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번 '5.18광주민중항쟁' 왜곡 등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일베의 등장부터 5.18역사왜곡까지 이를 분석한 기고를 연재한다.


① 이명박5년 … 그리고 파쇼들의 등장

② 데카르트로 일베 보기 

③ 일베에 대한 단상 ... '너 일베충이니?'를 보고  

④ 5.18, 그리고 의북증? 


요즘 '너 일베충이니?' 페이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일베(일간베스트)'가 2010년 만들어진 커뮤니티라는 걸 알고서는 한번 뜨악했고, 그 내부모습을 보고 한번 더 뜨악했다. 스스로를 '애국보수'라고 부르는 일베인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착잡한 심정도 들고 한편으로는 분노스러운 마음도 생겼던 게 사실이다. 좌파된 입장에서 결코 그들을 환영해줄 수는 없을 터, 그렇다고 그들을 그냥 무시하기도 그래서 나름대로 그들을 분석하려는 시도(?)를 해봤다. 부질없는 짓인가? 해볼만한 것 같다. 왜냐고? 난 잉여니까!


1. 팩트검증논란?


일베인들이 흔히 들고 나오는 카드 중 하나, 어쩌면 그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바로 이 '팩트'가 될 것이다. 그런데 따져보자. 이들이 '팩트'랍시고 들고 나오는 것들을 근거로 하니 순식간에 이들앞에서 5.18은 '폭동'으로 규정됐다. 이것이 반증해주는 그들의 사고구조는 어떤 것인가?


아도르노를 인용하자면 이들의 '팩트'논란은 과도한 도구적 이성의 결말인 듯 하다. 도구적 이성의 가장 큰 특징은 이성특유의 기능인 '반성적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풀어 말하자면 어떤 윤리성이나 도덕자체를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는 말인데, 이들의 팩트논란은 딱 그 모양인 듯 싶다. 그 어떤 윤리적 타당성이나 도덕적 판단은 고의적으로 배제시킨 후 단지 자신들이 가진 '편향된' 팩트를 가져다가 사건을 규정지어 버리는 것이다. 


어떤 맥락적 판단도 없이, 과도한 도구적 이성에 경도된 반성 없는 인간들이 갈 수 있는 곳의 최종 종착지를 아도르노는 '파시즘'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자신들은 '팩트'를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정작 맥락이 결여되고 윤리와 도덕이 결여된 팩트는 효과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팩트'를 말하는 그들의 '이성'은 필경 도구화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들에게서 보여지는 일반적인 도덕의 파괴와 보편타당한 윤리의 무시는 그들의 '이성'이 그 반성적 기능을 잃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팩트'를 검증하겠다며 발광하다가 본질을 훼손해버리는 논리구조를 보노라면 역겹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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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너 일베충이니?'페이스북


2. 어떤 자유주의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를 규정할 때 '무의식'이라고 했던가? 이들이 들고 나오는 '팩트'는 언뜻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 그 팩트조차 그들의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것이 아닌가. 실증주의에 편향된 이들이 내놓는 '팩트'들이 정작 그 논점자체가 애초부터 왜곡된 것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는 은폐하고 그 반대급부에선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들은 '좌편향'이라며 도덕적 공세를 퍼붓곤 한다. 나는 이런 그들의 모습에서 하나의 자유주의적 프레임을 보곤 한다.


쉽게 말하면, 진보의 어떤 부분을 '전체주의'로 세팅해놓고, 그 반대급부에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자유주의)를 배치한 후 '저항'의 리비도를 투사하는 것이다. 저항자의 이미지는 숭고하다. 그들에게는 종종 도덕적 금기조차 윤리성의 이름으로 허락되곤 한다. 예를 들면 독립투사들은 '살인'이라는 도덕적 금기를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윤리성으로 극복했다.


이런 그들의 모습에서 보이는 하나의 문제틀은, 그들이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자유주의적 문법의 어떤 부분이 사실상 그 반대급부에 있는 독재에 대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도록 유도하는 반동적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87년대투쟁이후 민주화가 진전된 후 이들의 눈에는 한국사회가 '좌경화'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들 자신을 좌경화라는 것을 전체주의로 깔아놓고 거기에 저항하는 자유주의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의 뉴라이트고, 현재의 일베인들이 아닌가 싶다. 자유주의의 어떤 부분이 오히려 독재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반동적 결과물을 생산해낸 것이다.


