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가을에 도입된 수업료
필자는 2005년도에 처음으로 독일에 도착했다. 그리고 2007년도에 석사과정을 등록하면서 학업을 시작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보수당출신의 메르켈정부가 들어서면서 등록금도입논의가 시작됐고, 2007년 가을학기부터 등록금이 도입됐다.
등록금은 보통 수업료와 행정비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업료는 그야말로 수업에 관한 비용으로 등록금도입에 찬성하는 자들은 이 비용으로 저소득층의 장학금비중을 높이고 도서관에 더 많은 책을 구비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독일에서 비교적 잘 보장돼 있는 학생특권으로 인해 무의미하게 졸업을 늦춰 사회진출을 미루는 학생들의 증가는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에 비해 행정비용은 그야말로 학교에서 발급하는 서류나 기타 기숙사, 교통카드 등과 관련한 비용이었고, 이 행정비용은 기존부터 있어왔다. 결국 무상이었던 독일대학에서의 등록금도입은 바로 수업료의 도입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본격적으로 모든 학과에서 일률적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차츰차츰 그 범위를 넓혀가면서 등록금을 도입했다. 다시 말해 필자가 등록한 프라이부르크(Freiburg)법대의 LL.M과정은 등록금도입이 2008년이후로 미루어졌고, 박사과정은 아예 모든 학과에서 등록금이 없었다.
3남매이상의 집안이면 등록금면제
당시 아내도 같이 학사과정의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내의 경우도 등록금이 도입됐음에도 불구하고 등록금면제대상으로 혜택을 받았다. 왜냐하면 아내의 경우 동생이 2명이 있었기 때문에, 즉 3남매이상의 집안출신이어서 등록금이 면제된 것이다. 아무래도 부양할 가족이 많은 집안에 대한 배려인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혜택은 독일인이건 외국인이건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후 1년후 결혼한 여자후배가 역시 대학에 등록했고, 1학기등록금으로 605유로를 지불했다. 프라이부르크의 경우 수업료는 500유로이고 행정비용은 105유로였다. 당시 우리나라돈으로 환산하면 80만원정도였다. 물론 이나마도 일률적이진 않다. 예를 들어 브레멘주나 베를린주의 경우 행정비용은 고작 50유로다.
한가지 한국의 교육시스템과 다른 것은 독일은 연방국가이기 때문에 주의 자치권한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관련 모든 사항은 사실상 주의 관할에 속한다. 따라서 독일의 보수당인 기민당정부가 들어서서 대학등록금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견해를 달리하는 야당이 집권한 주는 등록금이 도입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구동독지역의 대학은 등록금이 도입되지 않았고 니더작센주나, 헤센 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바이에른주과 함부르크주와 필자가 거주하던 프라이부르크가 속하는 역시 보수적이라고 평가 받는 바뎀-뷔르템베르크 등이 등록금도입에 찬성했다.
자녀가 있는 학생들은 남성이건 여성이건 학비면제
그런데 그 여자후배가 아기를 낳고 나고 다시 학교에 등록하자 그나마 있던 등록금도 역시 면제돼 있었다. 즉 자녀가 있는 학생의 경우에도 역시 면제대상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보수적인 주라고 해도 자녀가 있는 학생들의 경우 남성이건 여성이건 학비가 역시 면제된다. 결국 등록금이 도입된다해도 다양한 면제사유를 둠으로써 공부하는 학생들의 학업에는 최대한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의 흔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후배는 그 이후로 등록금걱정 없이 학업에만 치중할 수 있었다.
하나 사족을 덧붙이자면 독일의 경우 이른바 싱글맘의 경우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등록금이 면제될 뿐만 아니라 기숙사에서도 최우선혜택이 주어지고 아이를 돌봐주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우선권을 주어질 뿐 아니라 비단 유치원비용뿐만 아니라 아이의 생활비와 의료비 심지어 엄마의 용돈까지 대부분의 애와 관련 모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
우스개소리로 '공부하다 힘들거나 생활하기 힘들면 애 낳으라'는 말이 여기서는 통용된다. 그러면 오히려 모든 것을 국가가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공부하기 수월하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경우 가장 도움이 필요한 상황의 사람이 오히려 동일한 사안에서 대부분 학업을 중단하고 학교를 떠나 결국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면 복지가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100만원이 안되는 등록금도입에 독일전역에서 반대시위
여하튼 연간 100만원도 안되는 등록금이 독일에 도입되자 사회적으로 엄청난 저항이 일어났다. 당장 여기저기서 등록금반대투쟁이 독일전역에서 불길처럼 일어난 것이었다. 특히 당사자인 독일 대학생들은 대학무상교육을 주장하며 끊임없이 정부와 맞섰고, 선거권이 없는 필자와 같은 외국인 학생들도 등록금폐지에 큰 지지를 보냈다. 심지어 미래의 당사자인 10대들도 단체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브레멘주의 경우 10대학생 150여명이 3번이나 학교를 점거해서 '교육을 앞으로'라는 구호로 등록금반대투쟁을 벌여나갔고, 독일 30여 주요도시에서 수천명의 고등학생, 대학생, 직업교육생들이 모여 시위 및 가두행진을 벌였다. 브란덴부르크주의 경우 이에 한술 더 떠서 학부모뿐만 아니라 교사도 이 시위에 동참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대략 530여만명이 대학등록금정책에 대해 반대목소리를 내고 이를 지지했던 의원들을 대폭 물갈이하면서 대학등록금은 점차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독일의 대표적인 실패한 정책 '등록금도입정책’
결국 도입한지 2년도 채 안된 2008년 헤센주와 자아란트주가 등록금을 폐지했고, 2010년 브레멘주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2011년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의 경우 등록금도입 4년만인 2010년 등록금을 없앴고, 2012년 10월학기부터 보수적인 함부르크주도 등록금을 폐지했다. 물론 이는 이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사민당이 대거 당선된 결과였다. 결국 보수적이라고 하던 필자가 속한 바덴뷔르템베르크주도 2012년 등록금이 폐지됐다.
혹자는 일본 후쿠시마원전사태를 계기로 최초로 녹색당출신 주지사가 집권하자 등록금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미 그 전에 이런 시민들의 저항에 버틸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등록금폐지는 결정된 상태였다. 이와 같이 독일에서의 등록금도입정책은 더 이상 동력을 잃어갔고 실패한 대표적인 정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결국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등록금폐지가 국민들의 힘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홍준기(프라이부르크대학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