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도 결국 거울에 맺힌 상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내몸도 내눈으로 볼 수 없는 불완전한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존재를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이다. 그러나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춰볼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의 존재를 납득하기 위해 타인의 삶을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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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중개업자 세바스찬 니콜라스는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이렇다 할 특징도 없고, 주관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살아가는 세바스찬은 스스로를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고객의 집에 숨어들어 그 사람의 삶을 흉내낼 때다. 그러던 중 그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앙리 드 몽탈트를 만나고, 선명하고 화려한 앙리의 정체성과 그의 굴곡진 삶을 갈망하게 된다. 후에 주인공이 앙리 드 몽탈트로서 부동산 중개업자 세바스찬을 죽인 혐의로 체포되는 장면은 역설적이지만, 이미 주인공은 스스로가 앙리 드 몽탈트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부동산중개업자 세바스찬 니콜라스가 본인의 삶을 훔치려 했기 때문에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주인공의 마지막 독백은 인간을 정의하는 요소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제목 <얼굴도둑>은 주인공의 감탄스러운 변장 기술과 모방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제목이다. 그러나 영화는 영어권 제목인 <nobody from nowhere>처럼, 세바스찬이라는 인물의 본질에 더 집중하고 있다.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한 채 타인의 삶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세바스찬이라는 인물은 고독의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발달된 문명 안에서 서로 격리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외로움과도 닮았다. 

세바스찬이 앙리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은 명백한 자기기만이었지만, 그 기만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이미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시스템속 무한경쟁은 사람이 스스로를 속여야 할 만큼 각박하다. 반작용으로 피어오르는 삶에 대한 허무함은 자기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느껴지게 한다. 감독 마티외 들라포르트가 그린 현대사회에 대한 초상은 체포되는 순간까지 스스로를 앙리 드 몽탈트라고 믿던 한 존재하지 않는 남자의 운명처럼 위태롭게 느껴진다.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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