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이 가진 진실의 힘. ˂또 하나의 약속˃
*스포일러가 있음을 밝힙니다.
어린시절, 우리집의 모든 전자제품은 삼성전자의 제품이었다. 물론 어머니는 지금도 삼성제품을 선호하신다. 삼성제품은 서비스가 편리하다며 선호하시지만 사실 삼성을 사용한다는 것은 최소 서민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학에 가보니 ‘삼성맨’이 된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며 성공의 징표였다.
삼성이 지니고 있는 일류기업이라는 이미지는 권력이 되어 삶의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알게 모르게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이 일류기업의 이미지를 지니는데 1등공신은 ‘무노조 경영’이라는 타이틀이라는 것, 이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우리사회에서 노조와 노동자는 과격하고 천박하며 이기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다보니 반대로 노조가 없는 삼성은 온건하고 고상하며 이타적이라는 이미지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가 없는 삼성노동자의 삶은 어떠할까? 특히 작업의 특성상 산업재해가 발생하기 쉬운 생산직노동자들의 삶은 어떠할까?
삼성생산직노동자의 삶과 그들을 대하는 삼성의 태도, 그리고 삼성의 본질을 알 수 있는 영화가 바로 ‘또하나의 약속’이다.
‘또하나의 약속’은 삼성반도체 노동자로 20개월동안 일한 후 백혈병에 걸려 결국 세상을 떠난 황유미씨와 황유미씨의 죽음을 산업재해가 아니라 개인적 질병으로 덮으려는 삼성전자에 맞서 지금도 투쟁중인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의 이야기를 극화한 영화이다. 극중에서는 인물의 이름과 기업명이 가명처리 되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만큼 실존인물의 이름을 빌어 영화이야기를 할까 한다.
황유미씨는 여상에 다니다가 ‘아버지 차 바꿔드리고, 남동생 대학 보내고 싶어서’ 삼성 반도체에 입사하게 된다. 물론 아버지 황상기씨는 딸이 대기업에 입사했다며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처음에 백혈병이 걸렸을때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고, 삼성 인사팀에서는 ‘직원들이 모은 위로금’ 명목으로 돈을 주고 간다. 그러나 차츰 황유미씨 뿐만 아니라 황유미씨 동료들도 각종 백혈병과 암을 비롯하여 희귀질환에 걸린 사실을 알고 산업재해를 신청하려고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황유미씨 사망후 황상기씨는 황유미씨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인시위, 추모집회, 농성, 선전전을 비롯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삼성이라는 거대자본과 싸운다. 그리고 황상기씨를 중심으로 ‘반올림’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져 지금도 싸움중이다.
영화를 보는내내 거대자본인 삼성에 의해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삼성이 노동자를 인간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공장의 부품처럼 이용했다는 점 또한 알 수 있었다.
기본금 80만원, 그 외는 모두 성과급인 현실, 그렇기 때문에 옆에 있는 노동자보다 더욱 많이 생산하기 위해 안전장비 및 규칙을 지킬 수 없는 현실, 뿐만 아니라 위험물질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노동자들. 노동자들이 삼성에 충성하며 열심히 노동하면 할수록, 돌아오는건 보상이 아니라 질병이었고 질병 이후에는 그저 버림 받았다.
이렇게 버림받은 노동자가 현재 200여명, 사망한 노동자가 80여명이 넘는 것이 초일류기업 삼성,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삼성노동자중에서 법적으로 ‘산업재해’임을 인정받은 사람은 황유미씨가 최초이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삼성측의 항소로 재판이 진행중에 있다.
보통 이렇게 기업에 의해 노동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기업살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삼성은 ‘기업살인’을 넘어서 ‘기업학살’을 진행해 왔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또 삼성의 본질은 일류기업, 청렴기업이 아니라 악덕기업, 살인기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성을 지금의 대기업으로 만든것은 무수히 많은 이름모를 노동자들의 힘이지 이건희일가가 아니다.
그리고 삼성이 이제까지 무노조경영을 해왔던것은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노조가 있고 조직된 노동자가 있는 순간, 삼성의 온갖 악행과 비리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은 노조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을 감시․미행․폭행을 하면서 노조설립를 탄압해 왔다. 그럼에도 결국 삼성노동자들은 현재 노조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소수일지라도, 결국 탄압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여 자신의 자주권을 되찾는 힘은 노동자․민중에게 있기 때문에 이 소수의 힘이 대세가 되어 삼성을 변화시킬거라 생각한다.
영화 속 황상기씨가 진실을 알리기 위해 끈질기게 투쟁하였고 그 투쟁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마지막으로 삼성기업 또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일부일 뿐이고 신자유주의 경제제도하에서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들의 잉여생산물이 소수 자본가에게 집중되고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와 노동자의 모순이 집적, 폭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신자유주의사회인 한국사회에서 삼성노동자를 비롯한 대다수의 노동자․민중들이 자신이 처한 모순을 깨닫고 연대의 힘을 강화할 때 노동자․민중이 진정으로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시사톡 양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