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전 SBS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을 보면 미국발 경제위기로 인해 차를 타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미국인의 삶이 나온다.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
자본주의의 심장, 자본주의의 꽃, 부유의 상징인 미국의 본질과 자본주의의 폐단이 생생히 묘사된 이 다큐를 보면서 오래전 읽었던 『분노의 포도』가 생각났다.
소설 초반, 톰이 가석방으로 풀려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거북이 한마리가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톰은 그 거북이를 동생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집어 올린다.
느리게 버둥대는 거북이와 그러한 거북이를 놓치지 않는 톰.
결국 거북이를 풀어주지만 그 거북이는 남서쪽을 향해 느리게 갈 뿐이다.
거북이...
거대한 등짐을 떠매고 느리게 느리게 한 방향으로 가는 거북이.
이 거북이의 모습은 1900년대초기 미국사회에 농업의 기계화가 도입되면서 트랙터에 밀려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거북이가 지고 있는 등짐이 거북이의 집이듯,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낡은 트럭에 겨우 몸을 싣고 남서부를 향해 달린다.
물론 그 등짐은 세간살이의 무게에 삶의 무게가 더해져 훨씬 무거웠을 것이다.
톰의 가족은 캘리포니아의 과수농장과 목화농장에 일자리가 많이 있다는 전단지를 보고
고향의 세간을 모두 정리하고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그리고 고속도로에 들어서는 순간 발견하게 되는 거대한 인파.
이들 모두 그 전단에 의지하여 캘리포니아로 향하고 있었다.
톰의 가족은 캘리포니아로 떠나며 꿈을 꾼다.
열심히 노동하고 그 결실로 살아갈 수 있는 작은 땅,
그리고 그 결실의 결과물로 구입한 작은 집.
그러나 이 소박한 꿈이 소설의 마지막으로 가면 제발 비만 피할 수 있는 곳이면 되는 것으로, 제대로 된 지붕이 있는 잠자리면 되는 것으로 변한다.
△영화 <분노의 포도>의 한장면
1상자에 5센트였던 품삯이 노조가 깨지자마자 2.5센트로 깎이는 수난.
허리한번 펴지 못하고 일을 하여도 제대로 된 끼니조차 이을 수 없는 상황.
수난 받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분노의 포도가 붉게 익어가갈 수 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 갔다 온 케이시는 노조활동을 하다가 삽에 맞아서 죽고
그 순간 다른 사람을 죽인 톰은 가석방 처지이기 때문에 숨어 지내다가 케이시처럼 타인과 연대해야 함을 깨닫고 길을 떠난다.
그리고 마지막 모성의 기적으로 한 노인을 살려내는 로저샨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이 소설의 특징은 시종일관 강한 어머니가 가족의 모든 일을 결정한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1900년대에는 가부장제사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가 무언가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밀어붙일때 아버지는 옆에서 이런다.
'자리 잡으면 때리던지 해야지'
그러면 어머니는 이렇게 응수한다.
'자리 잡으면 얼마든지 맞죠! '
삶의 터전을 잃고 길을 떠나자마자 갖게 되는 어머니의 결정권, 그리고 마지막에 로저샨이 생명을 살리는 모습은 이 극 전반에 걸쳐 모성에 대해 이야기함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가 배고픈 아이들에게 음식을 양보하고 어머니가 '전에는 우리 가족을 먼저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누구라도 마찬가지죠.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합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서로 도와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처럼 모성은 연대로 발전하고 그 과정에서 소설 속 인물들은 한층 성숙해 진다.
또한 이 소설의 특징은 장과 장 사이에 끼어있는 중간 장에서 당시 미국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이 제시되어 있어서 이 가족의 이야기가 사실 보편적인 이야기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수난받는 사람들의 연대라는 주제에 더욱 접근하기 좋았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연대는 분노를 기반으로 한 연대의식이다.
그리고 1900년대 미국민중들을 떠돌이로 만들었던 자본주의적 요소가 민중들에게 절망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면 오늘날 전세계민중들에게 절망과 분노를 안겨주는 요소는 정권과 생산수단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망과 분노가 더욱 강한 연대의 힘으로 연결되어야만 민중에게 힘이 생긴다는 것을 이 소설은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야기하는 좋은 소설이다.
양고은(시사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