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트라우마는 사회적이다. ˂트라우마 한국사회˃ -김태형지음-
고등학교때 나는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지 못했다. 당시 중학교 수학여행은 경주와 설악산, 고등학교는 제주도로 가는게 일반적이었고 따듯하고 아름다운 남쪽 섬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고등학교 수학여행도 경주와 설악산으로 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IMF경제위기로 인해 파산되거나 파산 직전의 어려움을 겪은 가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후 생각해보면 사소한 것 같지만, 고등학교시절 나에게 IMF경제위기란 이렇듯 생활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정은 막대한 피해를 빗겨갔지만 IMF경제위기를 빗겨간 우리가정이 매우 특수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가정이 어려웠다.
대학을 진학하자 내 또래 사람들은 학부제로 인해 1학때부터 대학의 낭만을 꿈꾸는 것은 사치가 되었다. 나는 또 다행스럽게도 과가 하나뿐인 학부에 진학했고 신문부 활동을 하며 대학생으로서 진리를 탐구하고 여러 실천을 할 수 있는 경험을 누릴 수 있었다. 이렇듯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1학년을 보냈지만 이 또한 특수한 경우였다.
졸업할 때가 되자 나의 선배, 동기, 후배들은 대부분 공무원이나 고시에 매달리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청년실업에 대한 위기 때문에 취업하기가 어려워졌고, 취업을 하더라도 인턴이나 기간제와 같은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사회적지위를 차지해야하는 지금, 여전히 내 주변에는 공무원 및 고시준비를 하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고, 취업에 성공을 했어도 학자금대출등의 빚과2008년도 금융위기 이후 경제난으로 인해 내집마련은 커녕 전세값도 마련하지 못하는 ‘무능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 이다.
‘나’라는 개인의 경험 속에 같은 세대들의 고통이 함께함을 ‘트라우마 한국사회’를 읽으면 절감할 수 있다.
‘트라우마 한국사회’는 좌절세대(50년대생), 민주화세대(60년대생), 세계화세대(70년대생), 공포세대(80년대생)으로 구분하여 한국사회에서 공통된 경험을 한 각 세대들을 분석하고 이 트라우마가 어디에 기인하는가를 분석한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나는 ‘공포세대’에 속하는 사람으로 어릴때는 경쟁중심으로 사교육에 시달리고, 청소년기는 IMF경제위기를 경험하며, 대학 졸업후에는 실업난에 시달리는, 신자유주의 이후 모래알처럼 개인주의적이지만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경쟁할 수 밖에 없는 공포스러운 세대에 속해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은 내 경험에도 드러나 있어서인지 공감하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더불어 이 책의 미덕은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 단초를 마련해준다는 점이다.
특히 나보다 어른인 세대들이 정치ㆍ사회적으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때 그 선택의 이유들이 그들의 사회적 트라우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해하면 세대간 통합과 건강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세대별 특징과 각각의 트라우마에 대해 분석한다면 2부에서는 한국사회기 지닌 모순에서 트라우마가 비롯되고 그 모순을 조장하는 일부 세력들에 의해 여전히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IMF경제위기 이후 도덕성보다 돈이 우선이 되는 ‘우월감 트라우마’, 분단 이후 반공ㆍ반북이데올로기를 통해 극우보수세력이 정치적 우위를 점하는데 강력한 무기가 되는 ‘분단 트라우마’, 지역갈등을 통해 민중의 정서를 분열시키는 ‘변방트라우마’에 대해 저자는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읽다보면 솔직히 문장이 거칠긴 하지만 내용은 합리적인 편이며, 한국사회의 본질을 다각도 분석하기 위한 노력이 느껴져서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사회적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또한 육체적생명보다 사회적생명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매우 공감되었다. 덧붙여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각종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여러세대가 건강하게 통합하여 사회 여러 모순을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시사톡 양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