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몰락 앞당긴 ‘아내의 살인교사’
출세가도를 달리던 중국최상층정치가 보시라이(薄熙來)의 극적인 몰락이 세계적 화제가 되고 있다. 보시라이는 중국혁명원로자녀들의 세력인 태자당의 주요인물로 다롄시장과 경제부장관, 충칭시서기 등을 거치며 거물정치가로 성장해왔다.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중앙정치국의 25인정치위원 중 한명이자 가장 유력한 차기상무위원후보였다.
그런데 충칭시의 부시장이자 공안담당이었던 왕리쥔이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의 비리를 조사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왕리쥔은 부패척결을 위해 보시라이가 다롄에서 영입한 최측근이었다. 이후 왕리쥔은 분노한 보시라이에 의해 해임됐고, 위기감을 느껴 칭다오에 있는 미국대사관으로 망명을 시도했다. 왕리쥔은 당시 보시라이일가의 부정부패가 담긴 기밀보고서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보시라이는 충칭시서기직에서 해임됐다.
이후 구카이라이가 영국인사업가 닐 헤이우드의 죽음과 연관됐다는 보도가 잇따랐고, 수사 끝에 현재 구속이 확정된 상태다. 헤이우드는 작년11월 충칭의 어느 호텔에서 숨진채로 발견됐다. 그는 보시라이일가와 절친했던 사이로 아들 보구아구아의 유학생활을 돌봐준 인물로 알려졌다.
구카이라이가 헤이우드의 살인을 지시한 이유와 관련해 수많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영국첩보기관출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일하던 헤이우드가 보시라이일가에 접근해 스파이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또 구카이라이와 내연관계였던 헤이우드가 보시라이일가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것을 돕다 배신을 시도해 죽임을 당했다는 설도 있다.
이 일로 보시라이는 충칭시서기직해임 이후 그나마 유지했던 중앙정치국정치위원직도 잃었다. 정치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하버드정치대학원에 유학중인 아들 보구아구아마저 미국망명의혹이 제기됐다. 현재 보구아구아는 하버드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태자당의 아이콘이었던 보시라이는 당원으로서 최고의 수모이자 처벌인 쌍규(雙規)에 들어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쌍규는 중국공산당기율검사위원회가 당원에 한해 무제한의 수사를 벌일 수 있는 조치로, 재판 없이도 피의자를 6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으며, 가족에게 연락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 역시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시라이사건, 진실 그대로인가?
치열하게 진행되는 중국의 권력다툼
중국매체 둬웨이(多維)는 내부관계자의 말을 인용, “중앙정부는 보시라이의 범죄행위와 관련한 다량의 자료를 확보했으며, 현재 보시라이는 악질의 부패문제와 형사사건, 그리고 중앙정부에 도전한 1인독재주의 등의 죄목에 연루돼 있다”고 전했다. 보시라이의 뇌물수수액은 역대최대규모이며 무엇보다 중앙정부에 대한 도전으로 인해 정치생명이 끝난 것은 물론 사형선고까지 내려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보시라이의 실각 안에 감춰진 것이 더 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왕리쥔의 내사보고서부터가 논란거리다. 정치위원인 보시라이가 중앙정치국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임명한 공안국장에 의해 내사를 받은 것이 석연찮다는 것이다. 또 법률가인 구카이라이가 보시라이에게 큰 피해가 갈 것이 자명한데도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굳이 살인을 지시한 것, 뒤처리까지 허술하게 했다는 것도 의문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것에 대해 올가을 지도부교체를 앞둔 중국의 파벌간 권력다툼이 표면적으로 드러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현재 최고지도부인 9인상무위원중 시진핑과 리커창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의 교체가 예정돼있는 예민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충칭모델 등 급진적인 ‘좌클릭’정책과 함께 신모택동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며 높은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던 보시라이가 ‘튀어나온 돌’로 찍혀 제거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보시라이의 실각은 현 집권파 베이징방, 즉 공청단파가 다음에 집권할 상하이방·태자당 연합을 견제한 것으로 보인다. 차기주석인 시진핑은 당초 18차당대회에서 중국공산당총서기직을 물려받고, 내년 3월에 있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직을 물려받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최근 당대회가 내년으로 연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대회가 연기된다면 정치국상무위원을 둘러싼 암투가 격화된 결과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후진타오주석측은 상무위원을 현재의 9명에서 7명으로 줄여 공청단파가 다수가 되길 희망하고 있으나, 다른 파벌들은 상무위원의 숫자를 11명으로 늘리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시라이사건의 이면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국내의 권력투쟁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보시라이에 대한 처분은 올여름 최고지도부와 당원로들이 참가할 베이다이허(北戴河)회의 전에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이예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