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유럽대장정?


나의 필로트와의 여행은 작년 5월쯤에 학교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부터다. 자동차로 운전하면서 외국에 여행을 가는 것이 꿈인 나에게는 굉장한 매력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수동변속기 차량을 운전한다는 정보를 들었고, 수동변속기를 찬양하던 나에게는 놓치기 싫은 기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당시엔 운전경력이 5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백두산 여행계획이 잡혀있었기에 1년을 미루기로 마음을 먹었고 자주 필로트클럽에 들어가면서 사진도 보고, 자료도 찾아보면서 계획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에 그 꿈만 같던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새로 사귄 자동차 친구 PEUGEOT Expert Tepee!


처음 파리에 도착했던 날. 그 당시에는 운전자 사전교육이라 각조운전자와 부운전자만 미리 출국을 해서 도착한 상태였고, 그날 우리는 우리와 1달간 같이 여행할 자동차이자 친구인 푸조 엑스퍼트 티피를 리스했다. 하지만 그 차는 수동변속기. 자동변속기가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에 적응되어있던 다수의 우리 운전자들은 그 기간 동안에는 수동에 적응하느라 다들 고생이 심했다. 그렇게 3일간 우리는 서로 자신이 몰게 될 차량에 적응했고, 각조원들이 속한 본대가 도착하는 날 조원들을 태우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얼떨떨했던 파리, 하지만 모든 것이 Art였던 도시


우리 필로트7기의 전체 코스는 프랑스 파리-스위스 인터라켄-이탈리아 로마-이탈리아 베네치아-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독일 하이델베르크-벨지움 브뤼게-잉글랜드 런던-프랑스 페깡-프랑스 파리 였다. 이렇게 짜여있는 일정속에서 자잘한 일정은 각조별로 정해야 했다. 처음에 파리에 머물었을 때는 우리가 어디를 가는 것이 효율적 일지, 어디를 가봐야 할지 굉장히 얼떨떨했다. 그래서 유명한 관광지나 박물관들을 찾아다니곤 하였다. 파리라는 도시는 하나하나가 전부 미술품 같은 생각마저도 들었다. 조원들과 함께 이동하고 이것저것 보고, 사진도 같이 찍고 하면서 차츰 친해지기 시작한 도시이기도 하고,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시이기도 하여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600km, 800km의 지옥의 운전거리


파리에서 인터라켄으로 이동하던 날 이동거리 600km. 이 날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유럽에 있는 동안 비가 내리는 것은 수도 없이 겪었지만, 이날 비는 정말 억수로 쏟아졌고 최악이었다. 이동거리는 약600km인데 시야확보도 안될 정도로 비는 쏟아지고, 시간은 지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의 후미등과 후방안개등에 의지하여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간신히 인터라켄에 도착했고, 잠시 머무른 뒤 로마로 이동했다.


이날 이동거리는 400km 직진을 포함한 약800km. 운전을 매우 좋아하고, 자동차와 한 몸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나도 이날조차 비가 내렸다면 운전대를 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400km 직진 덕분에 어떻게 도착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다. 로마에 도착하고 나선 모든 운전자들은 주행거리 이야기뿐이었고, 이때부터 운전자들의 서울-부산 2회 왕복가능설이 돌곤 했다. 아마도 운전자로서 이때 경험이 최고로 기억에 남지 않을까 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행시작!


로마, 베네치아, 인스부르크 등 로마이후 우리의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됐다. 이때부터는 정말 좋은 관광지, 유적지등을 찾아다니면서 최고의 여행일정을 소화해냈다. 개인의 기호에 따라 개인적인 여행도 하고, 때론 쉬기도 하면서 잠시 다른 일정을 뒤로 한 채 나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모여서가는 여행. 개인적인 아쉬움과 갈등이 생기는 것이 당연했고, 나도 개인적인 아쉬움이 생겼다. 처음에는 나만 그런 생각을 갖고있나 싶었지만,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개인적인 갈등을 지니고 있었고, 서로 위로하고 조언해주고 이야기를 통해서 풀어나가기도 했다. 개인적인 갈등과 그 갈등을 해소함을 느꼈던 이때, 여행을 하면서 사람사는 세상을 느꼈고,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됨을 느꼈다. 우리는 여행을 하는 큰 대가족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더욱 여러 사람과 친해지고 싶고, 남은 여정을 이 모든 사람들과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웠다. 이렇게 우리의 본격적인 여행은 계속 이어졌다.


여정중에서 제일 짧았지만 제일 큰 소단원 명랑운동회


명랑운동회! 정말 재미있었고, 가장 짧으면서도 제일 중요한 일정이라 생각한다. 명랑운동회전까지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많았지만 생각보다 다른 조에 쭈뼛쭈뼛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느끼고 있던 그때에 명랑운동회를 하게 됐다. 그냥 서로 인사만 하던 사람들과 같이 운동회를 하고, 여러가지 게임 등을 하고, 뒤풀이로 음식과 약간의 술을 마시면서 친해지게 됐다. 그리고 그 성과일까? 그 이후에는 낮에 이동할 때는 여러 조원들이 각조 차에 섞어 타기도 하였고, 밤에 여러조 사람들끼리 텐트에 모여서 놀곤 했다. 다시 생각해도 명랑운동회가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과 큰 비중을 맡은 것 같다.


