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8일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앞으로 열흘간 이어질 이번 영화제에서는 45개국에서 초청된 221개 작품이 상영된다. 올해 개막작으로는 로버트 뷔드로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 <본 투 비 블루(에단 호크, 카르멘 에조고 주연)>가 초청됐다.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는 1960년대 천재 재즈뮤지션인 트럼펫연주자 쳇 베이커의 삶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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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명작을 남기며 역사에 이름을 새긴 예술가들은 그들의 삶 자체만으로도 영감의 근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는 깊은 여운을 준다. 뮤지션의 일생을 다룬 전기영화는 대개의 경우 재능이 싹트는 유년기로 시작해 화려한 전성기를 거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시들어가는 노년기로 마감하는 것이 전형적이다. 그런 점에서 <본 투 비 블루>가 여타 전기영화와 다른 점은 그것이 한 천재의 파란만장한 일생중 침체기를 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끝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한때 일류연주자들과 최고의 재즈뮤지션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트럼펫연주자 쳇 베이커(에단 호크)는 약물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몰락한 처지이다. 거기에다 부상으로 구강과 턱이 망가져 트럼펫연주마저 어려워진다. 이같은 큼지막한 사건들은 극의 초입에 몰아친다. 이후 영화의 대부분은 쳇 베이커의 더딘 회복기를 그리고 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새로운 사랑, 제인(카르멘 에조고)을 만난 쳇은 천천히, 필사적으로 약물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또한 틀니를 끼고 트럼펫을 연주하는 법을 익히며 재즈뮤지션으로의 재기를 꿈꾼다. 모든 걸 잃은 주인공이 무너진 일상을 착실히 재건해가는 과정은 묵묵한 전투와 같다. 그러나 어딘지 불안한 분위기가 감돈다. 단단한 앞니를 잃고 틀니로 간신히 마우스피스를 받치며 연주에 몰입하지만 자꾸만 흔들리는 그의 트럼펫음정처럼 말이다.
 
쳇 베이커의 일생은 중독과의 끊임없는 싸움이었고, 반복되는 패배였다. 트럼펫에 대해서는 부상을 딛고 기적을 만들어낼 정도로 꺾이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일상에서는 어린 아이 같이 나약하고 미성숙해 언제나 의존할 버팀목이 필요했다. 그런 그가 재기에 성공하자마자 다시 헤로인에 손을 대는 것은 예정된 패배였지만, 약기운에 취해 트럼펫을 연주하는 마지막 장면은 긴 여운으로 남는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전부 올라갈 때까지 길게 이어지던 <본 투 비 블루>의 노래자락과 함께 말이다.  

전주국제영화제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