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비정규교수들이 지난 2010년이후 2년만에 파업에 들어간다.
영남대∙부산대∙전남대∙조선대 비정규교수들도 대학측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러 대학에서 비정규교수들의 파업이 잇따르고 있다. 이처럼 많은 대학에서 동시에 파업이 진행되는 것은 1990년 노조창립이후 처음”이라고 밝히고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기자회견에서 전남대 박중렬분회장은 "50여명의 전남대 비정규교수들이 성적입력거부라는 파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비정규교수들이 요구하는 것은 실현하기 어렵지 않다"며 "마음놓고 연구할 수 있는 연구실을 제공하라, 비정규문제를 논의할 때 비정규교수들을 참여하게 해달라, 비정규교수들이 대학강의의 36.9%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에 맞는 노동댓가를 보장하라"고 설명했다.
조선대 정재호분회장은 박근혜대통령당선인을 향해 "비정규교수를 정규직화하고 정리해고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경북대 비정규교수들은 2012년도 단체협상, 조정절차 등이 무산되면서 최근 실시한 파업찬반투표 결과 조합원 66% 투표에 83%의 찬성률로 18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경북대 비정규교수 노조관계자는 "강사법이 1년 유예되면서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지만 학교측이 최근 법원의 시간강사의 강의 1시간당 강의준비 2시간을 인정해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지급하던 강의준비금항목마저 없애려고 한다"며 "현재 경북대 강의의 46%를 담당하는 시간강사들의 기성회계인건비는 정규교수 477억의 2.5%에 불과한 12억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또 "대학에서 절반의 강의를 담당하는 시간강사들이 생존과 구조조정의 위기 앞에 떨고 있고 학교측의 차별적인 행태에 분노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과연 학문과 진리를 탐구한다는 대학이 제대로 설 수 있겠냐"며 파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부산대 비정규교수들은 강의환경개선을 위해 개교후 처음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시간강사 120여명으로 구성된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부산대분회는 전임교원에게만 주어진 교양수업개설권을 분할하고 시간강사의 연구비지출항목을 신설해줄 것을 학교측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산대 대학본부와 지난 3월부터 11차례에 걸쳐 단체교섭을 진행해 왔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지난 7일 파업찬반투표를 실시해 조합원 99명중 81명이 파업에 찬성했다.
부산일보에 따르면 부산대분회 배혜정사무국장은 "최종교섭까지 본부측과 타결을 보고자 했지만 실패로 돌아간만큼 이번 파업은 시간강사들로서도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일부 졸업예정자나 교환학생 등 증명서가 필요한 학생은 개별적으로 성적을 입력해 파업으로 인한 학생 피해만은 최소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영남대분회는 3일 "영남대와 10차례의 임금교섭을 벌였으나 대학측이 등록금인하로 인한 재정감소를 이유로 강의료동결을 고수하고 있다"며 "비정규교수들의 생존권과 교육권수호를 위해 4일부터 파업에 돌입키로 했다"고 밝혔다.
노조측에 따르면 '강의료동결, 강좌당 교재연구비 3만원 인상안을 제시한 대학측의 협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달 5일부터 30일까지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해 노조원 275명 중 235명의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했다.
다음은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의 파업돌입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2012 임단투승리와 정리해고 철폐 파업투쟁돌입 기자회견 전문
2012년 12월 19일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 카메론 메킨토시가 제작한 뮤지컬을 거쳐 영화로도 우리에게 다가왔다. 새로운 세상을 여는 혁명과 그 혁명을 통해 쟁취하려는 ‘박애’의 정신이 강렬하게 드러난 이 작품을 보며, 우리는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는 꿈을 잠시 꿀 수 있었다. 마침 이 날은 일제의 지배에 맞서 의거를 일으킨 윤봉길 의사가 순국한지 8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으니 그 의미는 더욱 깊이 있게 다가왔다. 더욱이 대통령 선거일 바로 직전인 12월 17일, 문재인 후보가 대학 개혁 10대 공약을 발표하면서 아홉 번째 공약으로 “시간강사의 정규직화, 대학 법정 교원 확보, 국내 박사 교수 비율 확충 지원” 등을 내세웠던 터라 알게 모르게 근거 없는 희망이 우리를 감쌌다.
그렇지만 12월 19일은 결국 시간강사 제도를 만든 사람의 자녀가 대통령에 당선된 날이 되어 버렸다. 사립학교의 민주적 개혁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던 박근혜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앞으로 대학의 올바른 개혁은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학 시간강사 제도 철폐와 정규교수 100% 확충을 요구하는 비정규 교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는 고난의 행군을 강요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1월 22일에 이명박 정권이 추진했던 시간강사법을 가까스로 1년 유예시킨 터라 비정규 교수의 힘겨움은 이제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의 첨병 이주호 장관이 유임되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증폭되고 있다. 노동조합을 만든 지 23년이 되는 올해, 역사상 처음으로 5개 대학이 동시에 파업과 농성에 돌입하고 있는 비정규 교수들에게 이번 대선 결과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빨리 현실을 직시하며 생각을 고쳐 먹어야 한다. 지난 50년 간 비정규 교수들에게 우호적인 정권은 어디에도 없었다. 박정희 정권은 지식인 통제를 위해 대학 시간강사 제도를 만들었고,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은 대학 자본의 비용절감을 위해 시간강사의 수를 대폭 늘렸으며, 김대중 정권은 시간강사를 전업강사와 비전업강사로 나누어 절반의 시간강사를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하였고, 노무현 정권은 시간강사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권고마저 무시했으며, 이명박 정권은 정규교수마저 시간강사로 대체하여 대학 교수들의 불안정화를 가져오는 시간강사법을 통과시켰다.