3. 좌경화에 대한 그들의 환상


사실 좌파의 입장에서는 너무 웃긴 부분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예를 들어 '좌좀'이라던가, 흔히 보이는 '좌빨'이라던가, '빨갱이'라든가 하는 단어들이 지시하는 대상 혹은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범위자체가 매카시즘의 그것과 너무도 닮았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이 정작 '좌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는 점을 반증해주는 것 같다.


단적으로 보면, 그들은 거개가 민주당을 '좌파'라고 부르고 있다. 새누리당조차 '좌클릭'했다며 '좌파'라고 비난하는 일부도 있다. 이들의 이런 비난 혹은 비판에서 두가지 모습을 보게 된다.


첫째, 그들에게 '좌파'는 어떤 이념적·정치적 대결자로서 동등한 입장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악'의 리비도만을 투사한 낙인찍기에 불과하다는 점. 둘째, 그들에게 '좌파'의 기준자체가 굉장히 일원화됐다는 점. 예를 들어, 그들은 민주당이 과거 대북유화정책을 펼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에게 '종북좌파'라는 낙인을 찍었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한국은 좌파천국일까. 좌파인 내입장에서 한국사회가 좌경화되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난 그냥 허허 웃고 말 것 같다. 좌경화가 그렇게 심각하다면, 대학가에서 운동권들이 절반이상 수권하고, 진보신당이 적어도 30%이상의 지지율은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다못해, 국제표준(?)으로 '말랑말랑한' 사민주의정당에 속하는 진보정의당조차 지지율이 바닥을 도는 판국에 무슨 좌경화란 말인가.


재밌는 건, 신자유주의를 대대적으로 실행하며 한국사회에 안착시킨 노무현과 김대중의 이미지는 그들에게 '좌파'로 남아있다. 정작 좌파들은 그들과 누구보다 열심히 투쟁하지 않았던가. 대체 노무현과 김대중이 계급과, 계급투쟁과, 계급정당과 얼마나 가까웠다고? 이런 걸 두고 흔히 '약을 판다'고 한다. 아, 여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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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너 일베하면 못써'페이스북 


4. 아류인종주의 – 지역혐오와 여성혐오


이들의 대표적인 하나의 모습으로 자리잡은 지역혐오와 여성혐오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 자신은 일종의 '블랙유머'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일반화된다면 다른 차원의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 그들은 이미 공공연히 특정지역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고, 또 여성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보X'라느니, '김치X'라느니 하는 식으로 비하에 머물러 있다. 나는 이걸 '아류인종주의'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한다. 범죄율 혹은 어떤 사례의 과도한 일반화를 통한 그들의 규정행태는 사실상 인종주의와 그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과거 나치독일이 독일의 경제위기를 유태인에게 돌렸듯이 말이다.


인종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내부적 모순을 극단적으로 타자화된 외부의 '적대적 존재'로 치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선이후 등장한 '전라도를 독립시켜라' 따위의 비관용적 어구들은 사실 이런 오류에 기반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적대자'로 규정된 외부에 가해지는 의무는 곧 '선한 우리'를 위한 죽음 혹은 멸망이다. 그들의 지역혐오는 이런 인식에 근거한 것이라 생각된다. 


단지, 인종주의에서는 '적대적 타자'가 '다른 인종'으로 세팅된 것이라면 이들에게는 '적대적 타자'가 '다른 지역'일 뿐이다. 때문에 이들은 한국사회내부에서 심화되는 모순들 – 안보, 치안, 민족적 모순 등 – 을 외부로 전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조화롭지 못한 건 다 저놈들이 분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니까. 우리가 고통스러운 건 다 저 놈들 때문이니까.


