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먹어버린 돼지들

21세기대학뉴스 2012.09.11 23:03 조회 수 : 792

[베니스영화제특별취재단] 베니스영화제 회고전에서 상영된 이탈리아 파솔리니의 문제작 'Porcile(돼지우리)'



PORCILE-POSTER.jpg


기분 잡쳤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딱 느낀 감정이었다. 그렇게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에는 일단 사람을 죽이는 장면, 먹는 장면, 사람이 먹히는 장면까지 모두 나오기 때문이다. 역겨울 수밖에 없다.


이번 베니스영화제 회고전에서 상영된 <Porcile>은 이탈리아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문제작중 하나다. 파솔리니는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최악의 불쾌감을 무릅쓰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은 경이롭다” 그야말로 최악의 불쾌감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 불쾌감을 무릅쓰고 경이롭게 표현한 ‘스스로’는 무엇일까?


영화는 두가지 이야기에 각각 나오는 두명의 젊은 남자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중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줄리앙이다. 줄리앙은 나치전범이었던 어느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이다. 그는 어릴 적에 돼지 두마리를 훔쳐왔는데, 그가 25살이 되었을 때 돼지는 몇십마리로 늘어난다.


줄리앙은 자신만의 세계에 확고하게 머물러 있으면서 스스로를 혁명과 순응, 그 어느 쪽도 아닌 곳에 머물러있다고 정의한다. 줄리앙의 약혼녀인 17살 소녀 이다는 공산주의자다. 그는 혁명적이지 못한 줄리앙을 비판하는데, 줄리앙은 이다보다는 돼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줄리앙의 아버지인 클로츠는 그의 보좌관 한스, 동료 기업가 헤르히츠와 힘을 합쳐 사업적 라이벌을 제거하려 한다. 그들이 파티를 연 사이, 줄리앙은 돼지우리에 갔다가 돼지들에게 먹혀버린다.


머리카락 한올, 단추 하나 남기지 않고 말이다. 이 집안의 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헤르히츠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헤르히츠는 흔적이 남았는지 묻고, 없음을 확인하자 그럼 입 다물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줄리앙의 아버지와 헤르히츠의 만남은 각각 제3제국(히틀러치하의 독일)과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룬 전후 독일(Wirtschaftswunder Germany)사이의 연계를 의미한다.


기른 주인을 먹어버린 돼지들은 줄리앙의 아버지와 헤르히츠의 대화에서 발견할 수 있듯 유대인, 유대자본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먹혀버린 아들 줄리앙은 무엇을 뜻할까? 헤르히츠가 줄리앙의 죽음을 덮으려 하인들에게 ‘쉿!’하며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자 하이라이트다.


영화는 마치 출발 비디오여행에서 두가지 영화를 비교할 때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면을 바꿔가며 각각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두번째 이야기는 15세기 중세시대, 화산에 머무르면서 인육을 먹는 남자의 이야기다.


첫장면에서 아주 잠깐, 어릴 때 비디오로 본 광야의 예수를 떠올리기도 했다. 척박한 광야에서 누더기 걸치고 터덜터덜 걷는 야윈 남자. 등장하자마자 그는 나비를 잡아먹는다. 다음으로는 돌로 뱀을 내리쳐 그대로 뜯어먹는다.


세번째는, 지나가던 군인과 칼싸움을 벌여 이긴 후 총으로 죽이고 머리를 베어 화산 불구덩이에 던지고 나서 몸을 구워먹는다. 곧 동료들이 생기고 수레에 실려 끌려가던 여자노예들도 그 무리에 합류하는데, 남자들이 사람을 죽이면 머리를 베어 불구덩이에 던져 넣고 다같이 시신을 구워먹는다.


희생자가 속출하고 목격자까지 생기자 이내 군인들이 출동해 그들을 마을로 끌고 간다. 끌려온 사람들을 앞에 두고 유대인으로 보이는 성직자들이 판결문을 읽은 뒤, 이들을 다시 화산지대로 데려가 땅에 말뚝을 박고 그들을 눕혀 사지를 말뚝에 묶어버린다.


묶인 사람들은 곧 들개들에게 뜯어 먹히기 시작한다. 앞에 쓴 이야기보다는 이쪽이 훨씬 역겹다.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이자 대장격인 남자가 말뚝에 묶이기 전에 한 대사다. “나는 아버지를 죽였고, 인육을 먹었고, 기쁨에 몸을 떨었다” 눈에 약간 눈물을 머금고 허공을 쳐다보면서 이 말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반복한다.


인간이 먹고 먹히는 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려고 하는 건 어떤 것이었을까? 파솔리니는 이탈리아가 낳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중 한명으로 꼽힌다. 파솔리니는 영화감독뿐만 아니라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비평가였다. 하지만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진 분야는 영화제작이었다.


파솔리니는 그의 수많은 문제작들을 통해 그 복잡한 생애와 사상을 드러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파시스트 장교인 아버지와 농민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일종의 상징적인 행위로서 아버지가 폭력을 가하자 아버지에 대한 호감을 일체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에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부정적으로 그려내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 대표적인 좌파감독으로서 부르주아에 대한 노골적 반감을 갖고 있었던 파솔리니는 산업화이전의 원시적 사회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고, 이것은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가 15세기 화산지대 장면을 어디서 촬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트를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파솔리니는 <Porcile>에서도 산업화이전의 15세기 중세시대에 원시적으로 식인을 하는 장면을 넣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세상의 기저에 신화적인 본성이 존재하며, 원시적인 시대의 폭력성과 야만성까지도 일종의 불가사의함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파솔리니는 사회의 밑바닥층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애착을 늘 갖고 있었고 이들이 신화적인 의식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 영화에서도 첫번째 이야기의 하인들, 두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무리와 마을주민들, 여자노예들이 등장해 이같은 파솔리니의 의식을 반영한다.


