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앞에서 총장퇴진 ‘공부시위’
카이스트학생 100여명이 기말고사를 앞두고 도서관이 아닌 본관앞에 책상과 의자를 두고 공부를 했다. 서남표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공부시위’에 나선 것이다.
학생모임(카이스트의미래를걱정하는학생들의모임)은 21일 오전 본관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장퇴진에 뜻을 함께하는 많은 학우들과 함께 기말고사 첫째날인 월요일 ‘본관열람실’을 연다”고 밝혔다. 학생모임은 ‘공부시위’에 대해 “학우들이 주도적으로 총장과 학교본부의 독선을 타파하고, 진정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는 카이스트를 재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서남표총장의 사퇴를 요구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총체적 난국의 원인은 서남표총장의 독선”이라고 지적하고 “징벌적 등록금이 신설되고 전면영어강의가 이루어지며 연차초과는 규제되고 재수강은 봉쇄되는 무자비한 정책에 학우들은 반발했지만 서남표총장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서남표총장에 비판적인 선본이 단일후보로 출마하자, 연차초과자는 학생대표가 될 수 없다는 조항을 선거직전 신설해 총학생회의 성립을 무산시켰다”는 점 등을 근거로 “민주적이고 상식적으로 운영되는 학교, 학우들의 꿈과 열정이 생동하는 학교의 복원을 위해 서남표총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카이스트신문에 따르면 이날 시위에 약100만원 가량의 후원금이 모금되고, 고학번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이 나서서 질문에 답해주는 ‘헬프데스크’가 운영되는 등 자발적인 학생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카이스트총학생회는 21일부터 서총장 사퇴여부 및 서총장 리더쉽에 대한 평가 등의 문항이 담긴 전체 학부생대상 온라인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교수협의회도 지난 8일 개교이래 첫 학내가두행진을 벌이며 서총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이날 시위에서 교수들은 “서남표총장은 독선적 학교운영, 구성원간 분열조장, KAIST 위상추락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한편 서남표총장은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퇴는 없다’고 못박았다. 카이스트는 24일 이사회를 열 예정이다.
다음은 학생모임이 발표한 '카이스트 학우여러분께 드리는 글' 전문이다.
"본관앞 열람실에서 만납시다"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서남표총장의 개혁이 독재적으로 실시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징벌적 등록금이 신설되고 전면영어강의가 이루어지며 연차초과는 규제되고 재수강은 봉쇄되는 무자비한 정책 아래서,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학우들은 반발했지만, 서남표총장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듣는 시늉을 하셨지만, 학우의 목소리는 정책기조에 일절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정책시행이 쏟아지면서, 학생사회의 분위기마저 힘을 잃었습니다. 지난 6년의 카이스트를 살아가는 학우들의 어깨에는, 유난히 힘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독선에 분노합니다. 2008년 총장간담회에서 보여준 태도는 독선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독단적 개혁에 대한 학우들의 합리적 우려에, 서남표총장은 “Anyway, good night”이라는 말을 남기고 대화를 중단했습니다. 2009년 학부총학생회선거에서 보인 노골적 선거개입에 또한 분노합니다. 서남표총장에 비판적인 선본이 단일후보로 출마하자, 연차초과자는 학생대표가 될 수 없다는 조항을 선거직전 신설해 총학생회의 성립을 무산시켰습니다. 그 대신에 성립된 총학비상대책위원회는 학생대표기구로 학교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그래서 2009년 학생사회의 ‘공식적인’ 목소리는 없었다는 것에 분노합니다.
우리는 참담함을 느낍니다. 서남표총장의 전횡이 수년째 반복되어도 내 살아남을 길만 찾았던 우리는 참담합니다. 지난 한해, 우리는 너무나도 애통한 일을 겪었습니다. 일련의 슬픔이 서남표총장의 독단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울타리안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서남표총장은 비극의 대책으로 혁신비상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성원 모두가 만족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취재진이 철수했습니다. 학우와 국민의 관심속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러자, 서남표총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합의서의 문항순서’와 ‘이사회의 결정’을 핑계로 태도를 돌변했습니다. 지성의 전당이 붕괴되는 현장을 신랄하게 목격하는 우리는 참담합니다.
우리는 이제 참담함을 넘어 황당합니다. “총장님, 제발 독선을 멈추고 소통하십시오”라는 학우들의 열망은 그동안 묵살당했습니다. 위기에 몰린 서남표총장은 지난해 ‘혁신비상위원회’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 즉시, 전면 시행하겠다 한 약속이 휴지조각처럼 파기되는 현실을 마주하며 우리는 황당합니다. 600명의 학우가 ‘총장과의 대화’를 찾았습니다. 총장님께 꼭 한마디 드리고 싶었습니다. 서남표총장은 취재기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1시간반이나 늦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 이후로 서남표총장은 위기때마다 몇차례 더 소통을 거론했습니다. 지난해 '대화합을 위한 회의'를 제안했고, 이번에는 '대통합소통위원회'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꾸준한 독선반대의 목소리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수세에 몰리자 앞장서 소통카드를 꺼내들고, 소통하자던 혁신위는 불통으로 마무리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황당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밝힙니다. 학우들과 피자를 먹고 삼겹살을 사주며 사진을 찍는 것은 ‘소통행보’가 아닙니다. 진정한 소통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다른 목소리에도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며, 때론 다수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해 자신의 견해도 과감히 수정할 수 있는 것이 소통이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반대가 없으면 개혁이 아니라며 학우들의 호소를 절하하고,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으며, 나중에 이기기 위해 때론 지금 질 수 있다’며 전체메일을 보내는 서남표총장에게 소통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학내분쟁이 극단을 향해 달리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카이스트의 명예와, 한국과학기술의 중심기지라는 위상이 점차 실추되어 감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남표총장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총체적 난국의 원인은, 서남표총장의 독선입니다. 소통에 올인하며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결국 그 끝에는 말바꾸기와 무시, 진정성 없는 대화와 독선적인 태도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서남표총장의 독선적 학교운영이 환골탈태하기를 우리는 기대했습니다. 6년이 지난 지금, 서남표총장에게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우리는 확인합니다. 민주적이고 상식적으로 운영되는 학교, 학우들의 꿈과 열정이 생동하는 학교의 복원을 위해 우리는 서남표총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합니다.
서남표총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며, 우리는 전공책을 들고 본관 앞으로 나갑니다. 뜻을 함께하시는 많은 학우들과 함께, 기말고사 첫째날 ‘본관열람실’을 열고자 합니다. 21일 월요일 오전10시부터, 본관 앞쪽에 준비될 열람석에서 자유롭게 공부하시면 됩니다. 이는 학우들이 주도적으로 총장과 학교본부의 독선을 타파하고, 진정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는 카이스트를 재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본관앞에서의 공부는 번듯한 도서관보다 작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작은 불편으로, 후배들에게 당당히 자랑할 수 있는 내일의 카이스트를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기에 우리는 본관 앞으로 나아갑니다.
학우여러분, 함께해 주십시오. 뜻을 같이하는 학우여러분, 본관앞 열람실에서 만납시다. 기말고사라는 제약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학우들께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힘을 실어 주십시오. 우리가 사랑하는 카이스트, 우리의 힘과 지혜를 모아 다시 일으켜 세웁시다. 감사합니다. 카이스트의미래를걱정하는학생들의모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