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제가 오늘 북한인민군을 죽였습니다. 제가 아는 조선인민족은 뿔이 달린 빨간 괴수였습니다. 하지만 모두 똑같더군요. 모두 똑같이 어머니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영화 ˂포화속으로˃에서 학도병인 주인공이 자신의 동료손에 죽임당하는 어린 북한아이를 본 후에 남긴 독백이다. 노란 ˂세월호˃점퍼를 걸치신 가냘픈 중년 여성이 들어왔을 때 나는 내게 이제껏 ˂세월호˃유족이 하나의 고유명사이고 매체 속 활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도병이 조선인민족을 괴수로 생각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마주 한 그 분은 괴수도, 활자도 아니라 2학년 성호 어머니셨다.
나는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덕성여대로 향하는 마을버스에서 이대로 정거장을 지나쳐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 충동은 내가 포털사이트 뉴스에 <세월호>라는 단어가 들어간 헤드라인을 무거운 마음으로 지나칠 때 느끼던 마음과 동류다. 나는 그들의 억울함을 이해하는 척하고, 정부가 그들을 부당하게 처우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17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제대로 밝혀진 것 하나 없는 이 참사와 그와 관련된 머리 아픈 정치적 흐름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간담회 시작전, 짧은 묵념을 지낼 때부터 나는 부끄럽게도, 부끄러워서 눈물을 흘렸다. 성호 어머니는 사건이 일어난 날부터 차근차근 되짚어가셨다. 차분하게 그 날일을 회고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과, <세월호>가 침몰한 후, 정말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정부와 해경의 늑장 대응을 얘기하시는 어머니 역시 목소리가 떨리셨다.
나는 SNS의 접근성과 주사용자들의 낮은 연령층 때문에 여기에 올라오는 정보를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SNS에서 <세월호>참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중 동감하고, 정말 읽음 직하다고 느낀 것도 있지만, 대다수는 선동이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자국의 고등학생과 국민이 100명이 넘게 탄 배가 침몰했는데 나라에서 총력을 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태가 사태인 만큼 오보가 많을 수밖에 없으며, 무언가 부실해보여도 내가 <재난 대처>에 <구조>에 전문인도 아니기 때문에 성급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부에서도 최선책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을 가장 가까운 데에서 목격하셨고, 4월의 그 날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참사가 현재 진행 상태이실 어머니께서 하는 진실된 목소리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국가 원수의 묘연한 행보와 유가족인 양 행세하며 그들을 교란한 정보원들. 내 머릿속의 2014년 대한민국의 그림과 어머니가 싸우고 계신 2014년의 대한민국은 마치 다른 행성의 이야기 같았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어머니께서 정리해주셨다. 뜨거운 감자였던 <의사자선정> 및 <대학특례입학>과 같은 보상을 유족들이 먼저 요구한 것이 아니고, 특검법의 정당성과 현재 유가족이 요구하는 것들을 체계적이고 간결하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했다. 아이들이 부당한 사회적 구조하에 끔찍한 참사를 당했다는 인륜적인 분노 차원을 넘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진상규명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앞으로 나아가야할 측면의 설명을 들을 때에야 멍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학생 한분이 질의 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일에 대해 물었다. 성호어머니께선 작은 관심부터 출발하다보면 길이 열린다고 하셨다. 그리고 <안산분향소>에 가볼 것을 권하셨다. 나는 성호 어머니의 말씀대로 <안산분향소>에 가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 간담회를 통해 <세월호>참사가 우리에게 알려준 사회실태의 문제성을 조금이나마 가까이 인식한 만큼, 이 간담회가 내 인생에서 2시간의 감정적인 동요로 끝나지 않고, 한 발짝 더 내 머릿속의 사회를 벗어나 내가 있는 나의 사회로 나아가는 사건이 되었기를 바란다.
<대학생 손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