여성혐오 역시도 이런 인종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나, 또다른 요소가 결부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여성의 지위상승이 일어남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낮게 느껴지는 남성의 지위에 대한 반발로 봐야 할 것 같다. 시대가 진보하면서 이뤄지는 담론교체의 과정이 만들어낸 하나의 모순이 여성에 대한 혐오라는 반동적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들에게 여성은 단지 '보X'로 불리운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들의 의식 속에 여성은 그저 남성에게 속박돼야 한다는 남근주의적 사고가 작동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역혐오든, 여성혐오든 그 사유의 근본은 사실상 모순의 전가에 불과하다. 이것이 인종주의와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단지 이들의 사고로부터 도출되는 폭력성이 물리적으로 표현되지 못하도록 시스템적으로 제어가 되고 있다는 것 뿐.


5. '조화로운 우리'?


인종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조화로운 우리'라는 그들의 전제와도 일부 연관이 있을 듯 하다. '자유민주주의'는 조화로울 수 있는가? 본래부터 민주주의라는 것은 분열과 적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가치다. 노동자를 다루는 이들의 태도 – '귀족노조'니, '밥그릇'이니 – 를 본다면 이들의 망상증을 쉽게 알 수 있을 듯 하다.


간단하게 보자. 노조의 운동은 '밥그릇'이라며 우익들로부터 질타받곤 하지만, 자본가들의 돈 놓고 돈 먹기는 '보편적 이익' 혹은 '국익'으로 시멘트칠되곤 한다. 그러나 여기서 자본가들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국가'라는 상징계를 제거해보면 결국 자본가 계급이나, 노동자계급이나 둘다 같은 밥그릇싸움을 하는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간단한 추론에서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은, 애당초 환원불가능한 적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서로 양보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천만에! 제 아무리 양보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적대적 관계가 청산되지는 않는 법이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자연상태의 인간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규정한다. 국가와 법체계는 단지 자연상태의 무정부적 상황을 덮기 위한 하나의 상징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금 거칠게 보자면, 홉스는 인간의 본성과는 별개로, 인간집단이 결국 분열하고 적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볼 수 있겠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이런 적대를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함이 옳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의 사유는 이런 적대자체를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것', 또는 '불가능한 것'으로 세팅한 뒤, 이런 망상의 오류를 외부로 전가한다. 예전에 배슬기의 트윗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배슬기류의 언어에서 추출할 수 있는 핵심적 내용을 본다면 바로 '적'에 대한 망상이다. 이런 망상이 가져오는 결과물은 뻔하다. 매카시즘이 가져온 공포는 미국시민에게 무엇을 선사했는가.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가 사실상 그 자신들조차 전체주의로 묶어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6. 거짓에 대한 모순적 태도


일베인들의 또하나의 트레이드마크를 고르자면 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선동'이라는 단어가 있겠다. 이번엔 그들의 '선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파헤쳐 보자.


앞에서도 말한 것이지만 이들의 비판의식의 어떤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자유주의로 색칠돼 있다. 앞에서는 그런 자유주의가 사실상의 전체주의로 반동화됐다고 말했다면 여기서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자유주의의 텍스트를 말해보려고 한다. 너무 길게 쓰는 것 같아 피곤해서 이번 건 짧게 쓰려고 한다. 


그들이 '선동'이라는 문법을 사용할 때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그들이 '선동'이라는 단어를 거짓텍스트와 결부시켜 사용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거짓텍스트에 놀아나서 진실을 못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진실이 대체 뭔가?


이들의 이러한 문법은 다분히 탈이데올로기, 탈정치따위의 자유주의텍스트를 그대로 따라하는 모양새다. 탈이데올로기의 핵심적 내용은 이런 이데올로기나 정치따위가 굉장히 관념적이고 거짓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념, 정치, 사회, 심지어 국가까지도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이 탈이데올로기의 핵심적 내용이다.


일베인들이 '선동'이라는 문법을 사용하는 것은, 다분히 거짓된 텍스트에 놀아나 실제를 못보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상대편을 '거짓에 놀아나는 무지몽매한 인간들'로 둔갑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대체 무엇인가? 국가, 안보 따위의 언어화된 것들이다.


