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에게 영화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영화의 형식이 다양해지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표현방식의 한계도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는 아름다운 영상미로 치밀하게 구성된 극영화부터, 사회부조리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그중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있다. 바로 1925년에 나온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 감독의 영화 ˂전함 포템킨˃이다. 1925년은 영화가 발명된 지 30년이 되던 해였다. 그 시절의 영화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1905년, 전함 포템킨에서는 혁명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장교들의 억압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견디며 힘겹게 복무하던 수병들은 어느 날, 썩어서 구더기가 끓는 고기를 식사로 지급받는다. 그에 항의한 수병들을 향해 장교들이 총구를 조준하자, 한 병사의 외침을 시작으로 수병 700여명이 혁명에 몸을 던진다. 그 소식이 가까운 항구로, 도시로 퍼져 시민들에게로 혁명의 불길이 번진다. 이후 왕의 군대에게 학살당하는 시민들 사이로 굴러 떨어지는 유모차와 아기는 영화가 나왔던 1925년이나 지금이나 강렬한 충격을 남긴다. 감독은 학살에서 느껴져야 마땅한 참담함을 계단 아래로 떨어지는 유모차와 아기의 이미지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1895년에 나온 세계최초의 영화는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오는 걸 촬영한 짧은 영상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의 역사에 <전함 포템킨>이라는 위대한 혁명이 일어난다. 서로 다른 이미지를 충돌시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낸 몽타주기법이나, 화려한 배우가 아닌 민중이 주인공인 점에서 영화 <전함 포템킨>은 당시 세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감독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은 영화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변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영화는 사랑이야기 등을 담은 짧은 오락거리였지만, 예이젠시테인은 문맹률이 높은 민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감독은 영화 <전함 포템킨>으로 러시아민중들에게 혁명에 대한 열망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결국 영화가 혁명의 불을 붙이진 못했지만, <전함 포템킨>이 지닌 의미는 여전히 혁명적이다. 생생하고 강렬한 혁명의 이미지를 담은 영화는 그 자체로 혁명의 몽타주이고, 예이젠시테인이 시도한 혁신적인 몽타주기법은 영화사의 위대한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 의미는 9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관객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다.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