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도시를 보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는 본적이 없다> 괴테가 슈타인부인에게 보낸 편지중 한 구절이다. 괴테는 중세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베른을 좋아했다. 18세기에 재건됐지만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돼 있는 상아색건물들과 도심을 <U>자로 감싸고있는 청색의 아레강을 보면서 자연스레 괴테가 보낸 편지속 구절을 다시 곱씹어보게 된다. 

여전히 고고한 자태를 풍기고 있는 베른에서는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발자취를 찾아볼수 있다. 시내 한복판에는 아인슈타인이 결혼해 2년간 살았던 <아인슈타인 하우스>가, 베른대학교정에는 아인슈타인의 동상이 있다. 베른에서의 1902년부터 1909년은 아인슈타인에게 <기적의 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하게 평가된다. 지나가는 버스를 보며 상대성이론을 발전시켰던 바로 그곳이 베른이다. 

아인슈타인에게는 반전이 있다. 물리학에 바친 열정만큼이나 파시스트정권의 횡포와, 인류를 학살하는 비도덕적 행태에 맞서 싸웠던 사회운동에 열정을 바쳤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은 전쟁의 광풍을 온몸으로 겪었다. 이해관계와 맞지 않으면 무참히 학살했던 나치의 위협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시대의 아픔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또 고민했다. 강대국들의 패권싸움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움츠리는 것이 아닌 파시스트정부에 대항했고, 지식을 국가복종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함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끊임없이 외쳤다. 

제국주의의 식민지쟁탈전을 벌인 1차세계대전 당시 반전성명이 발표됐다.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권력에 굴복해 자국의 군사행동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지만, 아인슈타인은 전쟁반대를 외치는 성명에 이름을 올린 단 4명 중 1명으로 소신을 지켰다. 그는 과학기술이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개발에 악용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과학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협회> 결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1933년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나치정권에 의해 시민권이 박탈되고 재산이 몰수되며 5만마르크의 현상금까지 걸렸지만, 죽는 날까지 전쟁의 종식을 외치며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신념을 지켰다. 

물리학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아인슈타인에게 지식은 그저 이론이 아닌 실천의 영역이었다. 이는 시대에 대한 투철한 현실감각에 기반한다. 전쟁이 아닌 평화, 개인이 아닌 집단을 생각하며 부당한 권력에 맞서 치열하게 싸워나갔던 그의 모습은 우리의 내면에 파동을 일으킨다.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이자 지식인으로서 우리에게 공부의 이유는 무엇인지 잠시 펜을 내려두고 생각했다. 일신의 출세를 위해, 남을 이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책상을 벗어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공부의 이유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공부가 시작된다고. 아는 것과 하는 것은 한끝차이라고 한다. 2023년 10월, 비판과 대안의 사명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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