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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지른 모유』시쿠 부아르키 지음
 
제목이 독특하여 서점에서 꺼내 든 이책의 뒷면에는 ‘밥 딜런과 이언 매큐언이 한 사람이라고 상상해 봐라. 그게 바로 시쿠 부아르키다’라고 적혀있다.
 
보통 책 표지에 적혀있는 미사여구는 믿을만한 것이 못되지만 그럼에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이언 매큐언을 언급했기 때문이다.(밥 딜런은 이름만 안다)
 
이언 매큐언의 대표작 ‘속죄’는 한 소녀의 오해와 치명적인 거짓말, 그로 인해 발생한 두 남녀의 잔인한 운명을 그린 소설이다. 중요한 건 이 소설의 배경이 세계대전이며 당시 사회상으로는 받아드리기 힘든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언 매큐언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의 서늘하면서도 폐부을 찌르는 문체도 한몫 한다. 그러니 책표지의 미사여구는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는 나의 생각은 이언 매큐언 한마디로 꺾인 셈이다.
 
그리고 시쿠 부아르키는 브라질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작품활동을 하다가 이탈리아에 19개월동안 망명한 적이 있는 브라질의 국민가수이자 작가이니 매력이 배가 될 밖에.
 
‘엎지른 모유’는 에우라리우와 마틸지의 사랑을 골간으로 하여 브라질 근현대 100년의 역사를 에우라리우의 삶 속에 그린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브라질의 역사를 잘 모를뿐더러 첫장면이 병원에 있는 늙은 에우라리우의 독백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시대적배경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천천히 읽어보니 20세기 전체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은 100살이 된 에우라리우가 간호사 혹은 80대의 딸에게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한 서두에 유력가문인 에우라리우의 할아버지가 엄청난 부와 노예를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노예 폐지론자임을 언급한다. 

그리고 에우라리우가 열렬히 사랑하고 죽기 직전까지 그리워하는 아내 마틸지는 물라토(흑인과 백인의 혼혈)이다. 이 둘의 딸은 어린나이에 마틸지에게 버림받고 이 후 남편에게도 버림받아 심약하고 피해의식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되고 그녀의 딸인 에우라리우의 손자는 공산주의운동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방탕한 삶을 사는 증손자와 고손자의 삶까지, 개인의 삶 속에 브라질 100년의 역사를 200쪽 남짓으로 서술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엎지른 모유’에서의 비극성은 에우라리우가 사랑한 마틸지의 부재로부터 시작한다.
 
마틸지의 관능과 솔직함은 에우라리우로 하여금 여러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드러난 마틸지의 헌신과 그로 인한 부재는 마틸지의 모성으로 상징되는 모유가 ‘엎지러져’ 회복할 수 없듯 비극이 시작된다.
 
마틸지의 부재는 에우라리우를 비정상적인 삶으로 이끌고, 그녀의 딸은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되며 그녀의 후대들은 시대에 휩쓸리게 된다.
 
대농장을 지니고 있으면서 전통적으로 유서깊은 가문인 에우라리우가 당시 노예인 흑인 여성의 아픈 역사의 상징인 물라토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죽기 직전까지 그녀를 열망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혁명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핏줄은 에우라리우의 가문과 브라질의 역사를 사랑한 손자에게로 이어져 결국 손자가 공산주의 운동에 투신하다가 죽음 맞이하는 것과 연결이 된다.
 
또한 에우라리우가 가지고 있던 대농장에 십자도로가 생기고 아름다운 풍경이 조각나며, 별장에는 고층 아파트가 지어지는 모습을 통해 브라질이 자본주의화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에우라리우가 늙어서 빈민촌에 살게 됨에도 불구하고 품위를 지키려고 하는 것을 통해 브라질은 떠밀리듯 자본주의사회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빈부격차와 세대격차가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와 더불어 군부독재에 맞서 공산주의 운동을 하는 손자의 모습을 통해 60년대 브라질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고 이후 자본주의적 삶은 방탕하게 무너진 에우라리우의 증손자, 고손자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낯선 브라질소설, 그것도 역사성을 담은 소설이라는 점에서 쉽진 않았지만, 우리사회의 분단된 모습만 제외한다면 라틴아메리카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인지 소설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매끄럽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작가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을 흥미롭게 읽는데 그 목록에 한명의 작가를 더 추가할 수 있어서 기쁘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시쿠 부아르키의 음악도 듣고 싶다.
 
양고은(시사톡)
*기고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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