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민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하루는 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어떤 사람을 바라보는데 누가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하고 말하더구나.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라 느껴졌다> - 1883년 3월,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 -

빈센트 반 고흐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별이 빛나는 밤>이다. 그 외에도 <해바라기>, <아몬드나무>, <사이프러스나무> 등 인상주의 영향을 받은 밝고 생기 넘치는 작품들을 많이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고흐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그림은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었다. 고흐는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열렬히 사랑했다. 모두가 화려한 전망대로 오를 동안 탄광촌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삶을 탐구했다. 자신의 옷을 광부들에게 내어주고 밥도 잘 먹지 않으며 살았다. 탄광은 고흐가 화가로써의 가치관을 확립한 중요한 장소다. 탄광을 떠난 후에도 언제나 자신이 어울렸던 평범한 노동자들을 잊지 않았다. 연필을 들고 스케치를 하던 어느날 고흐는 편지에서 <언젠가 내가 그들을 그릴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종류의 사람들이 대중의 눈앞에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라고 썼다. 

오베르쉬르우아즈는 고흐가 생의 마지막 70일을 보냈던 곳이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작고 아담한 마을에서 고흐가 화폭에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생각했다. 여기에는 고흐 그림의 배경이 된 오베르 시청부터 시작해서 조금만 걸어가면 고흐가 살았던 여관, 고흐 동상이 있는 공원 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공원앞 빵집에서 빵 하나 물고 여관을 따라 비탈길을 쭉 올라가면 <오베르의 교회> 배경인 교회가 나온다. 유럽 주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대한 성당들보다는 단조롭지만 이 마을에서는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한다. 잠깐 숨을 돌리고 다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까마귀 나는 밀밭>이 떠오르는 넓은 들판을 만난다. 고흐가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눴던 그 들판을 가로질러 고흐의 묘로 갔다. 누군가 뜨개질로 만들어 준 해바라기가 놓여 있는 고흐의 무덤은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소탈한 고흐의 묘 앞에 서서 내가 마주한 마을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마주한 풍경은 고흐의 묘처럼 소박했다. 작고 조용한 마을에서 고흐는 무슨 재미로 그림을 그렸을까? 마을 곳곳에 놓인 표지판 속 고흐 그림에서는 고흐가 사랑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시민권력을 상징하는 시청은 밝고 화사하게 표현한데 반해, 신을 모시며 지난 봉건사회를 지배했던 교회는 어둡고 칙칙하게 묘사했다. 신은 없다고 단언하는 고흐의 가치관이 엿보인다. 그러나 시청 앞에서 축제를 즐기는 이들이 없다. 시민권력이 아직 모든 시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축제를 진정으로 즐기는 시민들도 없는 것이다. 추수를 앞둔 풍요로운 밀밭에서 날아다니는 것은 알곡을 다 쪼아먹는 까마귀 뿐이다. 시선을 압도할 만큼 강렬한 색채를 쓰고 노동을 아름답게 여기는 고흐가 밀밭을 가꾼 농부 대신 까마귀를 그렸다는 것은 수확물이란 이익을 노리는 약탈자를 까만색의 까마귀로 비유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고흐의 그림 몇개만 봐도 그의 제일 중요한 가치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예술인공동체를 운영하려고 노력했던 고흐의 과거까지 염두한다면 고흐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잘할수 있는 그림으로 사람을 등한시하는 현 사회를 비판한 것이다. 고흐의 무덤 앞에 선 내가 정말 작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고흐가 뛰어난 화가라서가 아니다. 죽기 직전까지 탐욕으로 물든 정신을 비판하고 노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민주적인 공동체를 원하는 마음을 캔버스에 옮겨 담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흐의 그림 한장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다. 생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비운의 화가의 뜻은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사람들의 심장속에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삶의 가치는 무엇으로 빛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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