉬더니 그제야 끝났어…” 보다 못한 옆사람이 “어머니, 이제 그만 하세요”하는 소리에 뭔가를 애써 더 말하려던 어머니의 표정에 안도감이 돈다. 이소선어머니는 얼마나 많이 저런 식으로 가슴속에 묻었던 아들을 꺼내고 또 꺼냈을까. 혼자속으로만 가만히 들여다보아도 눈물에 가슴속이 다 짓물렀을 텐데, 어머니는 전태일이라는 아들을 온전히 가슴에 묻을 수가 없었다.
태준식감독의 <어머니>는 이소선어머니가 아들곁으로 떠나기 전, 몇년 동안을 담은 기록영화다. 보통 할머니들처럼 몸이 성하지 않아서 여기저기 아프고, 틀니도 끼우고, 지쳐서 낮잠을 청하는 어머니. 언뜻보면 평안해보이기도 하던 그 모습이 영화속시간이 거꾸로 가면서 투사로 변한다. 그래, 어머니는 투사였지. 우리곁을 떠나시기 몇달전 의식을 잃고 누워있던 그 모습이 아니라, 노동자대회 단상에 올라서 “하나가 되세요! 하나가 되세요!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 연설을 하던 모습이었지. 방송국파업현장에 나타나서 힘을 주시고, 쓰러지기 직전에도 크레인위에 올라가있는 김진숙이가 안타까워 희망버스를 타시려고 했었지. 유가협부모님들과 함께 거리를 누비고, 아들이 부탁하고 간 청계피복거리의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고, 야유회에 가셨었지. 영화는 그렇게 건강이 악화된 뒤 돌아가시기까지 2, 3년 동안과 어머니의 일생을 조용히 교차하면서 어머니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이야기한다.
감독은 이소선어머니가 벗을 수 없었던, 벗으려 해본 적 없었던 ‘전태일의 어머니’라는 수식어를 다시 풀어쓴다. 어머니야 아들을 수십번도 다시 가슴에 묻어보고 싶었을테지만, 시대가 아들을 자꾸만 다시 꺼내어 ‘그날’의 이별을 반복하게 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수백수천번 다시 아들을 묻는 슬픔을 반복하면서 아들이 이루려고 했던 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수십번의 담금질 끝에 "내가 못다한 일, 어머니가 꼭 이뤄주소. 내가 죽고 없으면 엄마가 댕기면서 '학생들하고 노동자들하고 단결해서 싸워야 한다'고... 그렇게 외쳐 주소" 아들이 남기고 간 말은 “하나가 되세요!”라는 어머니의 외침으로 강렬하게 남았다. 전태일의 어머니는 끝끝내 ‘투사이소선’이 되었다. 고리끼의 소설속에서 혁명가파벨의 어머니가 온전하게 자신의 의지로 싸우는 ‘펠라게야 닐로바’가 되었듯이.
어머니가 아들곁으로 떠난 뒤, 남은 사람들은 슬픔을 털어낸다. 아직은 얼떨떨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내마음속에 있다고,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려마고 묻는다. 어머니가 아들을 가슴속에 묻지 못한 덕에 우리는 그힘으로 참 길고 험한 역사를 넘었다고.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서 관객들은 못다 흘린 눈물을 마저 쏟아내면서 어머니를 가슴 속에 묻는다. 헤아릴 수 없는 큰 빚을 전태일과 이소선에게 지고 있는 우리가 어머니가 남긴 말을 억척스럽게 해내고야 말아야 할 차례다.
어머니는 할 일을 다 하셨지만, 우리는 아니다. 총선을 통해서도 노동운동의 현장에서도 진보정당 운동의 현장에서도 어머니처럼 당당하기는 아직 글렀다. 부끄러운 진보진영의 모습 위로 다시는 들을 수 없는, 그러나 가슴에 묻었기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여전히 번개처럼 번쩍이고 천둥처럼 울린다. 우리가 여전히 작은 차이에 저마다의 속계산에 아웅다웅하는 모습위로 죽비처럼 떨어진다. “하나가 되세요! 더 큰 하나가 되어서 반드시 승리하세요!”
강순영(서울민주아카이브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