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분단국가 사이프러스 방문기
서유럽에 위치한 작은 나라 사이프러스. 이곳은 인구는 적지만 인류문명의 발전과 함께한 오랜 역사가 있고 현재 유럽에서 유일하게 진보정당이 집권한 나라이다. 집권당인 아껠(AKEL, 근로민중대중정당)의 청년조직인 에돈(EDON)은 지속적으로 평화, 통일, 국제연대, 자본주의극복 등의 내용으로 대중적인 축제를 열어 오고 있다. 올해 25번째로 열린 에돈축제 참가차 사이프러스를 방문했다. 1960년 영국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1974년 터키군의 점령으로 분단된 역사를 가진 사이프러스의 곳곳에 코리아반도의 모습이 비껴있었다.
사이프러스는 여러 면에서 코리아반도와 닮았다. 사이프러스는 오래전부터 강대국들 사이에서 침략과 약탈을 겪어야 했다. 한때는 페르시아의 식민지였고 또 한때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민중들의 억센 저항과 투쟁으로 식민의 고리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다시 터키군의 점령으로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38년동안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국주의국가들에 끊임없이 침략당하고 억압받았지만 단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 본 역사가 없다는 점, 외세의 침략과 점령을 민중의 힘으로 이겨내어 마침내는 독립을 이루어냈다는 점, 외세로 인해 분단되었지만 끊임없이 통일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점, 사람들이 밝고 정이 많다는 정서까지도 우리네와 똑 닮았다.
코리아반도에 휴전선이 있다면 사이프러스에는 그린라인이 있다
1974년 사이프러스는 그리스군부독재정권을 배후로 한 쿠데타와 이를 빌미로 한 터키의 북사이프러스를 점령으로 분단되었고 그 경계점이 그린라인이다. 그린라인은 수도 니코지아를 남북으로 가르고 있다. 때로는 철조망으로, 때로는 본래 있던 건물의 담장으로. 코리아반도의 38선처럼 철조망으로 영토의 반을 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는 건물들이 경계지점이 되거나 경계표시가 희미한 곳도 있다.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 남사이프러스에서 그린라인를 지나 북사이프러스를 방문했다. 분단지점이라고 해서 코리아반도의 공동경비구역이나 38선을 상상했지만 코리아반도의 38선과 그린라인은 달랐다. 그린라인은 어떤 광범위한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남과 북의 경계지점들을 가리킨다. 남북의 군사대치가 긴장돼 보이지 않았는데 한가롭게 초소를 지키는 군인들과 일부에 세워져있는 담장, 남과 북에 각각 그려진 터키국기와 그리스국기만 없었다면 이곳이 분단지점인지 알아볼 수 없었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사람들은 어떤 불안감이나 경계조차 없었고 그린라인 바로 몇발자국 앞까지 상가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남코리아에서 온 우리 일행만이 코리아반도와 다른 분단상황을 바라보며 충격을 받고 있었다.
엄혹한 코리아반도, 넘을 수 없는 38선
“네? 자유롭게 남북을 오갈 수 있다고요?”
처음에 남과 북이 별다른 규제 없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현지인들은 신분증이 있으면 확인절차만 거치고 왕래할 수 있고, 분단선 너머 여행뿐 아니라 취직도 할 수 있고 남북간의 결혼도 가능하다. 외국인도 신분증만 있으면 왕래할 수 있다. 분단된 북과 남을 오고가는 것이 옆집을 가는 것처럼 쉬웠다.
지금까지도 ‘종북’논란과 맥카시적 선동이 횡행하는 남코리아에서는 분단된 북과 남이 자유롭게 왕래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설명을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분단의 모습은 수많은 청년들을 강제로 군대에 입대시켜, 총을 메고 분단선을 지켜야 하고, 늘 비난방송을 틀어대며, 분단선 너머는 금기의 땅으로 방문해서는 안되는 그야말로 정전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않나. 다양한 사상과 정치적 견해는 허락되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친북적인 관점은 여지없이 정권의 탄압의 빌미가 된다.
내가 달랑 여권하나 들고 2분동안 줄을 서서 15초만에 도장을 받고 그린라인를 넘고 있었을 때 남코리아에서는 방북했던 범민련 노수희부의장이 38선을 넘어 남코리아에 발을 내딛자마자 경찰과 군인에게 둘러싸여 꽁꽁 손이 묶인 채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린라인을 넘는데 채 3분이 걸리지 않았고 짐승처럼 포획되는데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린라인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 북키프러스에 발을 내딛는데 우리민족에 대한 생각이 사무쳐왔다. 터키에 의해 점령당했고, 미국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것, 즉 외세에 의한 점령과 분단이라는 것은 같은데 상황이 많이 달랐다. 무엇 때문에 이곳의 분단과 우리 민족의 분단이 다른걸까. 코리아는 60년 가까이 남북이 왕래조차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아무리 정전상태라고 하여도 분단의 골이 너무 깊다.
