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텍사스>. 이름부터 범상하지 않다. 우선 <파리>부터 희한한 말이다. <빠히>라는 프랑스어발음도 아니고 <패리스>라는 영어발음도 아니다. 이 <파리>와 <텍사스>의 조합은 더 희한하다. 하지만 실제로 미텍사스주안에 있는 지명이다. 영화에서도 주인공 트래비스가 동생에게 지도를 보이며 설명한다. 광고판 하나 덩그러니 있는 공터를 샀다는 이야기로 강조한다. 이유는 잊었다면서. 트래비스는 4년간의 실종기간 기억을 잃었다. 그러다 동생을 만나고 과거에 찍은 영화를 보면서 차츰 기억을 되찾아간다. 그리고 다시 아들과 함께 아내, 정확히 아들의 엄마를 찾아나선다.  
 
1984 깐느가 황금종려상을 안긴 이유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서거나 인상적인 로드무비라서거나 미국의 황량함을 그려서거나 희귀한 독일인감독이라서는 아닐 것이다. 이 모두를 합친 것이상으로 가슴을 울리는 사람의 이야기여서일 것이다. 빔벤더스연출가의 말대로 영화는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다. 영화는 문학의 연장이고 문학처럼 인간학이다. 인간의 삶과 운명을 다룬다. 인간문제에 대해 이야기와 이미지로 답한다. <파리, 텍사스>는 사랑과 가족의 이야기를 잊을수 없는 이미지와 함께 풀어낸다. 사회와 시대에 대해 하고싶은 말을 바탕에 깔고서. 
 
사랑을 넘어서는 집착으로 사랑을 잃고 가정이 깨진 아픈 기억에서 돌아와 아들을 엄마에게 돌려주고 주인공은 떠난다. 독일인연출가의 역작에서 독일의 역사를 떠올리는 것이 과연 무리겠는가. 잊고싶은 파시즘의 역사를 쓴 구세대는 이제 어머니조국에게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하고 새세대에게 미래를 맡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읽는 것이 과하겠는가. 파시즘의 광기가 남긴 전대미문의 후과를 감안할 때 조국에 대한 사랑을 넘어선 집착이었다고만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파스빈더의 <마리아브라운의결혼>에 미국인병사와 프랑스인기업가가 나오듯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에 미국지명과 프랑스지명이 나오는 것을 결코 우연으로 볼수 없는 점도 마찬가지다.  
 
텍사스는 가장 미국적인 곳이다. 같은 맥락에서 텍사스의 황량함이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정서다. 여기에는 <아메리칸드림>의 알량한 환상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천국보다 낯선> 플로리다에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자본주의의 최고봉, 현대제국주의의 아성의 실체는 이러하다. 벤더스는 비록 자본주의의 폐절, 곧 혁명의 필연성을 그리지는 못하지만 자본주의의 한계, 곧 개량의 불가능은 확실히 펼쳐보일줄 안다. 자본주의의 길을 따라가서는 결코 꿈을 실현할수 없다. 벤더스든 그 수제자든 이 일관된 이야기로 깐느의 최고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공인됐다. 무솔리니파시즘과 연관된 베니스영화제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프랑스가 만든 영화제인 깐느가 파시즘에 유독 민감히 반응하는 것이 당연한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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