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다닐 때 유럽여행은 한번 가봐야지> 이 한마디에 혹해서 무작정 유럽여행을 갔다. 여행에서의 재미도 모르는 내가 남들 다 한번씩은 간다기에 일단 비행기에 올라탔다. 사람 사는 곳인데 유럽이야 별반 다르겠냐는 생각으로, 그저 아무 생각없이 잘쉬고 다음학기 준비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내 몸만한 캐리어를 이끌고 유럽여행을 시작했다. 그저 휴식일 것이라 생각한 나의 생각을 되받아치듯, 유럽여행은 나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의 시작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였다.
나의 대학생활은 한마디로 자신만만이였다. 학창시절 좋아했던 과목으로 선택한 대학전공은 여전히 재밌게 다가왔고 고등학교와는 다르게 어떤 간섭없이 자유롭게 다니는 것 자체가 쏠쏠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좋아하는 전공을 조금만 파고들면 좋은 성적을 받을수 있었고, 이대로면 취업도 큰 무리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내 미래가 뚜렷해보였다. 그런 내 모습을 비웃듯 하이델베르크대학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학이란 무엇인가?>
하이델베르크대학교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철학, 신학, 법학, 의학의 네가지 학과로 출발했다고 한다. 수많은 문인과 철학자, 과학자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으로 고풍있는 대학건물들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대학도서관에는 <Semper Apertus> 즉 <항상 열려 있어라!>를 슬로건으로 내걸며 모든 사상에 열려있는 학문의 전당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한편 중세의 대학들은 치외법권 지역으로 학생들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공간이였다. 공권력으로 교육을 함부로 휘두를수 없었고, 사회의 법과 제도에 학생들을 가두지 않았다. 지금처럼 전공책을 따라 읽고 조금이라도 더 높은 학점을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닌 대학생 자신의 사상과 이상에 대해 토론하며 새로운 사회를 찾아나가는, 그야말로 <큰 학문>을 배우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21세기 우리나라 대학의 현주소를 떠올렸다. 진리를 쫓아가리라 다짐했던 초기 대학의 모습이 무색하게도 고등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대학은 당장의 취업만을 목표로 제시하고 대학생들은 시험에 허덕이며 글자 하나를 암기하려 발버둥치고 있다. 게시판에는 각종 학원과 대기업, 국가기관의 넘쳐나는 홍보물로 가득하지만 학생들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다. 지금의 대학은 <큰 학문>을 단언할수 없다.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닌 무작정 암기만 시키는 대학, 나의 꿈은 외면한 채 취업양성소가 되어버린 대학이다. 누구보다 대학을 잘 다니고 있다 자신했던 나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 우리가 대학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는 무엇을 쥐고 나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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