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영화제특별취재단] 영화 ‘배신’에 담긴 러시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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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소련해체이후 벌써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0년간 세계는 미국에 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됐고, 그로인한 세계경제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정황을 만들었다.


자본주의 세계열강들은 100년전처럼 저마다 강한 국가를 외치며 할거하는 시기 세계최초의 사회주의혁명을 성공한 나라로 변혁의 붉은기를 휘날리던 소비에트연방공화국, 현재 러시아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최근 국제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러시아국영TV의 실력자 키릴 세레브렌니코프(Kiril Sereberennikov)감독의 <배신(IZMENA : Betrayal)>에 담겨있는 러시아미래에 대한 열쇠를 꺼내본다.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과 1990년 미국에서 신문보도된 어떤 사건에 동기를 얻어 만들었다는 영화. 이 영화속 인물들의 직업은 직설적이며 단순하다. 그녀(Franziska Petri)는 심장전문의사, 그녀의 첫번째 남편(Andrei Shchetinin)은 고위군인, 두번째 남편(Arturs Skrastins)은 기업인, (Dejan Lilic)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그의 부인(Albina Dzhanabayeva)은 부동산중개인이다. 이 각각은 그대로 인텔리, 군인, 자본가, 노동자, 중산층의 전형화라 할 수 있다.


인텔리와 군인, 노동자와 중산층의 가족관계는 그대로 사회지도층과 기본계층을 의미한다. 이 관계에 갈등이 생기는 한 원인은 그녀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인텔리 여성의 설정, 그것은 지식과 과학의 힘은 더이상 미래를 담보할 수 없으며 생산의 동력이 될 수 없다는 의미로 새로운 동력을 갈구하는 것에 대한 동기를 부여한다.


더 이상 동력을 찾지 못하는 사회는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핸드폰은 시계용도로 쓰이고, 병원에서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표를 가지고 있지만 좀체로 버스는 오지 않는다. 답답한 시간은 자꾸 가는데 오로지 인텔리여성만이 전용버스를 타고 가는 상황.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부인이 의사의 남편과 바람을 핀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만 듣고 온 실직한 노동자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분노와 의구심이 치밀어 오르는 순간 버스정류장으로 트럭이 돌진한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와 표를 들고 기다리던 사람들의 죽음 앞에 그는 망연자실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아들이 사실은 2달전에 퇴학을 당했다는 사실을 전하는 아내.


이러한 급격한 환경의 변화, 즉 충격과 공포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함을 야기하고 그것은 우직했던 그가 아내를 의심하게 되는 내적 원인이 된다. , 이 연속된 장면은 소련의 붕괴 혹은 9.11 테러, 미국중심의 일극세계화의 진행, 그에 따른 자본주의 문화의 유입과 그 후과를 떠올리게 하며 동시에 노동계급내에서 주로 땅을 매매하여 부를 축적한 중산층에 대한 불신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군인과 중산층의 불륜관계는 그대로 사회지도층에서 벌어진 부정과 부패를, 이에 대한 인텔리여성과 노동자의 복수는 러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복잡했던 정치상황을 떠오르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그녀와 그가 함께 뇌우를 맞이하는 장면과 그녀와 그를 취조한 여경관의 마지막 모습이다.


트럭사고와 더불어 감독이 밝힌 영화속에 녹아있는 2가지의 사실중 하나인 뇌우장면은 소련붕괴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불러온 폭풍과도 같은 경제위기를 러시아의 노동자와 인텔리가 보드카 한병과 서로의 체온으로 정면돌파했음을 나타내는 명장면이다.


이 모든 과정의 한 매듭을 짓는 여경관의 마지막 모습은 영화가 제기한 사회를 지탱시키는 힘과 동력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에 해답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지만 한편으론 많은 관객들의 실소를 유발하기도 했다.


여기서 끝나도 괜찮을 뻔 했으나 왠지 영화는 그 이후까지 상황을 진척시킨다. 여경관과의 마지막 만남이후 그녀가 자꾸 생각난다며 찾아온 그의 모습에서 느껴졌던 일말의 불안함은 5년뒤에 결정적 파국을 야기하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5년이 흐른 뒤 사장부인이 된 그녀와 재혼하여 5살된 사내아이의 아빠로 자동차를 타고 휴가를 즐길 수 있을 정도의 경제수준에 이른 그가 재회한다. 인텔리는 여전히 사랑에 목말라 하고, 노동계급은 풍요로와진 일상에서 맞이한 지난 과거앞에서 대담하게 일탈을 꿈꾼다


풍요와 여유라는 행복의 이면에 숨겨져 들어온 재앙이 도덕과 의리, 즉 인륜의 실종으로 나타난 셈이다. 영화속 5년의 시간은 겉으로는 풍요가 넘치는 사회지만 실로 어린 여자아이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칼을 가지고 다녀야 되는 사회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와 상업문화가 야기한 사회의 양극단이다. 그녀와 그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의 경계에서 한 번 참았던 것을 두 번째 참지 못한 이유는 결국 5년간 이러한 현대자본주의사회에 적응하며 사상문화적으로 변질이 이루어진 탓은 아닐까?


부정과 불륜은 서로가 입을 가린다고 해서 가려지는 것이 아니기에 영화는 이에 대해 준엄한 메시지를 전한다. 노동자의 튼튼한 심장, 영원히 멈추지 않을것만 같은 생산의 용광로는 자본주의사회에 취해 벌떡이는 피속에 담겨진 양심과 의리라는 인간성을 저버리는 순간 그 동력을 잃고 작동을 멈춰버리게 될 것이며, 이 양심을 지키는 것에 대한 열쇠는 여성들, 무엇보다 지성인들의 양심과 의리로부터 비롯한 자성에 있음을 경고한다.


한마디로 영화는 지난 20년간 현대자본주의사회의 비뚤어진 상업문화가 낳은 패륜의 사회현실을 담아내며 기본적인 양심과 의리를 지키는 것이 미래에 희망임을 사회지도층과 기본계급,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극적인 소재와 선정적인 형식을 통해 호소한 셈이다.


자본주의사회의 폐해를 경고하지만 흥미유발과 긴장감 유지를 위해 사용한 선정성의 무기로 인해 이 영화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산물이며 영화가 경고한 자본주의 상업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기모순의 과제를 남겼지만, 관객들은 영화관을 찾은 감독과 배우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기립박수를 받으며 들어와 기립박수를 받으며 영화관을 떠날 수 있었던 감독과 배우들의 뒤 모습. 이 영화를 TV연속극과 비디오로도 만들 계획이라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 조국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빛과 어둠의 편린들이 번쩍번쩍 스쳐 지나간다.


윤대훈통신원(베니스국제영화제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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