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이하 반일행동)은 소녀상앞에서 〈친일극우소녀상집회강력규탄!〉 30차 온라인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사회자는 〈오늘의 주제는 해방이후 민중들의 투쟁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한다. 이번 주제를 통해서 광복이후 민중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투쟁을 했고 그리고 민중이 왜 역사의 주인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친일친미반민중세력들에 맞서서 우리가 어떻게 투쟁해야되는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보겠다.〉고 전했다.
이후 〈1945년 8월 해방인줄 알았던 우리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38도선을 기준으로 식민통치를 받게됐고 미국은 남측을 점령군의 이름으로 들어온다. 당시 민중들은 해방인줄 알았는데 들어온 미군정으로 인해서 일제때와 다름없게 식량을 공출당해야 했고 친일파들은 친미파가 돼서 다시한번 민중들을 탄압했다. 첫번째 다룰 역사로 1946년 대구에서의 10월항쟁을 다루려고한다.〉며 지킴이에게 설명해달라고 말을 건넸다.
지킴이는 〈일제가 패망해서 본토로 쫓겨났지만 그 일제를 제대로 청산하기는커녕 잔재가 그대로 군림해서 친미파라는 이름으로 외세에 빌붙어서 생존을 하지 않았는가. 미군정이 이전에 있었던 공출제도를 다시 부활시켜서 온나라에 기아가 들끓었다.〉며 〈이후 기아시위라고 불리는 일들이 벌어졌다. 아이 어른 노인 할것없이 빼빼마른 상태로 거리에 나와서 하는 시위가 계속되다가 사람들이 가장 배가 고픈시기 9월 10월달에 점점 민중들의 분노가 쌓였다.〉고 답했다.
이어 〈9월달에는 전평의 전국총파업이라는 형태로 일어났고 10월달에도 기아시위대들을 향해서 경찰들이 수세에 몰려서 발포를 한다. 10월1일에 노동자2명이 사살되고 다음날인 10월2일에는 17명이 경찰들의 총에 이의해서 죽음을 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해서 그동안 쌓여있었던 수탈과 친일파의 재등용 그리고 분단을 야기시키고 있는 외세에 대해서 분노가 터져나와 10월달에 대구에서부터 항쟁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소녀상지킴이의 〈청년〉노래공연이 진행됐다.
사회자는 〈오늘날까지도 본질적으로 바뀌지않은 사회이지만 그 사회를 바꿔가는것 역시 오늘날 남은 우리들의 숙제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청년들이 오늘날까지도 이렇게 투쟁을 하고 주변에 많은 시민분들이 함께 해주고 계신다. 이런 지지와 응원이 있기때문에 1700일이라는 역사가 쓰고있지 않나. 함께 역사를 바꿔가고있다고 생각하기에 같이 소녀상지킴이가 돼서 아니면은 역사의 주인으로 함께 투쟁해나가면 좋겠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바위처럼〉노래를 부르며 제30차 촛불문화제가 마무리됐다.
아래는 현장영상이다.
현장영상
소녀상특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