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영화제특별취재단] 가족영화 '앳 애니 프라이스(AT ANY PRICE)'를 보고
미국 중서부 아이오와주에서 아버지의 농장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는 헨리 위플(데니스 퀘이드)은 그의 아들도 자신의 농장을 물려받기를 원하지만 아들 딘(잭 에프론)은 카레이서가 되고 싶어한다. 이 부자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헨리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그를 도덕적 잣대로 삼으며 그가 일궈낸 농장을 이어 나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졌다. 하지만 첫째 아들 그랜트는 자신의 꿈을 펼치며 세계를 돌아다니고 둘째인 딘은 농사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자유롭게 사는 형 그랜트를 동경한다.
딘은 스톡카레이싱에 재능이 있고 동네대회에서도 우승을 했지만 지역대회에서 좌절을 겪으며 차가운 현실을 맛보게 된다. 딘이 상처받는 모습을 통해 헨리는 그랜트가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곧 돌아올 것이라는 맹신을 스스로 재고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로 가족전체를 흔드는 위기상황을 겪는다. 결국 그들은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며 결속력을 다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라만 바흐러니는 ‘카트 끄는 남자’, ‘굿바이 솔로’ 등으로 미국에서 존경 받는 감독이다. 그리고 이번에 좀 더 큰 스케일의 영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가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겠다.
영화는 전형적인 미국인들을 바탕으로 한, 다소 ‘막장’의 여지도 있는 불륜관계를 비롯한 진부한 아침드라마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으며, 제목이기도 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의 의미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면에 있어서 사회적으로든 단순히 영화속 캐릭터에 한해서든 긍정적인 미래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농장일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가 한번의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꿈을 접는 딘의 캐릭터는 이해하기 힘들다.
’20·30대에게 실수는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고 안철수가 말했듯, 누구나 인생에 굴곡이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자가 성공한다는 희망적인 메시지 없이 딘은 결국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는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며 영화속 모든 갈등관계와 이야기를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가둬버리고 얼렁뚱땅 결말을 내버린다.
주인공 헨리 역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무모한 인물로, 결국 모든 난관과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굴복하고 아내에게 기대는 나약한 캐릭터다.
마치 모든 일이 잘 해결됐다는 듯 끝나는 결말은 억지스런 감동을 준다.
게다가 도덕적으로 큰 결함이 있는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족을 지켜내야 한다는 억지를 부린다. 이는 ‘나만, 우리만, 우리 가족만 잘 되면 돼’라는 자본주의사회의 이기적인 현상에 있어서 어떠한 비판의식도 없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준다.
영화의 발전적인 면을 보자면, 이 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반영하듯,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이상적인 사회이자 인류의 시작인 모계사회로 향함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여성캐릭터들은 진취적이고 현실적인 데다가 심지어 우직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헨리의 아내 아이린은 가정과 대농장을 돌보는 안주인으로서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남편의 불륜을 알면서도 용서해주고 아들이 자신의 꿈을 키울 수 있게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며 영화속 남자들이 저지른 모든 잘못을 떠안는 그녀는 비단 미국에만 한정되지 않는 현실속 아내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딘의 여자친구 케이던스 또한 진취적이다. 헨리가 이웃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할 때 뛰어난 말솜씨와 재치로 그를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준다.
딘이 ‘이게 다 이 좁아터진 시골동네 때문이야’라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말썽을 부리는 동안 케이던스는 강한 의지로 마을을 떠난다.
비록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 미래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그녀의 추진력과 강단은 높이 살만하다.
그외 헨리의 불륜녀인 메레디스도 딘의 불평과 불만에 ‘너나 너네 아빠나 징징댈 줄만 아는구나’라며 그에게 한방 먹이고 케이던스에게 이 마을을 떠나라고 말하는 모습은 나름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아이오와주 시골마을의 전통적인 농업이 사회를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는 산업화된 유전자조작식품(GMO)농업으로 대체된 것이다.
감독 라만 바흐러니는 “내가 영화를 찍기 위해 6개월동안 미국중서부에서 농부들과 함께 지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두가지 말이 ‘확장하거나 죽거나’와 ‘커지거나 나가거나’ 였다. 이 문구들은 미국인과 성공을 향한 전세계적 꿈의 촉매제역할을 한다. 유전자조작종자 판매자가 스마트폰을 통해 세계시장을 정기적으로 체크하는 동안 농부들은 고도로 발전한 기술로 수백만달러의 사업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에서 주인공 헨리를 통해 무한경쟁사회속에서 한남자가 그의 가족, 이웃, 공동체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자신까지도 넘어서 사업의 확장을 더 중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알고 싶어했다.
영화는 ‘이런 극심한 경쟁사회를 직면한 상황에서도 과연 그의 가족은 함께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 전달 방식이 효과적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미국농업의 무한경쟁의 문제점과 간접적으로나마 대기업곡물회사를 이야기했다는 점에서는 이 영화를 진부한 헐리우드 가족영화보다는 한단계 높게 평가할 수 있겠다.
김다민통신원(베니스영화제특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