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단합된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간다
<웨일 라이더>
감독_니키 카로 / 각본_니키 카로 / 원작_위티 이히마에라 / 촬영_레온 나비
편집_데이비드 콜선 / 미술_그랜트 메이저 / 음악_리사 제라드
출연_파이-케이샤 캐슬-휴즈, 코로-라위리 파라텐느, 플라워즈-빅키 홍튼
프로랑기-클리프 커티스, 라위리-그랜트 로아, 해미-마나 토마우누
상영시간_101분 / 제작년도_2002 / 개봉일_2004.10.8 / 국가_뉴질랜드, 독일
<웨일 라이더>
감독_니키 카로 / 각본_니키 카로 / 원작_위티 이히마에라 / 촬영_레온 나비
편집_데이비드 콜선 / 미술_그랜트 메이저 / 음악_리사 제라드
출연_파이-케이샤 캐슬-휴즈, 코로-라위리 파라텐느, 플라워즈-빅키 홍튼
프로랑기-클리프 커티스, 라위리-그랜트 로아, 해미-마나 토마우누
상영시간_101분 / 제작년도_2002 / 개봉일_2004.10.8 / 국가_뉴질랜드, 독일
<웨일 라이더>는 제작비 마련이 쉽지 않아서 오랜 작업기간을 거친 저예산영화이다. 할리우드영화처럼 자본의 대량공세도 화려한 스타군단도 없다. 그런데도 이 작은 영화는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규모는 작아도 전 세계인을 공감시키는 내용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웨일 라이더>는 한번 보면 감동을 받고 두 번 보면 구성의 짜임새와 형상의 풍부함에 절로 감탄이 나오는 영화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진보적이다. ‘세계화’ 시대에 더욱 그러하다. 영화는 마오리족의 지도자 선출과정을 그려내며 소수민족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자연스럽게 무너뜨린다. 영화는 혀를 내밀며 상대를 제압하는 마오리족의 우스꽝스러운 문화마저 관객들이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힘이 있다.
영화는 11살 소녀 파이를 중심에 두고 마을 족장인 할아버지 코로, 아버지 프로랑기, 삼촌 라위리, 할머니 플라워즈의 인물관계를 치밀하게 맺어준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을 유기적으로 맺어주면서 파이의 운명문제 해결을 위한 한 길로 줄기차게 나아간다. 영화의 줄거리가 간명하면서도 극성으로 충만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극조직의 기본인 인간관계를 영화의 주제에 맞게 새롭고 특색 있게 맺어준데 있다. 영화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지도력이라는 주제를 독특한 인간관계를 통해 인상적으로 해명하는 특별한 장점을 갖고 있다.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기본 인간관계는 손녀 파이와 할아버지 코로다. 두 인물의 성격대비와 갈등선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기본골격으로서 이를 통해 영화의 주제의식이 확연히 드러난다. 코로는 작은 부족마을 왕가라의 족장으로서 긍정성과 부정성을 모두 가진 인물이다. 그는 마을의 족장으로서 부족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지도자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높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지도자 선출에서는 남자, 그것도 장남만이 선택될 수 있다는 낡은 관점을 절대화하는 완고한 인물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며느리가 쌍둥이 남매를 낳다가 남자아이와 함께 죽는다. 병실을 찾은 코로는 멍한 눈으로 아내 곁을 지키고 있는 아들 프로랑기에게 다시 시작해보자고 한다. 코로가 원하는 건 남자아이다. 후계문제에 대한 강한 책임감은 그를 냉정하게 만든다. 프로랑기는 그런 코로에게 반항이라도 하듯이 여자 아이의 이름을 ‘파이키아’라고 짓고 집을 떠난다. ‘파이키아’는 지도자를 뜻하는 이름이다. 영화의 도입부는 지도자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 파이와 남자아이를 요구하는 족장 코로 사이의 갈등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을 분명히 예고한다.
어느덧 소녀로 성장한 파이는 여자도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코로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교육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자루 속의 송곳은 감출 수 없는 법, 파이는 할아버지가 고치지 못한 기계를 간단히 고쳐내는 등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며 퉁명스럽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파이는 아버지를 따라 마을을 떠나려고 하다가,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된다. 물론 할아버지의 생각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코로는 파이의 출생과 함께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반길 줄 알았던 할아버지가 나중에 보자고만 하자 파이는 문을 꽝 닫아 버리고 그 자리를 떠난다. 파이와 코로의 갈등선은 자기발전과정을 밟아나가며 갈수록 첨예화된다.
어리긴 해도 파이는 의지가 강하고 운명개척에 적극적인 인물이다. 파이의 강한 의지와 적극적 성격은 할아버지와의 충돌 속에서 발견되고 아버지, 삼촌과의 관계 속에서 확인된다. 코로가 지도자발굴을 위해 마련한 학교의 개학식장에서 파이는 여자라는 이유로 쫓겨난다. 그러나 파이는 굴하지 않고 교실 밖 창문으로 선조의 힘을 불러들이는 주문을 배우고 남자들만 배우는 전통무예 ‘타이아’도 익힌다. 한편 장남인 아버지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타향살이를 전전하며, 삼촌은 형보다 무예가 뛰어나나 차남이라는 이유로 밀려나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렇지만 파이는 할아버지의 억압에 맞서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학습하며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이 과정에서 주변 인물의 성격과 삶도 변화시켜 나간다.
