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선 <기생충>

21세기대학뉴스 2019.10.28 00:35 조회 수 : 653

질문이 많으나 잘 엮여있다. 세부가 강하고 중심은 분명하다. 실제 우리가 궁금해하는 절박한 문제를 다루니 공감도 기여도 크다. 그 문제의 근원을 안다. 그러니 답도 안다. 다만 선을 지켜야 한다. 다음 계획이 있다.  
 
기생충. 보여주는대로 김기택가족인가. 내장처럼 구불구불한 지하복도끝에 사는 문광남편인가.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 박사장인가. 인간을 숙주로 삼는 탐욕인가. 아는만큼 본다. 관점과 입장에 맞게 본다. 다 열려있다. 또 그래야 다음이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계급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키에슬로프감독은 그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라면 켄로치감독옆에서 커피심부름도 할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반지하. 지하도 있다. 김기택가족은 반지하에 살고 문광남편은 지하에 산다. 박사장은 그 높은지대의 큰집의 윗층에 산다. 사회를 집으로 그릴 때 윗층은 상층계급이고 반지하는 중간계급이고 지하는 하층계급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생활적으로 자본가와 중산층, 노동자라고, 과학적으로 부르주아계급과 소자산계급, 프롤레타리아계급이라 부른다. 김기택과 문광남편 사이에는 반지하와 지하에서 <지하>의 공통점과 <반>의 차이점이 있다. 전자는 대왕카스테라를 하다 망한 것이고 후자는 김기택이 재주가 좋은 자식들을 뒀다는 것이다. 재능이 뛰어나 중간층이 되지만 끊임없이 파산영락하는게 법칙이다.   
 
선. 기우와 기정이까지는 괜찮았다. 운전사를 자르며 기택이 들어가고 문광을 자르며 충숙이 들어가며서 완전히 선을 넘겼다. 운전사는 안했지만 문광과 문광남편은 저항하며 갈등이 증폭됐다. 계급간모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를 리스펙트(respect)하고 눈앞에서 자기밥그릇을 빼앗는 소자산계급과 싸운다. 소자산계급은 보통 프롤레타리아를 없는것들이라고 멸시하고 부르주아계급을 나쁜놈들이라고 욕하는데 여기서는 착한애들이라고 살짝 비튼다. 운전사를 걱정하는 기택과 이기적인 기정의 운명은 그래도 살아 지하로 들어가는 길과 문광남편에게 목숨을 잃는 길로 갈라진다.  
 
냄새. 기택네는 박사장이 친 선을 넘지 않지만 기택네의 냄새는 그 선을 넘는다. 수재로 이재민이 된 기택네가 일요일에 박사장네 파티와 인디언쇼에 동원되고 돈이야기까지 들으면서 박사장도 기택이 친 선에 근접한다. 기택의 딸이 죽고 문광남편이 죽었는데도 제자식만 생각하며 차키를 달라하고 냄새로 코를 막을 때 마침내 선을 넘는다. 선은 이성이고 냄새는 감성이다. 이성에 감성까지 합쳐지니 분노는 폭발하지 않을수 없다. 다만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항쟁이 아닌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응징은 세상을 바꾸지 못하며 스스로는 감옥에 갇히든 지하에 몸을 숨겨야 한다.  
 
비. 아래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불운이 되고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미세먼지를 가시는 행운이 된다. 비가 오는 날, 주인행세를 하는 사람들은 그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야 했고 반지하는 오염된 물에 잠겨 엉망이 된다. 계급사회에서 변수는 하층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고통이 가중되면 결국 폭발하게 된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은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재앙이 되고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분노의 감정을 축적하게 한다.  
 
계획. 아들 기우는 아버지 기택에게 계획이 뭐냐고 묻는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이 사회는 계획하면 망한다고 답한다. 아들은 실패한 아버지와 달리 계획을 세운다. 외부로부터의 재난과 내부로부터의 탐욕은 계획된 살인을 부추기지만 결국 기우는 수석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며 양심을 되찾는다. 순수는 박사장네 인디언놀이를 하는 아들처럼 기우가 지하로부터의 모스신호를 알아보게 한다. 서울대를 가겠다는 기우와 운전사를 하는 기택은 각각 인텔리와 노동자를 상징한다. 인텔리는 계급상승의 탐욕을 버리고 순수와 양심의 눈을 가질 때에만 노동자와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그럴 때만이 세상을 바꿀수 있는 계획을 세울수 있다. 집은 사회고 생산수단이다. 집이라는 생산수단을 쥘 때에만 아래에 갇혀있는 노동자가 스스로 올라와 자유롭게 된다. 영화는 결코 비관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잘못된 사회는 계획이 없다.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드는 비공개계획은 있지만 빈자를 구원할 계획은 공개든 비공개든 존재하지 않는다. 빈자는 더욱 빈곤해지고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는 빈익빈부익부의 수직적 양극화가 일어나고 빈자들의 분노는 필연적으로 폭발한다. 다만 이 분노가 계획적으로, 조직적으로 폭발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사회를 바로 잡지 못한다. 계획이 있는 제대로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계획이 필수적이다.  
 
영화는 수미쌍관의 나선형구조를 이루며 반지하에서 시작해 반지하로 끝난다. 피자박스 4개중 1개의 불량처럼 가족 4명중 해고를 종용하던 기정이 목숨을 잃고, 피자박스의 불량을 야기했듯이 탐욕의 길로 종용한 기택은 지하에 갇힌다. 참고로 프롤레타리아 문광네는 전직 배우 문광이 북말투를 흉내내고 박사장네 연교는 미제텐트라 튼튼하다 감탄한다. 이처럼 영화는 우리사회에 대한 구조적 분석이 철저하고 치밀하다. <설국열차>가 뒷칸에 사는 사람과 앞칸에 사는 사람의 계급갈등을 시스템을 폭파시키는 식으로 폭발시켰다면 <기생충>은 아래에 사는 사람과 위에 사는 사람의 계급갈등을 존재를 없애는 식으로 폭발시킨다. 계급갈등은 결코 적당히 정리되지 않는다. 다만 부자들을 공격하면서도 부자들을 이용하려면 선을 지켜야 한다. 필모그래피의 계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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