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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특별취재단] 베니스영화제 회고전에서 상영된 이탈리아 파솔리니의 문제작 'Porcile(돼지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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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잡쳤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딱 느낀 감정이었다. 그렇게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에는 일단 사람을 죽이는 장면, 먹는 장면, 사람이 먹히는 장면까지 모두 나오기 때문이다. 역겨울 수밖에 없다.


이번 베니스영화제 회고전에서 상영된 <Porcile>은 이탈리아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문제작중 하나다. 파솔리니는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최악의 불쾌감을 무릅쓰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은 경이롭다” 그야말로 최악의 불쾌감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 불쾌감을 무릅쓰고 경이롭게 표현한 ‘스스로’는 무엇일까?


영화는 두가지 이야기에 각각 나오는 두명의 젊은 남자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중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줄리앙이다. 줄리앙은 나치전범이었던 어느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이다. 그는 어릴 적에 돼지 두마리를 훔쳐왔는데, 그가 25살이 되었을 때 돼지는 몇십마리로 늘어난다.


줄리앙은 자신만의 세계에 확고하게 머물러 있으면서 스스로를 혁명과 순응, 그 어느 쪽도 아닌 곳에 머물러있다고 정의한다. 줄리앙의 약혼녀인 17살 소녀 이다는 공산주의자다. 그는 혁명적이지 못한 줄리앙을 비판하는데, 줄리앙은 이다보다는 돼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줄리앙의 아버지인 클로츠는 그의 보좌관 한스, 동료 기업가 헤르히츠와 힘을 합쳐 사업적 라이벌을 제거하려 한다. 그들이 파티를 연 사이, 줄리앙은 돼지우리에 갔다가 돼지들에게 먹혀버린다.


머리카락 한올, 단추 하나 남기지 않고 말이다. 이 집안의 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헤르히츠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헤르히츠는 흔적이 남았는지 묻고, 없음을 확인하자 그럼 입 다물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줄리앙의 아버지와 헤르히츠의 만남은 각각 제3제국(히틀러치하의 독일)과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룬 전후 독일(Wirtschaftswunder Germany)사이의 연계를 의미한다.


기른 주인을 먹어버린 돼지들은 줄리앙의 아버지와 헤르히츠의 대화에서 발견할 수 있듯 유대인, 유대자본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먹혀버린 아들 줄리앙은 무엇을 뜻할까? 헤르히츠가 줄리앙의 죽음을 덮으려 하인들에게 ‘쉿!’하며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자 하이라이트다.


영화는 마치 출발 비디오여행에서 두가지 영화를 비교할 때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면을 바꿔가며 각각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두번째 이야기는 15세기 중세시대, 화산에 머무르면서 인육을 먹는 남자의 이야기다.


첫장면에서 아주 잠깐, 어릴 때 비디오로 본 광야의 예수를 떠올리기도 했다. 척박한 광야에서 누더기 걸치고 터덜터덜 걷는 야윈 남자. 등장하자마자 그는 나비를 잡아먹는다. 다음으로는 돌로 뱀을 내리쳐 그대로 뜯어먹는다.


세번째는, 지나가던 군인과 칼싸움을 벌여 이긴 후 총으로 죽이고 머리를 베어 화산 불구덩이에 던지고 나서 몸을 구워먹는다. 곧 동료들이 생기고 수레에 실려 끌려가던 여자노예들도 그 무리에 합류하는데, 남자들이 사람을 죽이면 머리를 베어 불구덩이에 던져 넣고 다같이 시신을 구워먹는다.


희생자가 속출하고 목격자까지 생기자 이내 군인들이 출동해 그들을 마을로 끌고 간다. 끌려온 사람들을 앞에 두고 유대인으로 보이는 성직자들이 판결문을 읽은 뒤, 이들을 다시 화산지대로 데려가 땅에 말뚝을 박고 그들을 눕혀 사지를 말뚝에 묶어버린다.


묶인 사람들은 곧 들개들에게 뜯어 먹히기 시작한다. 앞에 쓴 이야기보다는 이쪽이 훨씬 역겹다.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이자 대장격인 남자가 말뚝에 묶이기 전에 한 대사다. “나는 아버지를 죽였고, 인육을 먹었고, 기쁨에 몸을 떨었다” 눈에 약간 눈물을 머금고 허공을 쳐다보면서 이 말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반복한다.


인간이 먹고 먹히는 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려고 하는 건 어떤 것이었을까? 파솔리니는 이탈리아가 낳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중 한명으로 꼽힌다. 파솔리니는 영화감독뿐만 아니라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비평가였다. 하지만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진 분야는 영화제작이었다.


파솔리니는 그의 수많은 문제작들을 통해 그 복잡한 생애와 사상을 드러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파시스트 장교인 아버지와 농민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일종의 상징적인 행위로서 아버지가 폭력을 가하자 아버지에 대한 호감을 일체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에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부정적으로 그려내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 대표적인 좌파감독으로서 부르주아에 대한 노골적 반감을 갖고 있었던 파솔리니는 산업화이전의 원시적 사회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고, 이것은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가 15세기 화산지대 장면을 어디서 촬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트를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파솔리니는 <Porcile>에서도 산업화이전의 15세기 중세시대에 원시적으로 식인을 하는 장면을 넣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세상의 기저에 신화적인 본성이 존재하며, 원시적인 시대의 폭력성과 야만성까지도 일종의 불가사의함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파솔리니는 사회의 밑바닥층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애착을 늘 갖고 있었고 이들이 신화적인 의식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 영화에서도 첫번째 이야기의 하인들, 두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무리와 마을주민들, 여자노예들이 등장해 이같은 파솔리니의 의식을 반영한다.


파솔리니는 이러한 최하층 민중들을 영화에 담으면서 스스로 이를 ‘오염(contamination)의 형식’이라고 칭했다. 이 영화야말로 수많은 파격을 담아내 자주 스캔들을 불러온 그의 영화들중에서도 1, 2위를 다툴 만큼 ‘오염’된 영화다. 식인이라는 행위, 또 산채로 짐승에게 먹힌다는 것은 그만큼 가볍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파솔리니는 <Porcile>에서 야만, 폭력, 욕망을 마구 얽어 그대로 보여준다.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데도 묘하게 긴장감 없는 이 영화 때문에 기분은 완전 잡쳤지만, 복잡한 예술영화 특유의 매력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보라면 못 볼 것 같다.


김민정통신원(베니스영화제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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