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5.18민중항쟁 당시 가두방송을 맡아 시민들의 시위 참여를 이끌었던 전옥수(본명 전춘심)씨가 급성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49년 전남 보성군에서 태어난 전씨는 31살 때인 1980년 5월19일 광주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항쟁에 참여했다.
전씨는 1980년 5월 19일 밤에서 다음날로 넘어가는 새벽,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 상황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도청까지 걸어가면서 가두 방송을 했다.
전씨가 <광주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편안하게 집에서 잠을 잘 수가 있습니까? 우리 동생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라고 했던 연설에 광주의 민중들은 너나 할것없이 시위에 나서는 등 당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5·18 시위대의 얼굴로 불린 전씨는 1980년 5월21일 계엄군의 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기 전 시민대표 5명에 포함돼 장형태 당시 전남도지사를 만나 계엄군이 물러나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전옥주씨는 이북 모란봉에서 2년간 교육받고 남파된 간첩으로 몰렸고 9월19일 계엄포고령 위반과 내란음모 등의 죄명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81년 4월3일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전씨는 수감 당시 모진 고문을 받아 평생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국회 광주청문회 때는 증인으로 출석해 광주 참상을 알렸다.
각계각층에서 추모행렬이 이어지며 5.18 민중항쟁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전씨의 불같았던 투쟁정신은 역사가 기억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