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코리아>
“가능할까?”
모든 신화는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대한 상상력. 그리고 무모한 도전. 역사의 큰 획은 그렇게 그어져 왔다. 개봉3일만에 4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외국영화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질주를 하고 있는 영화 <코리아>는 그 ‘신화’ 중 하나를 선택했다. 남북단일탁구팀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강의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1991년. 긴긴 군사독재 끝에 87년 6.29선언으로 들어선 노태우정권의 중반부. 여전히 통일은 멀어보였고, 중국을 이기는 것보다 남북이 한팀이 되는 것이 더 불가능해보였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남북 탁구단일팀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데, 더 비현실적으로 단일팀은 따로따로는 한번도 넘지 못했던 중국의 벽을 넘기까지 했다.
<코리아>는 이 실재했던 ‘신화’를 다룬 영화다. 소재 자체의 강력한 힘과 수준급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가 가진 ‘신파성’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보통 사람들 역시 그냥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만으로도 ‘다시는 볼 수 없다. 연락도 할 수 없다’는 분단의 비극성을 홍수처럼 느끼게 되는데, 40여일 함께 훈련하고 호흡을 맞춰 극적인 승리를 이루기까지 한 선수들은 정말 가족과 헤어지는 것 같은 비통함을 느꼈을 것이다. 관객은 그 비통함을 고스란히 전해받는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보통사람은 접근하기 어려운 군사지역을 소재로 삼은 반면, <코리아>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스포츠를 소재로 삼으면서 몰입도를 더했다.
<코리아>의 가장 뛰어난 점은 그 ‘신화’를 찾아내 영화로 만든 것 자체에 있다. 90년대에 비해 좋을 것이 없는 현재 남북관계의 출로 역시 보이지 않는다. 20년은 퇴보했다고 평가되는 현 정부의 통일정책은 영화에서 오두만이 상대를 자극하는 줄 알면서도 동료 이름과 똑같은 당시 이북 주석의 이름을 장난스럽게 불러대는 수준보다도 낮다. 긴장관계가 최고조인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라는 말은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리아>는 불가능한 것이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으며, 그런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 얼마나 강력한 폭발력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실제 단일탁구팀이 구성되었던 1991년 12월에는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표되면서 코리아반도에 통일의 훈풍이 불기도 했다.
물론 <코리아>에서는 정치논리가 우선인 통일문제의 본질도 잘 드러난다. 영화 내내 단일팀의 양측 총책임자들은 ‘우승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이 팀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정치적 목표를 위한 것임이 조금은 거칠게 드러난다. 그 정치적 목표가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세련되게 밝혀지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한계라면 한계다. 또, 정치논리를 적용시키는 것이 북측이라는 점만 강조해 균형잡힌 시각을 잃으면서, 영화 자체가 정치논리의 희생양이 된 것 역시 한계다. 북 보안요원들이 북측 선수들의 짐 수색을 함부로 한다던가, 몇 가지 남측선수들로부터 받은 물건 때문에 준결승 경기를 안 내보낸다거나 하는 무리한 설정은 사실 <공동경비구역 JSA>나 <웰컴투 동막골>보다 후퇴한 에피소드 구성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정치논리를 뛰어넘는 선수들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연대감, 그리고 절박한 마음과 행동이 ‘신화’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코리아>에서 전달하는 메시지의 본질은 정치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바로 불가능을 뛰어넘는 힘은 논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때로는 이론과 논문보다 영화 한편이 더 많은 사회적 변화를 불러오듯이. 양 측의 정치적, 논리적 차이는 부둥켜안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분단의 슬픔보다 깊지 못하고, 같은 편에 섰을 때 느끼는 충만감은 논리가 만들어놓은 간극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는다. <코리아>는 그 ‘신화’의 힘이 여전히 우리 민족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보수 언론에서 통일에 대한 요즘 젊은이들의 인식이 어떻다, 통일비용이 어떻다 논리적 수치로 ‘불가능’을 강조한다고 해도, 이미 역사 속 ‘신화’는 그것이 가능함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리아>에서 북측 대표선수 ‘리분희’를 맡은 배우 배두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리분희 선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라 하자. 쉽게 말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한 문장을 전했다. “아...리분희 선수, 보고 싶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코리아>가 하고 싶은 단 한 마디.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하고 싶은 한 마디. 그리고 우리 민족이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그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강순영(서울민주아카이브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