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5일 카라카스에서 우고차베스의 서거소식을 민중들과 세계에 알린 사람이 베네수엘라 볼리바르공화국의 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붉은 옷을 입고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 앞에 모여 “우리가 차베스다!”라고 외칠 때, 마두로는 3월8일 헌법에 의해 임시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에게 혁명과정을 계승해야 하는 무거운 사명이 주어졌다.

51세, 카라카스출생의 니콜라스 마두로는 역사적으로 차베스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 활동한 뒤 수도의 버스운전기사가 되어 노조책임자로 일했다. 그는 1992년 차베스의 구속이전에 일찍이 볼리바리안혁명운동(MBR-200)에 가입했으며 차베스석방을 위한 위원회를 이끌었고, 1994년 석방을 이뤄냈다. 그는 이어 1998년 12월 대선을 준비한 핵심정당인 제5공화국운동(MVR)의 창립에 기여했다. 1999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데 참여했고, 2005년 1월 국회의장이 됐다. 2006년 8월 알리 로드리게스 아라케에 이어 외무장관으로 임명됐다. 마두로는 재선된 혁명지도자의 임명에 따라 2012년 10월13일이후로 공화국의 부통령이 됐으며 2013년 1월중순 엘리아스 하우아에게 외무장관직을 넘겨줬다.

이미 본인의 건강상태를 잘 알고있던 고차베스대통령은 명확하게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일을 계속할 수 없으면 니콜라스 마두로가 내 업무를 마칠 것이다. 내 의견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이런 조건에서 새로운 대통령선거가 진행된다면 니콜라스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뽑아달라”고 선언한 바 있다. 베네수엘라헌법 233조에 의거해 쿠바 아바나에서 치료를 받던 차베스대통령은 2012년 12월 마두로를 후계자로 지목했다.

그가 여러번 강조했듯 우고 차베스는 마두로를 ‘민중들의 심장을 가지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재능을 가진’ 충직하고 청렴한 ‘완벽한’ 혁명가로 보았다. 마두로는 2007년 PSUV(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 창립직후 가입했다. 그는 차분하고 현명하며 노련하게 협상을 진행하고 열린 사고와 중재능력을 가진 인물로 불린다. 

쿠바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 미겔 디아스 카넬은 “베네수엘라를 향한 모든 공격은 쿠바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히며 베네수엘라를 지지했다. 최근 마두로는 공개연설에서 “민중과 차베스를 배반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 우리민중은 결단코 이 나라에서 부르주아들이 판치는 것을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혁명은 진행중이며 우리민중은 그 어느때보다 단결해 있다”고 발언해 확고한 모습을 보여줬다.

니콜라스 마두로에 대해 반동세력은 ‘학위가 없고 대학교육을 못받은 사람’이라고 비판하지만 우고 차베스는 마두로를 혁명속에서 사회적으로 성장한 모범적인 인물로 꼽았다. 마두로는 4월14일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대선에서 반대파후보 미란다주지사 엔리케 카프릴레스 라돈스키를 제치고 당선돼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조국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이다.

헤미 에흐하(파리1대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