하지만 남코리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상시에 북과 남이 자유롭게 오가지 못한다고 해서 안타까움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아니, 느낄 수 없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적으로 대치하며 오고 갈 수 없는 남북을 보며 자랐고 군사적인 충돌과 수많은 전쟁훈련을 일상적으로 겪었으며 반공의 명분으로 유지되는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자신의 사상과 생각이 결박당하는데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야 남북이 화해의 물꼬를 트게 되었고 민간인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곳은 관광특구인 금강산 정도였다. 그마저도 방북하기 전 국가정보원의 정신교육을 받았고 최근에는 남북관계 경색으로 아예 방북자체가 허락되지 않고 있다.
사이프러스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국가보안법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는데 설명을 듣고 난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사상을 재단하고 생각을 막아서는 법에 놀랄 수밖에. 하지만 남코리아에서는 스스로 사상검열을 하게 된다. 그만큼 비정상적인 사회에 무뎌지게 되고 반쪽짜리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린라인를 통해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코리아반도의 분단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고 처참한지 자연스럽게 느꼈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반통일정책과 제도들은 여전히 유효하고 분단을 이용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세력들은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다.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이러한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보수세력이 집권한 최근에는 급기야 정도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데 남북접촉이 일절 끊겼고 전쟁위험수준이 최고조에 이르고 때때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태를 언제까지 유지해야할까? 지금까지도 충분하지 않은가.
외세로 인해 불행하게 갈라져 혈육조차 만날 수 없고 대결의 상처만 깊어져가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하루빨리 끊어야 한다. 사이프러스도 남과 북이 하나라면 지금의 경제위기를 더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며 더 강인한 공화국을 만들 수 있다. 코리아도 마찬가지이다.
그린라인을 통해 남북을 오가며 강렬하게 느꼈던 것이 또하나 있다. 남과 북의 생활 모습이 천지차이였다. 터키가 점령해서 직접통치하고 있는 북사이프러스와 근로민중의 대중정당이라는 진보정당 아껠이 집권한 남사이프러스는 한눈에 보아도 사회의 수준이 많이 차이가 났다. 가장 단적인 예가 거리의 모습과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북사이프러스를 둘러보며 거리에 쓰레기가 많고 지저분해서 놀랐다. 남키프러스에는 거리가 청결하고 깔끔했던 반면 북사이프러스에는 거리마다 쓰레기통이 차고 넘쳤으며 곳곳에 소파, 탁자 같은 대형쓰레기부터 작은 쓰레기까지 널려있었다. 건물의 모습도 달랐는데 북사이프러스의 건물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인지 망가지고 낡은 건물들이 많았다. 분단선을 넘자마자 보이는 것이 카지노를 비롯한 유흥시설과 터키국기가 휘날리는 은행들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표정도 달랐다. 북사이프러스는 어둡고 굳은 표정, 빈곤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던 반면 남사이프러스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고 활기차보였다. 사람들의 대비되는 표정과 생활모습이 인상적이어서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남사이프러스에 진보정당이 집권하면서부터 더욱 달라진 것이라고 한다. 객관적 지표로 남쪽의 경제수준이 북보다 높기는 하지만 경제규모보다 중요한 요인은 바로 누구를 위한 정권이 세워져서 어떤 정책을 펴느냐가 사회의 모습을 180로 바꿔놓은 것이라고 본다.
터키는 점령을 영속화하기 위해 북사이프러스에 터키본국에서 사람들을 대거로 데려와 정착시키는 이주정책을 펴고 있고 북과 남의 이질화를 심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펴고있다. 남쪽의 사이프러스공화국이 통일을 위해 불법점령되어 있는 북쪽을 어렵게 한 나라로 인정하면서까지 대화하고자 노력하지만 대화하지 않고 있다. 이와 반대로 남사이프러스는 진보정당에서 대통령이 당선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진보적인 정책들을 펴고 있으며 통일에 대한 정책을 중요하게 앞세우고 있다. 현재 남사이프러스의 크리스토피아스대통령은 연방제방식의 통일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정권이 같은 영토위에서 전혀 다른 사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진보정당의 대통령이 집권한 남사이프러스를 보며 말할 수 없이 부러웠다.
청년들의 축제에 찾아와 자원봉사자들 먼저 격려하고 자주성과 통일이 실현되는 나라를 약속하는 대통령, 이런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사이프러스의 희망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청년들, 민중들. 남코리아에서는 언제쯤 이런 지도자를 세울 수 있을까. 대통령과 그의 친형이 비리가 있고 구속수사중이라는 기사 따위를 언제쯤은 보지 않게 될까. 사이프러스공화국의 중심에는 ‘민중’이 있다는 것을 짧은 기간 민중들에게 사랑받는 정치인들에게서, 축제에 참가한 열정적인 사람들에게서 읽을 수 있었다.
남과 북의 사이프러스, 이를 가르는 그린라인를 방문하면서 수없이 남코리아를 떠올렸다. 때로는 부럽고 때로는 가슴이 아팠다. 코리아반도와 비슷한 역사와 현실을 가진, 그린라인를 사이에 두고 남북을 오가며 내가 사는 남코리아에 많은 물음표를 던졌던 사이프러스 방문을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38선으로 나뉘었고 그린라인로 나뉘었지만 그리스계사이프러스인과 터키계사이프러스인 모두 강인한 민중의 힘으로 분단을 이겨내고 사람다운 사회를 건설하는 역사를 함께 써 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하나의 코리아, 하나의 사이프러스를 위하여.
김효진(21세기대학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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