마지막 여정과 아쉬움과 미안함


벨지움 브뤼게, 잉글랜드 런던, 프랑스 페깡과 파리는 마지막 여정들이었다. 벨지움에서는 네덜란드도 다녀오고 브뤼게시내도 돌아다니고 해변에서 놀고 하면서 그렇게 마지막 여정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런던에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이제 여행이 마지막이구나,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 여행도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추억을 남기고 싶었고, 조원들과도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고 해서 런던에 있는 동안 관광보다는 문화생활을 즐긴 것 같았다. 올림픽경기도 보고, 오페라도 보고 어찌 보면 아쉬움이 많은 도시는 런던 같다. 그렇게 런던을 떠나 페깡에서는 낮에는 조원들과 밤에는 모든 7기 사람들과의 추억이 담겨있지 않나 싶다.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별자리도 찾고, 별똥별을 기다리고, 은하수에 감성을 젖어보기도 했고, 낮에는 조원들과 마지막을 느끼기 위해 조원들과 하루종일 붙어다니곤 했다. 페깡은 아름다웠고, 2일 남은 여정에 아쉬웠다.


아름답지만, 가슴 아팠던 해단식


여행 하루 남겨놓은 해단식이 있던 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몇 시간 남지 않아 있었다. 그때 조장단에서는 단장님의 선물을 준비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렇게 우리는 케잌과 롤링페이퍼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해단식이 시작됐다. 단장님의 말씀이 이어졌고, 각조 막내들과 각조 조장들이 여행후기에 대하여 간략하게 말을 마치고서는 해단식이 종료됐다.


우리는 단장님께 준비한 선물을 드렸고, 헹가래를 해드렸다. 그렇게 가슴 아팠지만, 아름답고 훈훈한 우리의 해단식겸 마지막 밤이 흘러갔다. 그날 나는 평소처럼 자러간다고 해놓고 오랫동안 잠을 청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Good bye! My Tepee. And I Love you...


이 부분은 어찌 보면 747명과 헤어질 때는 울지도 않았으면서 차 반납할 때는 울었다고 이상하게 보이고, 죄송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차마 빼놓기도 아쉬운 마지막 날의 뒷이야기이다. 조원들을 공항에 내려주고 차를 반납하러 가는 길에 나는 무심코 파리에 있는 동안 우연히 발견한 지름길을 이용하여 가고 있었다. 이내 곧 아차 하면서 다시 차를 돌렸고 일부러 조금 더 멀리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차를 세우고 차를 쓰다듬어 주면서 ‘한달간 잘 달려 주었다’라고 혼자 말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내 말에 반응한 것인지, 순간 엔진에서 ‘웅~’하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원래도 나는 소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말에 응답해주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다시 운전석에 올라탔을 때, 스티어링 휠 가운데에 붙어 있는 사자마크에 키스를 했고, 10초간 나도 모르게 울었다. 아직 그 차 스티어링휠에 내 눈물자국이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차를 반납했고, 1달간 사귄 외국자동차 친구와의 이별을 했다.


뜨겁게 안녕


파리에서 출국하는 샤를드골공항. 이때 정말 가슴은 뜨거웠고, 아쉬움이 계속 남았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우리의 그 좋은 여행과 추억이 오늘로써 끝나게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단장님과 일부 담배 피는 조원들과 마지막으로 같이 폈던 담배 한모금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게 우리는 단장님과 포옹도 하고 사진도 찍고 파리 샤를드골공항을 떠났다. 비행기내에서 가는 25시간동안 우리는 여전히 웃고 떠들고 이야기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막상 인천에 도착하고 나서는 그 아쉬움이 한가득 몰려왔다. 서로 떠나보내기 아쉽고, 작별인사를 하기도 싫고, 하지만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그렇게 서로에게 안녕을 보냈다. 그렇게 뜨겁고 뜨거운 안녕을 서로에게 보내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유럽 앓이 그리고...


한국 생활 첫날. 한국에서 해가 떠야 잠이 오고, 해가 중천에 있어야 잠이 깼다. 근데 문제는 아침에 일어났는데, 실내였고, 늘 익숙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어났는데 조원 누나들이 밥 먹자고 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씻으러 가면서 인사할 사람도 없었다. 원래라면 ‘안녕하세요. 잠은 잘 주무셨어요?’라고 인사하면, ‘허허허, 그래 나야 잘 잤지, 근데 피곤해 죽겠다. 허허허’, ‘응 잘 잤지, 너는 잘 잤고?’ 하는 소리를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씻고 나왔을 때는 ‘담배 한대 필까?’ 하는 형들의 목소리도 없었고, 그러고 나면 바로 운전대를 잡으러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저녁때 들리던 또래친구들의 목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고, 우리 조원 형들이 나를 애타게 찾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밤에 유럽이 생각나서 SNS에 들어가보면 우리 7기 거의다가 들어와 있는 것이 반가웠고 기뻤다. 지금은 벌써 다녀온지 열흘이 지나가고 있고, 이제는 한국에 다시 적응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곧 방학이 끝나면 다들 본연의 삶으로 돌아가겠지만, 난 이번 여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747명 다시 한번 모이자면 맨발로 뛰쳐나가 택시타고 국내 어디라도 갈 것만 같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꿈이었고, 새로운 경험이자 멋진 여름을 보낼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단장님과 운영진, 그리고 우리 7기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김규범(대학생자동차유럽대장정단 필로트7기 참가자)