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리(원전)와 밀양(송전탑) 일정이다.
8시. 우렁각시라는 식당에서 창원의 단체들에서 마련해준 아침을 먹었다.
행진단은 고리로 향했다.
창원에서 부산 기장군까지 걸리는 시간을 여유롭게 잡아둔 탓으로 시간이 좀 남았다.
인근에서 휴식을 취한후 원자력본부앞으로 갔다.
예상대로 경찰들이 정문을 지키고 있다.
무엇을 본 듯 문정현신부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급기야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고 있는 한 젊은 친구를 향해 달려가며 불같이 화를 낸다.
“비켜 야이 자식아 저리 꺼져!”
채널A. 동아종편 기자다.
제이씨, 둥글이씨가 바로 문신부님을 대신해 나선다.
“여기가 어딘줄 알고 들이대고 있어. 꺼지라고”
“니들이 한짓을 몰라? 아이씨? 가라구. 취재하지 말라구”
“당신? 신부님한테 당신이래? 그러놓고 네가 언론인이야? 기자가 기자다워야지”
“마을주민들을 빨갱이 취급했어. 조중동에서. 알았어? 열안받겠어?”
세리씨는 좀 더 차분하게 말한다.
“카메라 치우지 못해요. 그거. 닫으세요 그거. 취재거부합니다. 우리는”
“그런 회사에서 일하지 마세요. 아시겠습니까”
좀 있다가는 높은 언덕위에서 직원이 사진과 영상을 찍고 있었다.
또 한차례 높은 언성이 오갔다.
경찰의 ‘채증’에 온갖 탄압과 스트레스를 받은 강정마을사람들의 분노는 어쩌면 당연하다.
세리씨는 기어코 언덕위로 올라가 그 직원에게 항의하고 나섰다.
지역단체소속 진행자가 마이크를 잡고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대해 해명했다.
중앙의 보수언론이라고 하더라도 지역에서는 적대적이지 않고 가급적 우호적으로 보도한다는 거다.
지역사안에 대해선 공정하게 보도한다며 강정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종편을 받아들이라구?”
하지만 문신부님의 화를 눅잦힐 순 없었다.
“조중동은 이명박 홍보지야. 알아?”
나서진 않았던 강동균회장도 한마디 거든다.
시간이 좀 지나서 피디정도로 되보이는 사람에게 강회장은 차분하지만 정확하게 조중동 때문에 얼마나 강정주민들이 고통을 당했는지를 이야기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행진단은 식사를 한후 신고리원전1~4호기 현장에서 울주군 신리마을까지 행진했다.
교통경찰이 에스코트를 해주었지만 외길인데다가 차들이 쌩쌩 달려 만에하나 사고라도 날까 아찔했다.
행진중간 한전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입구앞에서 또 경찰이 행진단을 막아섰다.
통행이 자유로운 공사장현장을 행진단은 들어가볼 수 없다는 얘기에 다들 또한번 격분했다.
산위엔 어마어마하게 큰 송전탑도 보였다. 밀양으로 가는 문제의 765kv송전탑이라 한다.
이날 이지역저지역 다니며 11월3일집회를 조직하고 있는 문규현신부님도 도착했다.
이지역 수녀님들 스무명정도가 행진에 동참했다.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해 있는 마을 해안가는 정말 아름다웠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미리 준비된 햇사과를 먹으며 잠깐의 여유를 가졌다.
누군가 “하여튼 미군기지든 발전소든 저놈들은 경치 좋은 곳만 차지한다니깐. 나쁜놈들.”이란다.
오히려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행진까지 마치고 쌍용차 김정운, 한윤수 노동자가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다.
밀양에 새로 2명이 와있다고 한다.
김대용씨는 전일정을 같이 하기로 했다.
행진단은 밀양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단장면 이촌리. 마을사람들은 금곡헬기장으로 부르는 곳이다.
실제로 헬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고 주변에는 공사장비와 자재들이 쌓여 있었다.
공사장으로 출입조차 못하게 막는 강정과 달리 이곳은 출입은 가능했다.
손희경할머니와 박윤순할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막을끼라. 이래 도와준께네 참 더 힘납니더. 힘이 넘쳐납니다. 너무너무 좋아서 웃음이 나옵니더. 너무 좋다”
손희경할머니는 처음엔 눈물을 글썽이다 너무 좋아하며 힘이 난다고 말했다.
