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박진우 5.18기념재단연구실장은 전남대학교 5.18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민주주의와 인권>에 게재한 논문 <대학신문에 나타난 5.18의 보도형태연구: 학원자율화조치 이전시기를 중심으로>를 공개했다.
논문은 1980년대 광주민중항쟁직후 5개신문사(강원도민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 조선일보)와 전국 24개대학학보사에 나온 신문을 비교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1980년 3월부터 전두환신군부는 언론장악을 시도했다. 같은해 5월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한 <서울의 봄>시위가 벌어졌을 때 기성언론들은 <학원으로 돌아가자> <상가 대낮부터 철시, 생업 지장> 등의 사설과 기사를 내보내며 학생들의 시위를 비난했다.
반면 대학신문은 <민주화·민족통일 향한 의지의 발로>, <철야농성하며 민주화 위한 평화적 시위>, <광장에 메아리친 민주함성 : 1만교수·학생 함께 시국성토> 등의 기사를 내보내며 학생들의 목소리를 내보냈다.
전두환신군부가 1980년 5월17일 <긴급조치 10호>를 발령해 기사를 사전검열하면서 시위를 다루는 보도를 차단했을 때 <강대신문> 등은 5.18관련시위 내용을 연상케 하는 기사들을 내보냈다.
1981년 <강대신문>은 5월18일치 1면에 1980년 5월 계엄법위반으로 청주교도소에 복역중이던 강원대학생들의 특별사면소식을 보도했고 같은해 5월25일 <성대신문>은 1면에 <5.12교대시위로 6명이 구속되고, 9명의 학생이 제적처리됐다>는 내용을 실었다. <이대학보>에서는 6월1일과 6월8일 1면에서 시위소식과 구속·연행 기사를 전했다.
서울대의 <대학신문>은 1981년 5월11일 칼럼에서 <18일의 그날, 광주사태라고 불리어지는 민족의 비극을 잊을수 없다>며 광주민중항쟁을 직접 전했다.
<충북대신문>은 1981년 5월25일 만평란에 <명복을 빕니다>라는 짧은 문구를 넣었고, <고대신문>은 광주민중항쟁 2주년때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이미지를 넣었다. <경북대신문>은 1983년 5월30일 <새장속에 갇힌 새>그림의 만평을 게제했고 6월7일 <고대신문>은 대형자물쇠로 잠긴 봉분에 갇힌 학생그림을 실었다.
박실장은 <각 대학신문은 1983년 12월 학원자율화조치이전까지 5.18참상을 은유적 방식으로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했다>며 <이런 노력이 1984년 해직교수의 복직, 제적생복학, 총학생회 부활 등으로 이어지면서 민주화 물결을 이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