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심리적 충격이 크면 오히려 기억이 흐릿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내게는 4월 그날의 기억이 그렇다. 동네에서 자주 보던 언니오빠들 또래의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 전원구조했다는 뉴스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내겐 흐릿한 기억으로 남았다. 다만 어렸던 나조차도 마음 한켠이 무작정 힘들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당시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들은 어린 우리가 슬픔에 빠져 힘들어하지 않도록 어떻게든 우리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수학여행내내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놀면서도 마음 한켠이 불편했다. 참사당시 대통령 박근혜의 7시간의 행방도 세월호침몰의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나만 즐겁게 수학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는 할수 있는 게 없었다. 너무 어리고 약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는 여전히 내게 아픈 기억이다. 2022년 가을, 이태원에서 10.29참사가 있었다. 이번엔 내 또래다. 어제 본 동네친구가, 내일 보기로 약속한 선배가 그 장소를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사가 있었던 그 장소는 매해 할로윈데이를 앞두고 인파가 많이 몰리던 장소였다. 사람이 많이 모일 것이라 충분히 예상가능한 상황이었는데도 경찰인력배치 등 안전대책이 미흡했다. 참사후 윤석열정부는 <주최자가 없는 지역행사>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언론을 탄압했다. 10년전 그날의 봄처럼 우리는 내 친구와 가족, 이웃을 잃었다는 슬픔을, 또다시 참사가 반복됐다는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수많은 참사를 겪으며 자란 나는 우리에게 슬픔이 반복되는 이유를, 지금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가 해야할 역할을 이젠 알고 있다.

10.29참사가 있은 직후 내가 수강하던 강의에서 교수가 10.29참사추모의 의미를 담은 수업을 한차례 진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교수는 본질은 보지 못했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월호참사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충분히 막을수 있었던 10.29참사가 기어코 일어난 것도 모두 같은 이유다. 세월호참사에 책임이 있는 박근혜의 7시간에 대한 기록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어 봉인됐다.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자 집무실을 이전해 경찰인력을 출퇴근경호인력으로 소모하고, 어떻게든 업적을 만들어내보고자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 정작 안전을 위해 필요한 곳에 인력배치를 하지 않았다. 다시말해 우리가 겪어야만했던 참사는 정부가 우리를 참사와 재난으로부터 보호해야할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몇차례나 바뀐 지금, 사회적 재난이 반복된 이유는 그 정부가 오롯이 우리민중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서다.

우리가 겪은 참사는 단순히 슬퍼만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4월이 되면 노란 리본을 달고 10월엔 보라색 리본을 달며 눈물을 흘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가 나서야할 때다. 대학생인 우리는 앞장서 투쟁의 길로 나서야 한다. 우리는 세월호참사의 슬픔을 딛고 이 참사의 분노를 마무리지을 때가 됐다. 4월 민중항쟁, 6월항쟁의 역사가 그러했듯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우리민중이 안전하게 살아갈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단추를 채우자. 우리가 가진 슬픔의 시작과 끝은 행동이며 실천이다.

유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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