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를 대표하는 7개역사학회(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중세사학회, 조선시대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가 지난달 28일 오전11시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한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성명에는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국론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며 <정권마다 다르게 상정할 수 있는 <국론>에 입각해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역사연구회 정연태회장은 <역사교과서 국정제는 1974년 유신정권에 의해 처음 도입돼 시행되다가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물론 일반국민의 비판과 반대에 부딪쳐 2007년 교육과정 개정이후 완전히 폐지됐다.>며 <국정화는 40년전 유신시대로 퇴행하는 것으로 검토할 가치조차 없는 후진적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학회별로 성명의 표현수위나 요구사항 등에서 약간의 견해차가 있었을뿐 국정화반대라는 큰 틀에서는 이견이 전혀 없었다.>며 <국정화반대는 한국사학계의 전반적인 견해>라고 덧붙였다.
또 한편으로는 정부의 한국사국정화시도는 <교학사구하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성명에는 <교학사교과서는 무수한 오류와 표절, 생소한 학설과 친일과 독재를 변호하는 교과서라고 지탄받았지만 교육부는 기존 검정체제를 무시하고 교학사교과서를 비호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교육현장의 상식적 판단과 선택에 의해 좌초되고 말았고 이 시점에 나타난 박근혜정부의 국정화시도는 그 의도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역사학계는 성명서를 통해 △정치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역사교육을 퇴행시키는 등 많은 부작용과 악영향이 예상되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시도를 중단하라 △편수기능강화 등 역사교육을 과도하게 간섭, 통제하려는 기도를 중단하라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에서 추천한 신망 있는 인사들로 한국사교과서검정제 개선위원회를 구성해 현행 검정제의 문제점을 고쳐나가라 △역사교육이 헌법정신에 따라 역사연구 및 교육전문가의 주도하에 이뤄질 수 있도록 외부의 부당한 간섭과 압력을 차단하라고 요구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교학사 구하기 좌초된 시점에 나타난 국정화 시도, 그 의도가 뭔가"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중단하라 현 정부의 역사 교육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올해 초에는 편수제의 부활을 꾀하더니 이제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는 1974년 유신 정권에 의해 해방 이후 처음 도입, 시행되다가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물론 일반 국민의 비판과 반대에 부딪쳐 2007년 개정 교육 과정에 의해 완전히 폐지됐다. 그런데 교육부는 검정제를 전면 도입한 지 겨우 7년 만에 국정제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주장이 등장한 것은 2013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 때였다. 교학사 교과서는 무수한 오류와 표절, 생소한 학설로 인해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로부터 냉엄한 비판을 받았다. 또한 국민들로부터는 친일과 독재를 변호하는 교과서라는 지탄을 받았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기존 검정 체제마저 무시하면서 교학사 교과서를 비호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교학사 교과서 구하기는 교육 현장의 상식적 판단과 선택에 의해 좌초되고 말았다. 바로 이 시점에 나타난 교육부의 국정화 시도는 그 의도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취임 이후 본격화하고 있다. 그는 이미 여당 대표 시절에 "6·25전쟁에 대해 북침론과 남침론을 서술한 교과서가 병존"한다는, 근거 없는 사례를 제시하면서(참고로 북침론을 서술한 한국사 교과서는 없다),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 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리고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역사는 국가가 한 가지로 가르쳐야 국론 분열의 씨앗을 뿌리지 않을 수 있다"고 하면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정제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한 교육부는 여론을 수렴한다며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 개선 토론회'를 지난 8월 26일에 개최했다. 이와 같은 교육부 장관의 발언과 교육부의 움직임을 볼 때 국정제로 전환이 추진되고 있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마다 다르게 상정할 수 있는 '국론'에 입각해 국정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국론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 될 것이다. 한국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반발과 저항에 직면하는 것은 물론 유신 시대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는 국민들 또한 결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가 도입되면 역사 교육과 연구는 물론 한국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첫째, 역사 교육이 획일화돼 민주 사회의 발전과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폭넓고 다양한 사고의 형성과 창의적인 사고 능력을 가진 시민을 키우기 어렵게 된다. 둘째, 정권의 과도한 간섭과 통제를 꺼린 역량 있는 역사학자들의 집필 기피로 검인정 교과서보다 질 높은 교과서가 나올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셋째, 역사 연구의 성과가 역사 교육에 반영되고 역사 교육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이 역사 연구를 자극하는 '연구와 교육의 선순환 구조'를 훼손해 역사 연구와 교육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넷째, 각 정권 차원의 간섭과 통제가 더욱 용이하게 이뤄질 수 있는 까닭에 역사 교육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대립과 갈등은 증폭되고 역사 교육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다섯째, OECD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총독부조차 중등 교육 과정에서는 시행한 바 없으며 사상 통제가 극심한 일부 국가에서만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국정제로 돌아간다면,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신은 추락할 것이다. 더욱이 역사 대중서가 넘치고 다양한 역사 지식이 SNS를 비롯한 각종 온라인 매체를 통해 시시각각 유통되는 지식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국정 교과서를 통해 국민의 역사의식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상식이다. 이런 까닭에 보수와 진보,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막론하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1992년에 국정제가 위헌은 아니나 결코 바람직한 제도도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리고 금년 1월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국정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하자 대다수 언론은 사설을 통해 국정제는 '역사 교육의 퇴조'를 가져오는 '시대착오적 발상', '별 소득 없는 위험한 발상'으로 여겨 반대한 바 있다. 한편 얼마 전 전국의 중고등 역사 교사와 초등학교 교사 85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압도적 다수인 97퍼센트가 국정 전환을 반대했다. 따라서 지난 8월 26일에 개최된 교육부 주최 토론회에서 국정화 반대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한국 역사학계 역시 국정제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시종일관 반대했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게 국가가 '교육 과정'과 함께 '집필 기준'까지 제시하며 집필에 제약을 가하는 현행 검정제의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요구해왔다.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이란 헌법 정신에 따라 역사 교육에 대한 국가의 간섭과 통제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 역사학계는 아래와 같이 교육부에 요구한다. 1. 정치·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역사 교육을 퇴행시키는 등 많은 부작용과 악영향이 예상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중단하라. 1. 편수 기능 강화 등 역사 교육을 과도하게 간섭, 통제하려는 기도를 중단하라. 1.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에서 추천한 신망 있는 인사들로 한국사 교과서 검정제 개선위원회를 구성해 현행 검정제의 문제점을 고쳐나가라. 1. 역사 교육이 헌법 정신에 따라 역사 연구 및 교육 전문가의 주도 하에 이뤄질 수 있도록 외부의 부당한 간섭과 압력을 차단하라. 2014년 8월 28일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중세사학회, 조선시대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박민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