파이의 성격은 아버지라는 인물과 대비되며 더욱 돋보인다. 결국 파이는 아버지가 만들다가 중단한 배를 완성하여 마을사람들과 함께 바다를 항행한다. 아버지가 파이의 성격발전에 기여하는 측면은 인간적인 면모를 심어주는 것이다. 영웅을 그린 영화가 흔히 범하는 약점은 비범함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탓에 진실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이는 할아버지의 완고함에 부딪혀 눈물을 흘리고 아버지와 함께 마을을 떠나려 한다. 성격발전의 논리에 부합하는 파이의 이런 모습과 동요로 인해 오히려 관객들은 극적 굴곡과 흥미를 느끼게 된다. 한편 파이는 삼촌의 방조를 받으며 무예를 익히고 지도자의 상징인 고래이빨도 찾게 된다. 아버지는 외국인 새 부인과 함께 고향에 오고 삼촌은 이른 새벽 해변을 달린다. 파이의 운명이 개척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파이와 깊이 연관된 아버지와 삼촌의 성격도 바뀐다.
파이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할아버지 코로의 부정적 성격(성적 편견)과 긍정적 성격(족장의 책임감)은 부단히 교차하며 갈등을 심화시킨다. 그러나 영화에서 파이와 코로의 관계는 갈등만 겪지는 않는다. 코로는 방과 후 자전거를 타고 파이를 데리러 간다. 둘이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지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인상적이다. 만약 할아버지의 손녀에 대한 따스한 애정선이 없었다면 영화는 주장만 있고 감동이 없는 건조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생활과 인간관계는 이렇듯 결코 일면적이거나 직선적이지 않다.
파이의 성격형성과정에서 할머니 플라워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단호하면서도 자상한 할머니는 파이가 엇나가지 않도록 따뜻하게 품어주고 현명하게 이끌어주는 한편 파이와 코로의 갈등선이 해소되는데서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한다. 플라워즈는 코로의 지도자양성과정을 못마땅해 하며 실패하면 이혼할 것이라고 말한다. 파이가 타이아를 만진 사건 직후 파이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컵을 깨는 코로에게 당신이 밖에서는 대장일지 몰라도 부엌에서는 내가 대장이라며 큰소리친다.
파이가 없어지자 할머니는 손녀를 애타게 부르며 울부짖는다. 파이가 고래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자, 충격받은 코로에게 바다에 빠진 고래이빨을 넘겨주는 결정적 역할도 플라워즈의 몫이다. 코로는 병실에서 누워있는 파이의 목에 고래이빨을 걸어주며 비로소 고백한다. ‘현명한 지도자여, 나를 용서하소서. 나는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기본갈등이 해결되면서 극은 절정을 지나 결말만 남겨두게 된다.
영화는 진정한 지도력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미 있는 기본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고장난 기계 앞에서 코로는 파이에게 말한다. ‘짧은 끈들이 서로 얽혀있다. 파이키아의 실을 서로 짜 맞추어라. 그리하면 우리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개인의 힘은 제한되어 있지만 집단의 힘은 무한대하다. 이 무한대한 집단의 힘을 하나로 조직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바로 지도자다. 코로를 초대한 학예발표회장, 이번에는 파이가 말한다. ‘선택받은 자만이 아니라 지식이 모두에게 전해진다면 많은 지도자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곧 모두가 더 강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당신이 강한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때때로는 지쳐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에 대한 간접비판인 동시에 자질과 능력만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도자의 필요한 덕목 중 하나는 용기다. 민족을 위한 길이라면 고래등을 타고 죽음을 각오한 모험을 벌이는 용감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용기는 성별이나 나이와 별 상관이 없다. 편견이라는 정신적 장애를 벗어나는 순간, 어둠 속에 가려져 있는 진리의 빛이 밝혀진다. 고래등을 타고 바다로 나아가는 영웅적 용기를 발휘하는 파이의 마음속에 빛나는 별은 민족에 대한 사랑이다. 민족에 대한 사랑을 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분명 참된 지도자의 자질이 있다. 그런 파이가 참된 지도자의 덕목을 설파한다. ‘저는 선지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민족이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우리의 모든 힘을 모아.’ 그렇다. 민족 지도자의 첫째 임무는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고,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힘은 민족의 단결에 있다. 파이는 기어이 아버지의 미완성 배를 완성한다. 그리고 부족의 남녀가 함께 노를 저으며 파이의 지도아래 민족의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간다. 이 마지막 장면에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여야 한다는 생활의 알맹이가 잘 드러나 있다.
하나 더, <웨일 라이더>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극이 생활과 성격을 논리를 따라 순리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정공법의 극구성으로 기본주제를 해명한 만큼 감정조직도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사건조직을 복속시킨 감정조직은 관객의 마음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절정으로 나아간다. 20세기 말 선댄스영화제는 분명 엽기적이고 폭력적인 타란티노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21세기 초에는 참되고 아름다운 니키 카로의 영화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세계화시대에 소수민족의 정체성과 성차별과 환경문제를 설득력있게 설파하는 니키 카로 영화의 매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화의 근본에 사람과 생활을 놓고 감정조직을 기본으로 사건조직을 결합하는 세련된 극구성에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형식주의미학을 질타하며 새 세기에도 사실주의미학이 변함없는 진리임을 웅변한 니키 카로의 모습이 당당하다. 우리시대의 참된 아름다움은 아메리카제국의 비디오가게가 아니라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삶에서 빛나고 있다.
이미숙
출처: 진보적영화시사월간지 COREA 2004년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