“반갑습니다. 너무 우리는 작년 설에 고생을 마이 해나가 아무도 못 오고 그러다가 지금은 이래 마이 와주시고 너무 감사합니다. 전부 지름(기름) 준비해가 있습니더. 죽든지 살든지 마 기다리고 있습니더. 감사합니더”
박윤순할머니가 말한다.
이치우할아버지가 분신한 마을의 이장님도 “우리는 모두 분신할라고 준비하고 있습니더”라고 했다.
문신부님이 말을 잇는다.
“이른바 국책사업이라는 데 반드시 껴 있는게 이 삼성물산. 죽일놈들. 강정에도 삼성물산, 저 용산에도 삼성물산. 도처에서 돈되는 일은 다 하는 놈들. 이거 없애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정해군기지 공사하는데 이건희가 이런말을 했습니다. ‘강정해군기지 공사가 중단된다면 삼성물산 문을 닫아버리겠다’고. 그래서 강정해군기지를 백지화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거 잘 나가는 것은 기가 있어가지고 꺾기가 슆진 않습니다. 강정이 됐든 밀양이 됐든 하나만 분질러 놓으면 분질러지지 않겠습니까. 밀양에 오니까 강정문제가 밀양문제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할머니들에게 요구하기 미안하고 송구스럽지만 마 경쟁적으로 싸워봅시다. 강정은 강정대로 밀양은 밀양대로. 저기요 할머니. 조금전에 신부님 한명 만났죠. 제 친동생이에요. 큰놈은 강정에 있고 작은놈은 밀양에 있어가지고 큰놈이 이기나 작은놈이 이기나 둘중한군데 꺾어버리려고, 아니 둘다 꺾어버리려고 하는 겁니다.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고요. 나는요, 삼성물산 하면 이가 갈립니다. 온 국토를 다 돈에만 눈독들이고. 삼성이 부리고 있는 그 용역새끼들 거 잘 압니다. 얼마나 야만적이고 인간도 아닌 그런놈들한테 당해봐서 잘압니다. 얼마나 힘드셨는가 눈물이 납니다.”
“인자는 눈물이 안납니다. 아무리 싸워도 몬 이길까 걱정한번 안해봤으예.”
손희경할머니는 거듭 “이제 힘이 난다”며 웃고 또 웃었다.
행진단은 제약산 바드리로 가서 공사를 막아낸 현장을 둘러보러 버스를 탔다.
강동균회장은 말없이 눈물을 흘린다.
팔순 어머니를 생각하는지 “응원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다.
공사현장은 나무들이 다 뽑혀 있었지만 송전탑은 세우지 못했다.
최아네스와 송루시아 두분이 포크레인, 헬기를 맨몸으로 막아낸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들, 여성들이 이렇게 밀양을 지켜내고 있다는 데 행진단의 여성들뿐아니라 모두가 더 용기를 얻고 격려의 박수도 보냈다.
저녁에 영남루에서 촛불미사가 열렸다.
밀양 송전탑건설 반대투쟁에는 실제로 천주교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면단위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왔다.
이날은 우리 밥차가 미사겸집회 참가자들의 밥을 책임졌다.
먼저 도착해 미사에 참가중인 문규현신부님, 늦게 도착해 지팡이를 짚고 점퍼차림으로 참가한 문정현신부님. 모처럼만의 평화를 얻었을까.
나중에 물어본 이야기지만 미사를 보면 마음의 여유, 평온이 아니라 ‘한판 크게 싸워볼 힘’을 얻는다고 한다.
문정현신부님은 미사가 끝날즈음 고개를 푹 숙이고 기도를 했다.
하루의 고단함을 푸는 듯, 이 민초들의 고통에 왜 더 함께하지 못했는가 하느님께 고백하는 듯.
미사가 끝나고 세리씨, 딸기씨, 제이씨, 돌고래씨와 기자는 금곡헬기장옆 농성비닐하우스로 갔다.
두 할머니들이 오늘밤에 묵는다고 했다.
손희경할머니는 18세에 시집와서 80세까지 고향을 지켰다.
아들둘에 딸둘. 59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지금껏 자식들을 키웠다.
국회에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죽어도 철탑 안고 죽지 철탑밖에 나와서는 안죽을낍니더. 죽어서 조상님 뵐 면목이 없습니더”
강정이든 평택대추리든, 밀양이든.
이들에겐 자신들의 고향을 지킬 권리가 있는 것이다.
나영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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