지금 대학 사회는 무차별적인 구조조정과 대량 해고가 만연해 있다. 정규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비정규직이 되고, 직접 고용될 사람들이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 되고 있다. 학과 통폐합, 졸업이수학점 축소, 폐강기준 강화, 최대수강인원 확대, 전임교원 담당 시수 증가와 잔업 수당(초과 강사료) 지급 등을 통해 비정규 교수들은 계속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임금 몇 푼 올리며 장밋빛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닌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비정규 교수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것은 당사자들의 저항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통령 선거에 대한 감상적 비평이 아니라 주체들의 진정어린 투쟁이다. 단결과 연대 투쟁을 통해 우리의 정당한 요구와 타당한 주장을 관철시켜 나가야만 한다.
우리는 지난 7개월 간 2012 임금단체협상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정리해고를 수시로 내세우고 비정규 교수들을 무시하는 학교 측의 도발에 맞서 결국 오늘 파업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상 최초로 5개 대학이 동시 파업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국립대인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학교측은 서로 담합하여 다른 대학이 타결되기 전에는 합의할 수 없다는 말만을 되풀이 해 왔다. 그들이 사용하는 논리 구조도 동일하다. 교과부와 다른 대학 눈치를 봐야 하므로 비정규 교수 문제 해결에 앞서 나갈 수 없으며 돈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경북대학교측은 교과부의 시간강사 강의료 지급 기준은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우린 묻고 싶다. 교과부의 시간당 강의료 1만원 인상안이 효력이 없다면 왜 대학들은 지난 수십 년 간 교과부의 강의료 지급 기준을 지켜왔는가? 왜 노조가 없는 대부분의 국립대는 1만원 인상안을 지키는데 유독 노조가 있는 대학만 이렇게 애를 먹이는가? 명백한 노조 탄압 아닌가? 교과부의 인상안을 따르더라도 비정규 교수의 연봉은 2천만원도 안 되어 생활임금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정규교수 평균 연봉의 25%도 안 되는 저임금에 공동연구실도 제대로 없이 매학기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 교수들에게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이 이토록 염치없이 굴어도 되는 것인가? 부산대학교는 한 술 더 떠 전임교원이 강의를 맡지 않으면 비정규 교수에게 강의를 배정하지 않는 독소조항 유지를 고수하고 있다. 비정규 교수를 노예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할 수 없다.
교과부가 주도한 시간강사법에 따라 대학들이 강사의 수를 줄이려고 함으로써 앞에서 언급한 구조조정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는 곧 비정규교수에 대한 대량해고로 이어지고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의 구조조정이 극심하게 일어나며 비정규 교수를 더욱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하는 곳은 사립대학들이다. 영남대학교측은 시간강사를 대량해고하고 무늬만 교수인 교책객원교수를 대거 뽑는다고 선언하였다. 영남대학교는 올해 봄에도 영어영문학과 시간강사를 대량해고 하고 '비정년' 외국인 교수 대거 채용을 시도한 바 있다. 조선대학교측은 학과 통폐합을 시도하면서 비정규 교수들에게만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 대량해고가 불가피하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있을 때는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돈이 없으면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거나 해고함으로써 비용을 충당하는 야만적 작태는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착취와 수탈의 고리가 되는 현대판 노예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제를 철폐해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들은 너나없이 비정규직과 정리해고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민생과 복지와 행복을 얘기하였다. 그러나 '말을 증명하는 것은 결국 행동'이다.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을 이끌어 낸 것은 언제나 피해 당사자들의 강고한 투쟁이었다. 그렇다. 정치적 수사를 현실로 만드는 건 결국 우리들의 투쟁이다. 우리가 유난히 추운 올해 겨울에 풍찬노숙을 감행하며 파업투쟁에 돌입하는 것은 더 이상 노예로 살아가지 않겠다는 해방선언이다. 굴종의 삶을 거부하겠다는 자유의 외침이다. 10만 비정규 교수의 노비적 근성을 날려버리는 사자후이다.
우리는 외롭지 않다. 평택과 울산의 철탑에는 아직도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정리해고철폐를 요구하며 목숨을 내걸고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다. 금속노조도 같은 요구를 걸고 1월 총파업을 결의하였다. 평화와 인권을 갈망하며 끈질기게 투쟁하는 농성단도 대한문 앞에 있다.
혁명은 결코 소리없이 오지 않는다. 혁명은 수출되지 않는다. 오로지 피해 당사자들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대안 제시,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주체들의 강고한 단결과 연대투쟁만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더 나은 세상과 대학을 건설할 수 있다. 교육혁명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오늘의 파업 투쟁이 새로운 생명을 심을 수 있는 밭갈기가 되길 기원한다. 오늘 우리가 심는 작은 씨앗이 모두를 평안하게 해 줄 고목이 되길 희망한다. '파업의 배신자가 되느니 차라리 피켓이 되겠다'던 영국 광산노동자들의 외침을 기억하며, 모든 정치의 기본이 저항이라는 점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우린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대장정을 떠난다. 고난의 행군을 감행한다. 우리가 처한 비참한 현실을 바꾸는 건 결국 우리의 피와 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번 투쟁을 통해 주요하게 요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린 이 최소한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
정부와 대학은 정년이 보장되는 법정 전임교원 100% 확충하라!
비정규교수에게 생활임금 보장하라!
비정규교수에 대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중단하라!
비정규교수에게 강좌개설신청권과 대학기구 참정권 등의 교권을 보장하라!
수강인원축소, 폐강기준 완화, 다양한 교과목 개설로 교육환경 개선하라!
공동연구실과 휴게실 제공, 연구비 지급으로 연구환경 개선하라!
시간강사제도 철폐하고 연구강의교수제도 도입하라!
정부는 고등교육재정 확충하라!
2012년 12월 20일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
윤정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