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그리고 파리. 한국인이 가보고 싶어하는 유럽에 항상 손에 꼽히는 도시. 하루종일 상점을, 미술관을, 거리를 다녀도 부족한 그 시간에 공동묘지인 <페흐라쉐즈>에 갔다. 처음 흥미가 생긴 이유는 파리 중심에 있는 공동묘지라는 점이다. 흔히 공동묘지라고 하면 외곽에 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세계에서도 비싼 땅인 파리 중심가에 있는 공동묘지라니,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라는 흥미가 생기기에 충분했다.

최초의 정원식 공동묘지인 페흐라쉐즈는 문에 들어선 순간 수많은 비석들에 압도된다. 입구가 여러 곳이 있는데 <Gambetta>역과 가까운 문에서 시작했다. 입구에 들어선 후 오른쪽으로 걸어가다보면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형상화되어있는 <코만도추모조형물>과 <다하우추모조형물>을 볼 수 있다.

<코만도>는 나치의 대규모 학살을 강제로 도와야만 했던 유대인 작업부대를 뜻하는 단어이다.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표정과 갈비뼈가 다 드러난 모습은 당시의 처우를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그 반대편에는 나치의 최초 수용소이자 정치범강제수용소인 다하우수용소에서 죽은 자들을 기리는 조형물이 있다. 코만도와 학살피해자들, 아이러니하게도 한 곳에서 만나는 곳이 바로 이곳 페흐라쉐즈였다. 역사의 피해자인 그들은 결국 한자리에서 만난 것이다.

역사의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곳을 뒤로하고 걷다보면 레지스탕스의 묘지가 펼쳐진다. 가만히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하나의 조형물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계속 기억되며 우리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정점에 큰 체리나무가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파리코뮌 전사의벽>이 있다. 1871년, 최초의 노동자자치정부인 파리코뮌을 세운 전사들이 마지막으로 최후항전하며 학살당한 장소이다. 자체적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10시간노동제, 야간근무금지, 아동노동금지, 여성남성임금차별폐지 등 지금 보아도 진보적인 정책을 시행했던 일주일의 해방. 함께 잘 살수 있음을 겪었던 그 순간을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사의벽 앞에 체리나무가 있는 것도 이유가 있다. 파리코뮌 당시 5월, 한창 체리가 불그스레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한다. 1871년, 체리보다 붉게 흘러가던 전사들의 피. 이를 잊지 않기 위해 전사의벽 앞에는 큰 체리나무가 심어졌고 매 5월이 되면 전사의 벽 앞에 체리나무는 붉은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전사의 벽에는 실제로 총알 자국들이 곳곳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사의벽 옆에 누군가 <세월호리본>을 달아놓았다. 먼 타국에서 본 <세월호리본>.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전사의 벽 옆에 있던 리본이 <가만히 있지 마라>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역사의 피해자들이 또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울부짖음이 레지스탕스, 전사들이 외치고 있는 그날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누군가는 기억한다. 그 삶을, 그 죽음을. 페흐라쉐즈가 이야기하고 있는 삶과 죽음. 우리는 어떻게 살것인가, 아니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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