파솔리니는 이러한 최하층 민중들을 영화에 담으면서 스스로 이를 ‘오염(contamination)의 형식’이라고 칭했다. 이 영화야말로 수많은 파격을 담아내 자주 스캔들을 불러온 그의 영화들중에서도 1, 2위를 다툴 만큼 ‘오염’된 영화다. 식인이라는 행위, 또 산채로 짐승에게 먹힌다는 것은 그만큼 가볍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파솔리니는 <Porcile>에서 야만, 폭력, 욕망을 마구 얽어 그대로 보여준다.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데도 묘하게 긴장감 없는 이 영화 때문에 기분은 완전 잡쳤지만, 복잡한 예술영화 특유의 매력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보라면 못 볼 것 같다.


김민정통신원(베니스영화제특별취재단)


번호 제목 날짜
1020 사흐코지패배, 프랑스대선의 예견된 결과 2012.05.08
1019 캐나다, 등록금인상? 무상교육실시하라! 2012.05.08
1018 '주40시간노동' 베네수엘라 신노동법 공포 file 2012.05.11
1017 아르헨티나 YPF 재국유화가 시사하는 점 2012.05.12
1016 보시라이의 몰락, 그 이면에는? file 2012.05.12
1015 그리스총선후, 긴축재정 둘러싼 공방 file 2012.05.12
1014 일본과의 군사협정체결은 동북아의 다이너마이트? file 2012.05.12
1013 ‘등록금인상은 전쟁, 우리는 보복할 것’ file 2012.05.17
1012 공공교육, 누가 지불할 것인가 file 2012.05.19
1011 독일의 학업실습병행제도(Dual Studium) 2012.05.22
1010 칠레대학생, 우리는 ‘조절이 아닌 청산’을 원한다 file 2012.05.25
1009 ‘이스라엘건국’이 가져온 ‘대재앙’ 2012.05.25
1008 스페인, 정부지출삭감? 교육의 질은 더 하락 file 2012.05.25
1007 유럽발 위기, 남코리아 강타할까? 2012.05.27
1006 9세소녀, ‘나는 자라나는 아이인데...’ file 2012.05.27
1005 러·중반대로 유엔 ‘시리아결의안’ 부결 2012.07.21
1004 “쿠바, 베네수엘라 등 진보집권경험을 말한다” file 2012.08.23
1003 [여행후기]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자유'를 만든다 2012.08.26
1002 [여행후기] 한달간 사귄 외국자동차 Tepee! 2012.08.26
1001 [여행후기] 내가 찾은 3가지 가치 2012.08.26
1000 [여행후기] '한여름밤의 꿈' 7기 대자유 2012.08.26
999 모랄레스정부 6년동안 100만명 빈곤구제 file 2012.08.26
998 대선 앞두고 국내외 진보석학들 모여 '민중주권' 토론 file 2012.08.31
997 ‘목격자’들이 말하는 리비아의 진실 file 2012.09.08
996 심장은 무엇으로 약동하는가? file 2012.09.08
995 “마이클 잭슨이 되고 싶었다” file 2012.09.08
994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족을 지켜내야 한다? file 2012.09.10
» 주인을 먹어버린 돼지들 file 2012.09.11
992 미국 시카고서 교사 3만명 파업 file 2012.09.13
991 "맑스가 뭐에요?" 2012.09.21
990 ‘청춘,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라’ file 2012.09.22
989 북, 12년제 의무교육 의결 file 2012.09.29
988 차베스, 득표율 54% 베네수엘라 대선 4선 성공 file 2012.10.08
987 미국 월마트 매점노동자들의 역사상 첫파업 2012.10.11
986 중국소설가 모옌 노벨문학상 수상, ‘개구리’ 매진열풍 2012.10.14
985 프랑스대학 연간등록금은 '25만원' file 2012.11.07
984 싸이, 옥스포드유니온 강연 file 2012.11.08
983 비싼 등록금 때문에 독일로 유학가는 영국학생들 file 2012.11.09
982 유로존 청년실업률 23.3%, 그리스 55.6% file 2012.11.10
981 서울민주아카이브, 2월 베를린영화제 참가단모집 file 2012.11.14
980 유럽전역에서 긴축반대시위 수백만명 참가 2012.11.17
979 국민들의 힘으로 등록금이 폐지된 독일 file 2012.11.30
978 '자동차를 타고 유럽 곳곳을 누빈다' file 2012.12.03
977 일본 총선서 자민당 압승 '3년3개월만에 재집권' 2012.12.17
976 [기고] 대학교육의 사영화에 저항하는 프랑스학생들 file 2012.12.19
975 자민당의 연립정당 공명당, 개헌에 반대입장 2012.12.20
974 이탈리아, 내년 2월 조기총선 2012.12.23
973 중, 노동계약법에 ‘동일노동동일임금’ 명문화 2012.12.26
972 “해외여행 안전하게 하자” file 2012.12.28
971 아베, 군사대국화 추진 ... '집단적 자위권 확보' 강조 2012.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