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영경아? 일상으로 돌아와서 잘 지내고 있지? 오빤 아직도 시차적응이 안 되고 있다"



평상시에 늦게 일어나 자주 혼났던 나. 요즘엔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이 들쑥날쑥해졌다. 유럽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 훌쩍 넘어서고 있는데 아직도 시차적응이 안된 탓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이런 문자가 와 있었다. 유럽으로 함께 여행 간 오빠였다. 잠이 덜 깼는데도 웃음이 나왔다. 함께 간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금 나처럼 웃고 있을까.


사람마다 생각하는 가치는 다르다. 그래서 서로 맞춰가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 '대학생자동차유럽대장정'은 단순히 대학생들끼리 모여 유럽으로 룰루랄라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가치를 배우며, 새로운 것을 함께 느끼며, 공존하는 법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사람의 가치를 여행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유럽이라는 새로운 생활과 문화에 적응하며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의 첫 만남은 5월 따듯했던 그 어느 날이었다. 사전합숙을 한다며 서울 근처에 펜션을 잡아 앞으로 우리가 할 가치여행에 대해 배웠다. 단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나는 앞으로 함께 할 사람들을 스캔(?)했다. 전부 선한 눈매에 입가엔 웃음을 띠고 있었다. 안도했다.


앞으로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또는 그보다 더한 시간을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데 모두 좋은 사람 같았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고 마시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서로가 살아온 환경에 대해, 앞으로의 할 여행에 대해, 서로의 첫인상에 대해 등등. 어색했었지만 그렇게 서로가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다.


파리로 출국하는 날, 나는 출국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다. 함께 가는 우리 조 언니가 문자로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출국하지 못했을 것이다. 출국 4시간전, 부랴부랴 짐을 다 싸서 공항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계속 울려오는 전화. 이미 공항에 도착한 친구들의 전화였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4명에게서.


출국하기도 전, 비록 늦어서 잠옷을 입고 공항으로 뛰어가고 있었지만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작은 존재였던 나를 이렇게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에 감동했다.


8인승 푸조자동차를 타고 파리, 베네치아, 런던 등 유럽 7개국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살아온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우리 조 안에서도 트러블이 자주 일어났었다.


나와 부조장 언니가 고집이 무척 세 서로 고집을 굽히지 않는 탓이었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졌지만 다섯 명의 조원이 우리 사이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를 조율했다.


서로 한 발짝 물러서며 트러블은 금세 없어졌지만 나는 아직도 부조장 언니를 포함해 우리 조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우리 조에서 막내를 맡고 있었지만, 다른 조 막내들과는 다르게 귀염성도 없고 오히려 언니에게 맞서려고 하는 건방짐도 함께 맡고 있었기에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언니, 오빠들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었다.


산 좋고 물 좋은 유럽에서 얼굴 붉히며 대립만 하던 게 부끄럽기도 했다. 한참 후에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때 그런 대립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양보하고, 한 발짝 물러서는 법을 모르지 않았을까.


한국에 입국한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30일동안 살을 부대끼고, 함께 울고 웃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내 곁에 없다. 포근하고 따뜻한 침대에서 눈을 뜨면, 한달전 춥고 불편했던 텐트와 침낭이 아니라서 씁쓸하기도 했다.


매일 같은 차, 같은 자리에 앉아 흘러나오는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며 유럽의 정경을 보던 때가 그립기도 했다.


그러나 외롭지는 않았다.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모였던 우리들이 한번에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반드시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있다. 모두 나처럼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기에. 지금은 비록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분명, 더 즐거운 인연을 이어갈 것이다.


고영경(동국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