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청에서 다시 촛불을 들고 모이는 사람들을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지금은 당장 함께할 수 없는 먼 곳에 있지만 나는 촛불집회를 늘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내 나이대인 20대 초중반이 바로 촛불집회를 경험하며 자라난 대표적인 ‘촛불세대’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촛불집회는 개인적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된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가운데 효순‧미선 두 언니가 평택에서 주한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 일을 계기로 큰 촛불집회가 열렸고,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촛불집회에 가서 수천명의 사람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서 역사에도 언론에도 사람들의 생각에도 각각 다른 관점이 있고, 올바른 관점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전까지 모든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항상 부모님이었는데, 이 촛불집회를 계기로 스스로 진보적인 관점을 갖기를 원하게 됐다. 촛불집회가 우리 또래에게 미친 영향은 굉장히 컸다고 본다.

 

또 한두명씩 모인 많은 사람들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재밌고 기분 좋은 일인지도 알았다. 어떻게 보면 책에서 보던 진부한 말이지만 이걸 실제로 경험했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의 내게는 그야말로 입체적으로 확 느껴졌던 것 같다.

 

이후에도 노무현대통령탄핵, 남(코리아)미FTA 등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생겨서 촛불집회가 열릴 때면 힘닿는 만큼 참가하려 했다. FTA반대집회를 할 때는 우리 또래 학생들이 촛불집회를 시작하고 ‘촛불소녀’라는 상징적 존재로 부각되는 걸 보면서 뿌듯해하기도 했다.

 

촛불집회가 점차 문화제 성격이 강하게 띠게 된 것도 흥미로웠다. 현행법에서 해가 진 이후 옥외집회나 시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한 목적이긴 했지만 덕분에 노래, 춤 등 시위문화가 다채로워진 건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광범위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작년에 동갑내기 일본인 친구와 남코리아의 촛불집회에 대해서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인들에게 촛불집회가 상당히 과격한 이미지였던 것도 의외였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시위를 한다는 걸 그 친구가 이해하기 어려워했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어린애들이 부모 손을 잡고,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회사원들이 퇴근 후에 촛불집회에 참가한다는 걸 설명하느라 한참 걸렸다. 그 친구 말고도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다들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차이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남코리아에서는 우리 부모님세대부터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통해 세상을 바꾼 경험이 있고, 그래서 젊은이들이 시위나 파업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우호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반면 일본에서 시위나 파업의 이미지는 정말 과격하고 폭력적인 편이다. 역사적 요인도 있고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

 

지금까지 촛불집회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우리 부모님들이 겪은 민주화투쟁의 기억과 연결되어 다양한 세대가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경험할 기회가 되었고, 반미의식이 대중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젊은이들이 국가폭력, 시민의식, 언론문제 등 많은 부분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면도 크다. 촛불집회로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 없었던 것은 커다란 한계지만 긍정적으로 볼 부분도 분명히 많다.

 

4년전에 제대로 끝내지 못한 남미FTA반대투쟁이 2012년 다시 광우병쇠고기를 중심으로 재개됐다. 작년과 올해초에도 등록금투쟁이나 FTA비준반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물대포를 맞아가며 촛불을 밝혔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로 계속 진행될 것이다.

 

촛불집회는 특히 우리 세대에게 있어 하나의 문화이자 상징적인 활동이 되었다. 민주화세대가 우리에게 그 경험을 물려주었듯이 우리 촛불세대에게도 ‘촛불’을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어떤 기억으로 남길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다.

 

 윤승민(21세기대학뉴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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