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폴란드에서 개봉한 영화 <머그>는 불의의 사고를 겪은 주인공 야제크가 세계최초로 얼굴이식수술을 받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신체장애를 지닌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라면 국내에서는 <형>이나 <말아톤>처럼 그들이 주위의 도움을 받아 장애를 극복해나가는 감동성장드라마를 그렸을 것이다. 반면 <머그>에서 야제크는 주위의 잔혹한 대우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사랑했던 연인은 그를 차갑게 외면하고, 누나는 그의 병원비벌이에 혈안이 되어있으며, 어머니는 악령을 물리쳐야 한다는 이유로 엑소시스트 신부를 집으로 데려온다. 이 영화는 신선한 소재를 통해 강렬한 사회풍자를 했다는 평을 받으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 내가 이 영화를 접할 방법은 부산국제영화제 밖에 없었다. 다른 이의 평을 찾아보기 위해 국내 최대 포탈 사이트에 영화의 이름을 검색했을 땐 어떠한 자료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저명한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을 국내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비상업영화, 즉 예술영화・독립영화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영화산업은 소수에 의해 독점되고 있고, 그들의 규제 혹은 권력싸움 속에서 자본의 도움을 받지 못한 영화는 조용히 흔적을 감출 뿐이다.
국내극장・영화관은 많지만 상영작은 많지 않다. 소수의 영화가 장악하는 양상을 보인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7년 한국영화산업 결산자료에 의하면 최근 몇 년 간 한국영화시장에선 평균적으로 1위 영화가 전국극장상영점유율의 30%, 2위영화가 20%, 3위영화가 10%를 가져가고 나머지40%정도가 다른 영화들에 돌아간다. 이 때 상영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화들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기준으로 정한 10억이상의 투자를 받은 상업영화이다. 2018년 40주차의 상영점유율만 분석해도 마블히어로물 <베놈>이 37%, 국민배우 김윤석의 <암수살인>이 30%, 조인성의 사극영화 <안시성>이 11%를 차지하며 전체영화상영점유울의 78%를 차지했다. <어벤져스3>이 국내에 최초개봉했을 때의 상영점유율이 75%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소수의 영화들이 영화관을 얼마나 많이 잠식하고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거대자본에 의해 제작・배급되며, 소위 말해 <믿고 보는>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들이 영화관을 독점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비상업영화, 특히 독립영화・예술영화는 상영조차 어려운 환경이고 대중은 필연적으로 여러 종류의 신선한 영화를 접하기 힘들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몇개의 영화들이 스크린을 점령할 수 있는 것은 거대자본의 독과점현상 때문이다. 영화계에서 시장집중도는 영화산업상영시장과 배급시장의 집중도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국내상영시장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CGV가 50%대의 시장점유율을 15년째 유지하고 있고, 이를 잇는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의 점유율까지 합쳤을 때 3사의 시장점유율은 97%로 압도적이다. 영화배급사의 시장집중도는 상영사에 비해 극심하진 않지만,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의 점유율을 합쳤을 때 40%은 역시 높은 수자다. 특정 회사에 의해 영화의 배급과 상영이 장악되는 것의 문제점은 자본의 도움을 받지 못한, 수익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비주류의 영화들은 상영이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수의 영화가 대부분의 스크린을 차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정인선영화진흥위원회객원연구원은 <하루5회의 상영을 1주일 동안 보장받는 영화는 주로 CJ, 롯데, NEW, CGV 아트하우스, 쇼박스 등의 영화들 뿐이고, 기타 배급사의 작품들 중에는 이를 보장 받는 것이 5%도 채 안된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독립영화・예술영화들은 거대배급사에 의해 보급되지 않기 때문에 관객이 접할 기회가 없다. 영화의 다양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상업적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주요배급사들과 상영사들이 독립영화・예술영화를 상영하지 않는다면 이 영화들을 접할 방법은 전용극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독립・예술영화전용상영관의 수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특히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여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라는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당시 창원본가에 있던 나는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창원을 포함한 인근경남지역에는 전용극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몇 주를 기다려 서울에 올라와 이화여대 아트하우스모모에서 영화를 봤다. 2017년 기준 전국에 452개의 극장이 있는데 이 중 80%에 해당하는 극장이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체인극장인 멀티플렉스이다. 그 외의 극장 중 예술영화관 또는 독립영화관들은 서울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비상업영화를 즐기기 힘들다.
비상업영화의 흥행 및 수익률에 의거하여 전용극장을 짓는 것에 회의적일 수 있다.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공급만이 이루어지는 것은 자본에 잠식되어 있는 사회에서 타당하지 못한 행위라고 판단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감독과 제작진이 그들의 의도에 부합하는 예술을 추구했다고 해서, 독립영화・예술영화라고 하여 흥행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윤성훈감독의 <파수꾼>, 이수진감독의 <한공주>, 홍석재감독의 <소셜포비아>등이 그 예이다. 이 작품들은 뛰어난 작품성과 우리 사회에 전달하는 날카로운 메세지,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력 등을 인정 받아 입소문을 타고 괜찮은 흥행실적을 거두었다. 덕분에 이제훈, 박정민, 천우희 등의 연기파배우들이 발굴되기도 했다. 또한 신파나 범죄 및 정치 영화에 장악되어있던 극장에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이처럼 작품성 높은 비주류영화를 꾸준히 제작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8월 확정된 정부 예산안에서 독립영화 투자 대부분은 올해와 같거나 오히려 줄었다. 영화교육 지원사업의 경우 올해 약 11억에서 내년 6억으로 절반 가까이 삭감됐고,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은 올해 26억에서 내년 23억으로 줄었다. 또한, 독립예술영화 제작 지원과 개봉 지원 예산은 각각 53억, 7억으로 동결됐다. 서울독립영화제 출품작이 전년대비 19% 증가했다는 점에서 독립영화계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정부의 투자는 부족하며 그마저도 매해 보장 받기 힘든 환경이니 독립영화가 더욱 발전하기가 힘들다. 단기간의 성과에 주목하여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독립영화 발전을 도모하지 못하는 것은 씁쓸한 현실이다. 우리나라 영화계의 미래가 다양성의 측면에서 밝다고 할 수 없는 이유이다.
국내에 다양한 영화가 배급되고 상영되기 위해서는 작품의 창작을 결정하는 자의 결정 폭이 가능한 넓어야 한다. 즉, 예술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담은 영화를 제작할 수 있어야 하며, 이 영화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심사를 거쳐, 전국에 배급 및 상영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에선 창작자의 결정 폭이 절대적으로 좁다. 그 대표적인 원인에는 영화 배급 및 상영에 있어 독과점현상이 일어나고, 전용극장상영관의 수가 부족하며,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박배일감독의 간담회를 참석하여 그의 영화 소신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그가 했던 말 중 가장 와닿았던 것은 국내영화는 감동, 눈물, 한 등의 정서를 표출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고, 대중이 접하는 영화의 장르도 신파극이나 몇 인물을 내세운 정치 또는 경찰 영화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다양성에 대한 대중의 결핍은 대중이 예술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교훈의 획일화를 야기한다. 그렇기에 다양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연세대 이채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