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보쉿트벨기에코리아친섭협회대표이자 국제평화운동가는 29일 서울용산철도회관에서 열린 9회코리아국제포럼<노동·복지·평화>에 참여해 발표를 진행했다.
요제프보쉿트친선협회대표는 먼저 벨기에노동혁명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1830년 벨기에노동자들은 하루12시간노동·배고픔과 가난·노동자들의권리가 없는 열악한 처지에 맞서 노동계급의 혁명을 일으켰으나 <부르주아계급이 그 혁명을 훔쳐갔다>고 말하면서 이후에도 매개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이어져 1871년에는 하루 10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는 전국적인 규모의 총파업이 있었으며 <1868년 1893년 그리고 1902년 세차례에 걸친 전국적 파업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국적파업속에서도 투표권은 아직 노동자들에게 확대되지 못했다.
이후에 1917년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같은일이 벨기에에서도 일어날수있다고 우려해서 1921년에 보통선거권이 부여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배제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부유한사람들,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은 최대 1인당 4표까지 행사를 할수있도록 하는 제도가 도입 되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30년이 지난 1944년에야 여성참정권이 도입되었으며 1936년이 되어서야 노동자들은 일주일간의 유급휴가를 받을수 있었다.
이어서 그는 1940년부터 1944년 <나치점령시기에 노동자조직들 노동자당은 벨기에의 전국적인 독립전선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이것은 무장투쟁단체였는데 이들의 투쟁덕분에 벨기에는 나치로부터 해방이 될수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2차세계대전이후 벨기에부르주아군대가 모두 해산된 상태였으며 군인이 4만명 경찰이 7000명이 있었지만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부르주아계급은 노동자들에게 굉장히 많은것들을 양보할수밖에 없는것에 대해 설명했다. 병에 걸리거나 실업상태가 되었을때 지원을 받을수 있는 그런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벨기에의 전국적인 성과였다>고 말했다.
이후 1950년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중심의 군사동맹 나토가 출범했으며 미국과 벨기에가 포함된 7개 회원국은 코리아에서 전쟁을 하게 되었다. 벨기에 노동자들은 앙투와프에서 항구를 봉쇄하는 투쟁에 나서 코리아로 무기가 운송되지 않도록 막기도 했다. 이때 항구파업지도자들은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벨기에인들의 의식은 바로 이러한 전국적인 노동운동을 통해서 형성된것>라며 벨기에노동역사에 대한 설명을 마쳤다.
계속해서 그는 <벨기에는 현재 연방제국가로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포함해서 6개정부를 가지고 있는데 현재는 연정이 붕괴한 상태다. 민족주의정당이 연정을 탈퇴했기 때문인데 어쨌든 기본적인 시스템은 중앙정부가 있고 크게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서 지역별로 지방정부가 있다.>며 현재벨기에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두가지 노동자보험제도 <실업보험 제도와 임금물가연동제>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본가들이 이런 실업보험제도나 임금물가연동제도에 대해서 공격하고 있는것을 비판했다. 그리고 최저임금제폐지와 노인연금제도에서 연금수급연령을 67세까지 올리려고 했던 민족주의정당의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권리들을 지키기위해서 적극적으로 싸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남코리아에 노동자들과 노동운동의 용기가 인상적이였다고 말하면서 남코리아는 <굉장히 높은 수준의 의식과 규율을 갖고있다. 또 조직화의 정도와 문화적 수준이 굉장히 높고 노동자들의 대의에 복무하고자하는 의지도 놀라웠다.>며 감탄했다.
또한 <벨기에 노동자들이 코리아의 노동자들로부터 배울것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을 한다>며 <코리아와 벨기에의 노동자들 모두가 승리할것>이라고 강조하며 발언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