예컨대, '간첩에 선동당한 사람들'이라는 그들의 대표적인 문구를 보면 될 듯 하다. 간첩에 선동된 사람들은 '일베인들에 따르면' 언어화된 거짓에 놀아나서 진실을 못 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간첩'이라는 그들의 언어는 '안보' 혹은 '국가'라는 텍스트위에 파생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탈이데올로기는 이런 안보나 국가조차 언어화된 이데올로기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를 언어로 덮은 것일 뿐이라는 문제의식에서 기원하여 그 거짓된 언어를 비판하지만, 정작 그 거짓을 비판하는 도구가 거짓된 언어라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도구가 거짓됨을 은폐한다. '자유주의의 화신' 노릇을 하자니 자신들의 도구가 걸리고, 그렇다고 '국가주의만세'를 외치자니 극우주의자가 되고. 캬. 정말 머리 아플 노릇이다. 이들은 이 모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7. 좌파의 사생아? 자유주의의 사생아?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로부터 사생된 이들인가? 좌파로부터 사생했는가, 자유주의로부터 사생했는가? 사실 대부분의 일베인들이 사실상 자유주의적 문법을 취하게 된 건 촛불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2008년 촛불이후, 2010년 일베가 급성장한 것은 이런 배경이 한몫했을 것이다. 촛불이 지니던 어떤 전체주의적 모습에서 그들은 또다른 전체주의적 스탠스를 취하게 된 것인 한편, 여기에는 그 거대한 촛불을 조직하지 못해 그들을 급진적으로 이끌지 못한 좌파의 탓도 일정하게 작용한다. 파시즘은 종종 좌파의 '얇은' 부위를 뚫고 들어오곤 한다. 그들은 그렇게 대중성을 얻는 것이다.


사실 좀더 비중을 두자면 좌파들이 조직을 하지 못한 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이들로부터 보여지는 일종의 강력한 냉소주의는 어떤 점에선 굉장히 급진적이다. 이런 급진성을 결합시키고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거대한 '자유로운' 촛불을 조직할 필요가 있었다. 촛불을 비집고 왔던 친노세력의 자유주의와도 싸울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 좌파들은 미온적이었다. 일부 자유주의자들이나 촛불을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라며 찬가를 부르기 바빴을 뿐이다.


어찌 보면 친노세력의 자유주의프레임이 일정하게 전체주의적으로 반동화됐듯이, 일베인들 역시 친노들과 그런 점에서는 공통되는 분모가 있는 듯 하다. 친노세력이 MB의 '독재'를 말하며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적 스탠스로 자유주의적 문법을 취했다가 결국 모종의 전체주의로 치달았듯, 일베인들 역시 촛불의 전체주의성에 대한 비판으로 자유주의적 문법을 취했다가 결국 그들도 전체주의로 치달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일베인과 친노는 꼭 닮은 면이 있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친노세력은 일정하게 의회에 종속된 한편 일베인들은 오른쪽에서의 무정부주의적 성격, 그러니까 또다른 '혐오스러운' 래디컬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2008년 촛불 당시 좌파가 활발했다면 이들중 상당수는 충분히 좌파가 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자유주의의 사생아든, 좌파의 사생아든, 현재 일베의 모습은 결코 호감을 가질만한 집단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지만…


8. 마치며


장장 워드로 6페이지에 달하는 이 글을 쓰면서 참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일베의 등장과 그들의 거대화는 사실 한국사회의 심각한 우경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임과 동시에 현재 좌파가 설 곳이 마땅찮다는 생각도 하는 한편, 일베가 보이는 어떤 파시즘, 전체주의에 대한 대응책이나 고민은 사실 나혼자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나름대로 전체주의와 파시즘이라는 문제에 천착하여 그들의 사고구조를 파헤쳐 보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내가 한 분석중 많은 부분은 비약도 많을 것이고 틀린 부분도 많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일베의 거대화는 결코 좌시할 수만은 없는 문제고, 단순히 '유머'라는 것으로 봐주기에도 한계가 있으며 표현의 자유라는 다분히 관용적인 어구로 받아주기에는 너무도 폭력적이라는 사실이다. 단순히 '일베'라는 일개 커뮤니티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들이 생산해내는 '담론'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까지는 무시해왔을지는 몰라도, 그들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무시할 수 없다. 이젠 정말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지 싶다.


최태준(인천대)

*기고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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