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하늘은 궂었다. 공기중에서는 비냄새가 났고, 밟고 선 땅은 젖어 질척였다. 곧이라도 비가 떨어질 것 같은 하늘 아래 우리는 두손을 가만히 모은 채로 이철규열사의 추모제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럼 머지않아 사회자의 목소리와 함께 추모제가 시작된다. 이철규열사는 조선대학교에 82학번으로 입학해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는 박철웅이 장악한 조선대학교의 학내민주화에 목소리를 높였으며, <민주조선>이라는 교지편집부의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미제침략100년사>라는 논문을 기고한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돼 경찰검문후 10일만인 1985년 5월10일, 광주 수원지 물속에서 발견된다. 시체는 검게 타있었고, 왼쪽 눈알은 돌출된 채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으나, 국가에서는 이를 단순한 익사사고라고 단정했다.  
 
이철규. 모난데 없는 그 이름을 속으로 몇번이고 되뇌인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시대에 살아가는 후대로서 혀끝에 새겨 잊어버리지 않기 위함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민주화를 외치는 시대는 이제 갔다고. 이제 우리가 외쳐야 하는 것은 엄혹한 자본주의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라고.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가. 열사의 약력이 지나가고, 머릿속을 치고 지나가는 지난 시대권력의 잔혹성에 신음하며, 입술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그 사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이제 우리는 죽은 이들의 무덤 앞에서 이제와 그들이 부르짖던 민주주의의 시대가 왔노라 단언할 수 있는가. 그러나 정말로 그들이 바란 봄이 우리앞에 도래했다면, 우리는 왜 아직도 먼저 보낸 이의 사인을 바로 읽지 못하는가. 왜 여전히 끊어내지 못한 통곡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가. 그 질문이 심장께를 따끔거리며 찔러댔다.  
 
이제와, 우리는 먼저 간 이 앞에서 하나의 질문을 마주한다, 봄은 언제 오는가. 먼저 간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희붐하게 들판을 적시는 봄은 도대체 언제 오는가.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추모제에 앞선 이들의 등으로, 나란히 선 이들의 옆얼굴로, 마이크를 붙든 이의 경의에 찬 목소리로 읽는다. 먼저 선 이들을 기억하는 이들의 눈길속에서. 포기를 말하는 대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걸음으로. 곁에 선 이들이 있음을 아는 자들의 목소리로. 먼저 간 이들과 오늘의 우리가 바라는 봄은 그렇게 오는 것이다. 니힐리즘에 빠지기 쉬운 시대다. 세상은 엄혹할 것이다. 삶은 다정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지칠지언정 우리는 골방으로 도망쳐서는 안된다. 비정하고 잔혹한 사회에 순응해서는 안된다. 때론 하염없는 절망이 우리를 쳐서 꺾으려고 할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걸음, 단 한걸음을 외치며. 왜냐하면 그것만이 시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며, 오직 그것이 살아서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이다.  
 
다시 5월이 왔다. 슬퍼할 것이 너무 많은 계절이 굽이굽이 돌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지나가지 않는 나날은 없고, 도래하지 않는 계절은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 잊지 않는 우리가 여전히 이 자리에 서있는 이상 언젠가는 그들의 이름을 부둥켜안고서 아주 좋은 봄날, 마음놓고 목놓아 울 수도 있을 것이다. 봄이여,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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